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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May 19. 2022

초보 식집사의 꽃

여기 호치민은 사시사철 더운 날씨라서 어디에 가도 꽃과 나무가 일년 내내 무성하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그게 제일 좋았다. 꽃을 365일 볼 수 있구나. 실제로 꽃나무도 도로변에 많이 심는 편이다. 집들이 즐비한 동네에 가면 집집마다 경쟁적으로 꽃나무를 키우기도 한다. 세련된 가드닝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고 그냥 무성하게 자란 꽃과 나무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영향 탓인지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건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천지가 나무고 꽃이고, 다들 집에서 키우는 것 같으니 나도 그렇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이탓도 한 몫 했겠지만, 뭘 하든 나이 타령하는게 지겨워서 그건 접기로 한다.)

몇 주 전에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남서향이다. 전에 살던집은 북서향이어서 베란다가 있어도 꽃나무는 키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 멋모르고 장미 등등을 잔뜩 사왔다가 다 죽이고 말았다. 이번 남서향집은 더 덥기는 하지만 양달에서 키울수 있는 식물들을 데려올 수 있어서 기대가 컸다. 한 편, 전에 키우던 식물들을 다 데리고 왔는데 적응 못하는 한 두개가 있어 마음이 안좋았다. 양달이 싫은가 보다 싶어 안 쪽으로 들였다. 빈화분이 한 쪽에 쌓여 있어서 세어 봤더니 9개였다. 그 동안 9개의 나무를 죽였다는 뜻이다. 그걸 들고 나무가게를 찾았다. 화분에 맞는 사이즈로 양달에서 자랄 식물로 권해 달라고 했더니 대부분 꽃이 있는 나무였다. 땀을 비질 비질 흘리면서 한참을 꽃나무 사이를 돌다가 9개를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태양과 바람이 일은 다 한다. 내가 거드는 일은 매일 아침 물을 주는 것 뿐이다. 거짓말 안보태고 고작 물 한 번 흠뻑 주는 것 뿐인데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준다고?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건 시련을 당해 보지 않은 초보 식집사의 몰라서 하는 헛소리일 수도 있다. 분갈이를 해 봤나, 영양제 같은 걸 사다 주어봤나. 마른 잎사귀를 떼 주어 봤나. 나랑 같이 사는 분은 어찌나 식물 가꾸기에 애를 쓰는지, 잎을 하나 하나 닦아 주더라. 그러더니 시들시들한 애를 살려내더라고. (어쩌다 보니 그가 물주는 아이들과 내가 물주는 아이들로 구역이 나뉘었다. 그는 이사 들어 온 터줏대감 아이들을 가꾸고 있고 나는 새로 입양된 아이들을 가꾸고 있다.)

빈화분 9개만 새로 채운다는 것이 이후로도 한 두개씩 새로운 아이들을 들여와서 나무는 13개가 되었다. 초보 식집사는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베란다의 나무들이 간밤에 잘 지냈는지 확인을 한다. 그리고 물을 잔뜩 준다. 낮이 되면 햇빛이 가득 들어찰 것이기 때문에 목마름을 대비한다. 물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욕실에서 베란다를 세번을 왕복해야 한다. 물에 흠뻑 젖은 나무들을 멀찍이 앉아서 바라본다. 내가 들인 공은 미미한데 햇빛에 빤짝 거리고 있어서 감격스럽다. 들인 노력에 비해 훌륭한 결과물. 그게 초보 식집사의 보람인가. 식물들에게 감사해 하면 그들은 내 맘을 알것인가. 그들이 언젠가는 우리 집 고양이들처럼 내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될 것 인가. 그들은 과연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나와 지낼 수 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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