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엄마가 문 열어놔서 파리가 들어왔잖아요!" 평소 같지 않게 날카로운 고음을 내며 눈에 넣으면 조금은 아플 것 같은 막내딸이 소리를 지른다. 나는 한가하게 뒤뜰에서 민들레 씨앗을 가지고 놀면서 방울토마토와 블랙베리로 아침을 대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우처럼 꼬리가 달린 것도 아니면서 나는 늘 드나들 때마다 문을 열어놓고 다닌다. 요리를 하고 나서 뒤뜰로 나가는 문을 열어 놓으면 감칠맛 나는 냄새에 매료된 동네 건달 파리들이 부엌문의 열린 틈을 용케도 찾아내고 달려든다.
뒤뜰에 앉아 이제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는 여름과 마지막으로 노닥거리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신성한 부엌 노동을 부리나케 한 덕분이었다. 참치캔을 따고 물에 데친 돼지고기도 넣어 김치찌개를 한소끔 끓였다. 달콤한 맛을 위해 양파와 파를 듬뿍 넣어 새빨간 국물이 우러날 때까지 졸였다. 거기에 보들보들한 단백질 덩어리 두부까지 듬뿍 썰어 오목하게 쌓아 넣으니 모양이 대충 근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장고 안에서 시들다 못해 흐물흐물 해지고 있던 부추도 양념처럼 넣었는데 결국 주종이 바뀌어 김치찌개라기보다는 부추 향이 찐한 부추김치찌개가 되고 말았다. 찌개 냄비의 뚜껑이 열려 있던 것은 순전히 국자 탓이었다. 오늘도 습관대로 국자를 냄비에 걸쳐놓은 터에 남편과 아이 먹이려고 해 놓은 먹음직스러운 부추김치찌개를 파리가 먼저 시식을 했다.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그 장면을 딸내미가 보고 말았다. 과연 파리 탓일까? 곰탱이 같았던 내 탓이었을까?
갑자기 부아가 치밀러 올랐다. 요새 막내딸과 나는 세상없이 사이좋은 모녀 노릇을 하면서 집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샌 학교 갈 일도 없고 나도 회사를 안 나가며 코로나 덕에 쉬고 있으니 시간도 남아서 여유로웠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면서 일단은 '놀자 놀자 또 놀자'하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다툴 일도 없이 오늘은 뭐 하며 놀까? 라며 오라는 데도 갈 곳은 많은 사람처럼 놀러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사이를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파리 따위가 시기하고 갈라놓으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엄마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놀기를 무척 좋아하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 있을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놀이터에 가면 나는 멍 때리기를 하면서 하늘을 하염없이 몇 시간씩 바라보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런 맛으로 밴쿠버에 있는 놀이터는 안 가본 데가 없을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조금 다른 형태의 놀이터가 있으면 기어이 시간을 내어 놀 수 있게 해 주거나 아니면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놀 수 있게 해 주었다. "Look at me, 나를 좀 봐요! " 그렇게 아이들이 손바닥에 굳은살이 밸 정도로 멍키 바에 원숭이들처럼 매달려 나를 불러댔다.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다가는 놀이터에서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아이들의 가슴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그네를 밀어주고 나면 며칠은 말도 잘 듣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는데 아직도 그때 아이들이 놀며 나를 부르던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오늘 못 볼 장면을 본 막내딸은 아마 나의 세 딸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나와 놀아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다. 파리 때문에 뿔난 막내가 오늘은 김치찌개를 안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부아가 났다. 사실 나도 입맛이 싹 가셨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색 몸뚱이를 한 파리는 동네방네 구석구석 어딘지도 모른 곳을 돌아다니다가 우리 집으로 왔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먹다가 우리 음식에 앉아 오물을 토해내었는지 모르는데 나도 그만 입맛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목격한 바로는 주로 쓰레기통에서 놀다가 양심도 없이 아무 데나 내려앉는 파렴치한 것들이다.)
처음에 밴쿠버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것이 파리, 모기, 뱀이 없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산에 캠핑을 가봐도 강가로 산책을 가보아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기가 달려들곤 한다. 예전엔 집안으로 한 여름 내내 그저 한 마리만 들어올까 말까 했는데 이젠 문만 열어놓으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잘만 들어온다. 그것은 아마도 밴쿠버도 여름 기온이 높을 때는 예전과 다르게 한국처럼 더울 때가 있어 곤충들의 부화가 훨씬 잘 되기 때문일 것 같다. 앞으로도 기후변화가 더 심해지면 온갖 해충들도 번식을 더 잘할 텐데 슬며시 염려가 된다.
"파리채 가지고 와!"
분한 마음에 집어 든 파리채는 남편이 얼마 전 달러 숍에서 구입한 것인데 빨래판처럼 뻣뻣했다. 내가 한국에서 즐겨 쓰던 파리채는 마치 배구 선수들이 날아서 스파이크를 날릴 때 손목이 휘는 것처럼 유연한 스냅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청소기를 들었다. 웬 청소기냐고 묻는다면 우리 집 청소기가 유난히 시끄럽기 때문에 혹시 그 소리가 듣기 싫어 파리가 도망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친김에 미루던 청소까지 하려던 심산이었다. 청소기 소음을 들으면 파리가 도망갈까라고 생각을 한 것은 얼마 전 본 영화인 "베놈"에서 본 내용 때문이었다. 남편이 보는 터라 옆에서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기어코 다 보고야 말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폭력이 난무하는 종류의 영화를 싫어한다. 죽고 죽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괴물이 일정 데시벨의 소리에 무너지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파리도 그렇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본 것이다. 적어도 파리를 괴롭히고 잡을 수만 있다면 싶었다.
파리채로 허공을 휘젓고 청소기로 소리를 내면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4마리의 파리는 둔한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윙윙 소리를 내면서 거실 천장을 휘저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파리들이 요란한 소리에 질리기는커녕 매력을 느꼈는지 낮게 날더니 청소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엄청난 소음이 주 특기인 청소기는 틀어놓은 채로 파리채를 날쌔게 잡았다. 그때 나는 완벽하게 파리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힘이 넘쳐 몸을 날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뻣뻣한 달러 샵 파리채로 파리 네 마리를 모두 차례차례 때려잡았다. 기세 등등하던 파리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초록색 배때기를 드러내 놓고 죽어 있었다. 나는 이제 파리를 4마리나 때려잡아 놓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는 우리 집의 해충 박멸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거미만 있어도 나를 불러댄다. 밴쿠버처럼 숲이 우거진 곳에는 당연히 벌레도 많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집의 환기통을 통해서 들어오는지 가끔 다리가 긴 거미들이 우리 집의 지하실을 기어 다닌다. 거미들은 한 마리가 들어와도 번식을 한다고 하니 꼼꼼하게 박멸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거미를 보고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 만큼 수더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나의 무심함 때문인지 아이들 모두 "거미 포비아"가 있다. 거미만 나타나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성을 지르며 나를 부른다. 남편도 신혼 때 집에 들어온 쥐를 보자마자 내 뒤에 숨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변기에 갇힌 쥐새끼를 내가 뚜껑을 덮어 가두어 놓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음날 보니 쥐가 사라지고 없었다. 남편은 쥐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므로 그가 쥐를 잡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 지금까지도 미스터리 한 이야기이다. 쥐가 머리로 변기 뚜껑을 열고 뛰어 나갔던가 아니면 변기 속으로 수영을 해서 하수구도 도망을 나갔거나 했다는 말인가? 하여간 결혼 후부터 나는 여자가 아니라 강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해충 전문 킬러인 나도 사실 결혼 전에는 벌레를 보면 까무러치고 엠블런스를 불러야 할 만큼 여린 여자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벌레를 잡을 때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우리 7남매의 엄마에다가 동네에서 기르던 돼지를 잡는 날에는 그 돼지가 목에서 뛰어노는 것 같다며 고기를 못 멋던 연약한 아빠를 남편으로 두었던 우리 엄마는 우리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스스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몸서리치던 친정 엄마의 참담한 고백을 생각하면 벌레 잡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힘들어도 자기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는 낫다며 위안을 삼기도 하는 것 같다.
거사를 끝내고 뒤뜰에서 다시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려는데 나비가 여럿이 날아다닌다. 파리도 나비도 곤충인 것은 분명한데 한쪽은 적이고 한쪽은 친구처럼 가까이하고 싶다. 도대체 정답이 없는 세상이다. 파리 다리가 담가졌던 부추김치 찌개를 그냥 먹어야 할까 버려야 할까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냥 나는 찌개를 다른 때보다는 훨씬 더 팔팔 끓인 다음 보글보글 끓을 때 저녁 상에 내놓았다. 그랬어도 나와 막내딸은 숟가락이 선뜻 찌게로 가질 않아서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면서 옆을 보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내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 국물 좋다" 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평소 밥상머리에서 말이 많던 나와 딸내미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밥만 먹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게 약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