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관리도 중요하다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기 전 나는 밴쿠버의 유학생들이 있는 애프터스쿨 학교에서 관리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시안 국적의 이민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라서 학교에 가보면 여기가 동양인지 서양인지가 구별이 안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시골지역이라서 상대적으로 백인들의 비율이 높았고 학교 내에 동양 아이들의 비율은 15퍼센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조기유학에 대한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서류 준비 등에 대한 것보다는 유학생들의 마음 관리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류 준비도 큰 부분이지만 그것보다는 조기유학생이 이곳에 와서 겪던 고충이나 보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3까지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늦은 학년 (10학년) 정도에 와서도 짧은 시간 안에 캐나다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은 주로 초등학교 4-7학년인 경우가 많았기에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나는 엄마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유학이라니, 나는 내심 조기유학에 대해 다소 우려를 가지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유학생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우려를 뒤로하고 아이들은 어김없이 사랑하는 부모님들과의 이별을 감당하면서 하나씩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왔을 때 며칠간은 시차를 극복하기 힘들어서 한밤에 깨어 우는 아이도 있어 한밤중 연락도 자주 왔고 (비상대기 기간) 캐나디안 홈스테이 엄마들도 엄마 역할에 적응하려면 쉽지 않았는지 이것저것을 물어오곤 했다. 생각을 해보면 아이들이 이렇게 적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바로 캐나디안 가정에 정착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 수 있을까? 그것은 한국인 홈스테이라 해도 덜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경우, 그런 아이들이 너무 대단해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그래도 한 달이 지나면 거의 적응이 되었는데 몇 명의 아이들은 두서너 달이 지나도 힘들어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은 한국보다는 공부량이 비교적 적어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캐나다 학교의 영어는 어려워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방식에서는 만족도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캐나다 정규학교 과정을 끝내고 애프터스쿨에 와서는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타이트하게 해야 했다. 그러니까 3시부터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8시경까지는 오로지 공부하는 시간이었는데 그에 비해서 한국에서는 공부를 더 많이 하다가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힘들지만 캐나다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공부를 스스로 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아서 부모님들이 아마 속이 많이 상했을 것 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내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도록 한 케이스라 뒤늦게 맞이한 조기유학생들에게 공부를 현명하게 잘 시켜야 하는 과제 앞에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공부는 커리큘럼이 있었기에 어쩌면 더 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아이들끼리도 금세 삼삼오오로 모여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려고 했기 때문에 선생님 입장에서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도록 개입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너무 사랑스러웠는데 아이들의 세계 안에서도 나름 갈등과 고민이 상당이 많았던 것이다.
그럴 경우 조용히 불러서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게끔 들어주는 일이 중요했다. 캐나디안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아침저녁으로 기분이 달라지는 통에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떨 때에는 친절하다가도 금세 며칠 뒤에는 아는 척도 안 하는 등 어른이라 할지라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럴 때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조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진정 그 상황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일단 한쪽에서라도 누군가 귀 기울여 들어주면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를 한다. 때로는 그런 친구는 필요 없다고도 하고 때로는 뭔가를 더해 보려고 한다. 아이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활을 확장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 눈에는 아이들이 부족하게 보여도 나름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을 스스로 찾아내곤 했다. 다만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정리를 잘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럴 때에는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럴 때 종종 사용했던 이야기 치료에서의 질문법을 소개해본다.
- 처음 그 문제를 인식한 것은 언제였어? 얼마나 오래되었지?
- 네게 그 문제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땠는데 지금은 또 어떻게 바뀌었니?
- 그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때는 언제였고 또 가장 약한 때는 언제였을까?
- 그 문제와 마주했을 때 네가 강하다고 느낀 적은 언제였어?
- 그 문제는 어느 정도로 네게 중요한 것 같아?
보통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문제의 정도에 대해 파악하려면 Score로 표현하게 하면 좋다. 예를 들면 1에서 10까지 중에서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할 때 왜 그랬느냐 비난하는 투로 대화를 하게 되면 아이들의 마음은 닫힌다. 하지만 이성적인 질문을 통해서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점검할 기회를 주면 자신이 그 상황에서도 강해질 수 있던 순간에 대해 기억을 하게 되고 나름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놀란 것은 아이들도 자신의 나이보다 성숙한 사고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사고를 한다는 사실에 종종 놀랐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어른에 대한 신뢰를 통해 스스로의 문제가 생활 자체를 흔들 정도로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안도하기도 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주는 상담자의 자세이다. 무조건 '너의 이야기라면 언제까지라도 들어줄 거야'라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말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오가면서 수시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예뻐해 주면서 안부를 물어주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를 되찾고는 했었다. 가끔은 무슨 일이 있으면 어른으로서 문제에 적극 개입해서 학교 선생님이나 홈스테이 맘과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 따질 수도 있는 어른이 여기 있어.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주는 것 말이다.
때로 어른들은 아이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때가 있다. 보통의 경우 아이들은 문제 상황에 무뎌지거나 아니면 해결하거나 어떤 방식을 택하던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져갔다. 문제는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것에 적응해 나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한 아이가 생각이 난다. 유난히 홈스테이와의 갈등이 많았기에 몇 군데를 옮겨 다녔었다. 그때 나는 마지막에 머문 홈스테이 엄마를 만나 식사 대접을 하면서 홈스테이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그분께도 있었다. 그분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어렸고 어린아이다운 대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부당하다고 느낀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요청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 이후에도 아이는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나름 적응해갔다.
사랑을 전적으로 받으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위의 학생의 경우 "너는 정말 멋진 아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했었다. 자신이 멋진다는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의리가 있던 아이는 문제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던 탓에 자신을 스스로 문제 덩어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때에는 또한 문제와 아이를 분리하는 방법 (외재화 이론)을 통해서 아이의 짐을 덜어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변함없이 지지하는 '단 한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주방에서 다른 아이들 안 보일 때 우유를 데워주곤 했었는데 이 녀석이 대놓고 교실에 가지고 들어가서 먹는 통에 허둥댔던 기억이 난다. 사실은 그 아이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 아이의 뿌듯해하며 활짝 웃던 생각이 난다.
조기유학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정말 할 말이 너무나 많다. 절차, 그리고 효과 등 그 장단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의 심리에 대하여 조금 이야기를 하여 보았다. 조기유학을 와서 적당한 돌봄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외롭고 힘든 시절이 될 것이다. 물론 영어는 상대적으로 늘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팬데믹으로 유학이 사실상 어렵지만 나중에라도 조기유학을 계획할 때에는 출발 전 부모와의 충분한 소통으로 아이와의 친밀감을 제대로 형성하고 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래야 캐나다에서 홈스테이 가정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문제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에 영어공부만으로도 벅찰 텐데 감당할 여건이 너무 많다면 그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사항이다. 부모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 유학을 한다면 어땠을까? 하면서 역지사지로 생각을 해보면 될 것이다. 눈을 감고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홈스테이에 적응하는 것,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현지 아이들이나 선생님들과의 소통 문제 등말이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면서 아이들이 더 보고 싶어 졌다. 다들 정말 어떻게 지내는지 갑자기 닥친 코로나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성장에 따른 문제는 여전히 존재할 텐데 사춘기를 잘 보내고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 간의 거리가 지켜지지 않아 힘들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에 염려가 되기도 한다. 부모라도 자기 자식은 완전히 다른 인격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또 끝까지 믿어 주기는 더 쉽지 않다. 조바심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나를 끝까지 믿어주려 노력하는 그 단 '한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사랑이 가득한 소통법이 아닌가 싶다. 그 단 '한 사람'을 꼭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