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을 부탁해요 (가사노동 청구서 재중)
프라이팬 밑바닥에 긁힌 자국이 있다. 멀쩡한 프라이팬인데 말이다. 남편은 그런 프라이팬은 건강에 안 좋다면서 슬쩍 가지고 나간다. 버린다는 말이다. 나는 안된다며 쫓아가서 다시 찾아왔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슬그머니 없어졌을 것이다. 긁힌 프라이팬이 몸에 안 좋은 물질을 내뿜는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왠지 서글프다. 조금 흠집이 났다고 버려지는 프라이팬 말이다.
덜거덕, 덜거덕,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창문을 내다볼 생각도 못 하고는 프라이팬 먼저 불에 올려놓는다. 그날은 고등어자반 거리가 있어서 기름을 두르고 소금도 조금 더 뿌리고 노리끼리한 강황가루도 뿌려서 고등어자반 구이를 하려고 했었다. 아침부터 고등어자반 구이라는 게 좀 그렇지만 전날부터 해동시켜 놓았기에 더 이상 묵히면 안 될 듯했다.
"어제, 나 밥 두 끼나 안 먹었네?" 남편이 말했다. "어, 어제저녁에 스파게티 먹었는데!". 남편에게는 스파게티는 밥이 아니다. 점심에는 친구가 사준 피자를 먹었다고 하니 그이는 두 끼나 밥을 안 먹은 셈이다. 남편에겐 밥은 그냥 반찬이 따로 차려지는 밥상의 밥이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찌개 끓이고 점심 도시락까지 한식으로 싸고 분주하다. 나는 주방에서 그렇게 인이 박혀 이제는 프라이팬이 내 손바닥인 것처럼 익숙해졌고 일사천리로 아침 주방의 주인이 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요리를 했으며 몇 개의 프라이팬을 내 손으로 갈아 치웠을까? 주방에서 우리 집 전문 '쿡'으로 일한 지 어언 27년이 지났는데 그러니 나를 거쳐간 프라이팬만도 아마 수십 개는 넘을 것이다. 주방 인테리어 잡지에서 프라이팬을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아 멋지게 꾸며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본 프라이팬은 멋진 장식품이었다. 하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머리에는 알록달록 스카프를 쓰고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는 일하는 음식 예술가로 살고 싶었던 나는 사실은 전혀 다른 난장판 주방 풍경 속에 서서 우리 가족 5인의 식탁을 준비하고 치우는 일로 내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외국에 나가서 살면 간편하게 사온 빵이나 시리얼로 아침 끼니를 때우지는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2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지금도 남편은 향수병 때문인지 아직도 삼시 세끼 밥을 찾는다. 너무나 힘든 이민자로서 가족을 위해 살아온 남편의 입맛마저 뭐라 하긴 그랬다. 그래서 덕분에 나는 한식 전문가가 되어 나도 모르게 많은 음식을 짧은 시간에 만들 줄 아는 노하우를 쌓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만들 때에 정성이 반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한때 주방일은 소모적인 일이라 생각했고 음식을 맛있게 한다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빨리 만들고 사실은 다른 일을 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족들의 음식을 장만하고 먹이는 일은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글을 쓴다거나 하는 내가 하고픈 일들은 먼 일처럼 밀어 놓고 정말 가정주부로만 철저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주방 일중 특히 음식을 만드는 일은 건성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초보 주부의 딱지를 떼고 나름 중견 주부 타이틀에 익숙해져 있던 10여 년 전에 어떤 분의 가정에 놀러 갔다가 그분이 고등어를 조리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고등어를 조리면서 밑에 있는 국물을 떠서 계속 끼얹어 주시면서 그야말로 음식 만드는 시간에는 주방에만 머물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등어를 만들 때 무를 깔거나 아니면 김치를 깔고 고등어를 얹어 놓고는 불의 크기만 조절을 했을 뿐 뚜껑 닫고는 다 될 때까지 별 관심이 없었다. 밑은 타고 위는 퍼석퍼석한 고등어를 만들었으나 그게 왜 그런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야말로 음식을 불에 맡겼다는 표현이 맞을까? 또 계란찜도 마찬가지의 원리였다. 요샌 뚝배기에 앉힌 계란찜 재료를 계속 수저로 저어가면서 만들었더니 타지도 않고 맛있는 것을 보면서 음식 만드는 것도 간단하지 않으며 정성이 반이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정성이 가득해야만 맛깔난 작품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정성을 안 들이면 제 맛이 안 나기 때문이다. 정성이 가득한 주부의 음식은 사실 값어치로 환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엌의 대표 주방기구 프라이팬은 그렇게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갔고 프라이팬 안에서 나는 그야말로 그날의 과제들을 해결하면서 (볶고 지지고) 내 젊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족들에게 '일어나라'라는 신호도 프라이팬으로 한 것 같다. 마치 내 존재를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물론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음식 냄새 때문에 알았겠지만 프라이팬과 그릇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로 뭔가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요란하던 소리와 냄새만으로 내 존재가 가족들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잘 각인이 되었을까? 과연 그랬을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한 번도 가정에서 월급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왠지 이번에는 가족들에게 청구서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뭐 그렇다고 뭔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방일을 하고 있는 나의 노고를 가족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음식재료 다듬기, 씻기, 만들기, 또 설거지 하기 등의 똑같은 공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살았다. 하지만 만약에 그 일이 하찮다고 느껴졌다면 주부로서 견뎌내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우리 집에 음식찌꺼기를 갈아버리는 분쇄기를 환경문제로 달 수도 없어 음식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자마자 처리하는 일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부엌에서의 노동일에 점점 더 지쳐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견디기가 버거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주방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스스로 의미 찾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주방에서 보낸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 내가 만든 음식은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 남편의 월급, 아마도 뭐 그런 것들 속에서 녹아 있다. 아이들 셋이 내가 만든 음식으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랐다. 그리고 남편도 아직 일을 건실하게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지만 나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노동력으로 얼마만큼 나의 가족에게 기여한 것인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통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젊은 날의 내 모든 것을 바쳐 일했던 주방에서의 시간이 마치 금광에서 열심히 금을 캐어 냈지만 내가 캔 금이 몇 톤이나 되는지 모르고 임금을 한 번도 받지 못한 노동자 같은 막연하고도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의 모습이 옛날 같지가 않고 갱년기가 지나면서 내가 무엇을 이루었나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그런 느낌은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연장을 가지고 자신의 하루의 일과들을 만들어 나간다. 나는 주부로써 솥,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을 가지고 지금까지 내 가족의 삶을 진화시키는 역할로 확실하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프라이팬으로 만들었던 그 모든 음식들은 모두 영양소로 우리 가족들의 몸에서 소모되었고 나는 이젠 낡은 프라이팬 같이 된 것 같은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프라이팬을 버리겠다고 주섬주섬 나갈 때 내가 빛의 속도로 빼앗아서 챙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리라. 알다시피 주부라는 역할은 사실 가끔 이야기가 나오면 굉장히 존중받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때만 반짝일 뿐 사실은 잊힌 직업이기도 하다. 매일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소중하나 인식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나를 위로도 할 겸 본격적으로 나의 노동력을 계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름하여 프라이팬 청구서이다. 나의 가사노동 청구서인 것이다. 가정주부인 내가 얼마만큼 무엇을 위해 일했는가를 환산해 보니 더 나 자신의 지난 일에 대한 가치를 눈에 보이듯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이들 교육, 로드매니저 역할, 남편 뒷바라지, 집안 관련 일들에 투자한 시간은 따로 계산을 해야 할 것 같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지닌 책임감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계산한 것이 물론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프라이팬 및 다른 도구로 만든 음식이 하루에 적어도 5가지 이상은 되었었다. 그것을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주방에서 보낸 시간은 나의 경우는 하루에 총 4시간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온 나의 주방에서의 가사노동 청구 금액은 아래와 같다.
하루 평균 주방에서 일한 4시간 x 365일=1년 1,460시간 x 27년 = 총 39,420시간 x 시간당 기본급 (15불 - 캐나다 현재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적용)을 적용하면 주방경력으로 내가 벌어들인 수입은 적어도 591,300달러는 된다. 그것은 Million Dollar를 훌쩍 넘어선다. 캐나다 현재 최저임금이 15불이지만 그 이전에 그보다 훨씬 적었다고 치자. 그래서 총 591,300달러에서 91.300을 속 좋게 에누리한다 해도 Half Million Dollar는 넘는다. 이렇게 계산을 하고 보니 지난 27년간 주방에서의 나의 노동력이 마치 금광에서 캔 금처럼 반짝반짝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듯 구체적이어서 참 좋다.
주부의 노동력도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이렇게 수치로 계산을 해서 가끔은 공지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나아가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도 급여로 계산이 되어 지급되는 방식이 생긴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물론 가정의 주부 역할에 남자 여자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여건이 되는대로 하면 될 테니 말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상하게 놀면서 하는 일로 인식이 되어 있다. 물론 환경 설정이 그렇게 되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주부 당사자들조차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인식할 수가 없었고 그 가치를 내세울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최저 임금으로 계산한 것도 사실은 옳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렇게 해서라도 주부의 노동력에 대한 평가 절차를 일단은 시작하고자 했을 뿐이다.
인생의 반을 보내고 보니 자꾸 스스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내 인생에 대한 가치를 찾아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자체가 큰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리고 자기 삶의 가치는 자기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문득 써 내려간 글이지만 이렇게라도 써보니 내 노고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결과를 얻게 된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전과 지금의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니 말이다.
어제 아는 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언니는 집안일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직업을 가지고 양쪽에서 평생 일을 해 왔는데 지금도 만만치 않은 늦은 나이임에도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옮긴 직장은 그야말로 코에서 김이 폴폴 나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한다. 가정과 밖에서 두 가지 일을 다하고 있는 언니가 존경스러웠다. 물론 나 역시 지금은 코로나로 일을 그만두었지만 바깥일도 틈틈이 하면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최근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후를 어떻게 행복하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화두가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당연히 금전적인 문제가 우리에겐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다. 노후의 삶에서 질병이나 기타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가 없는 상황들도 많기 때문에 당연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기도 하다.
얼마 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젠 노년을 보내는 것도 그 트렌드가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평균수명도 늘었고 가지고 있는 재산을 쓰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므로 스스로 재화를 더 창출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젠 돈을 쌓아놓고 그것을 은퇴하고 나서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 500불씩이라도 벌어나가면 그것이 바로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고 사회관계 망 속에서 고립되지 않으면서 노후를 또한 윤택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난다. 60대 이후에 한 달에 500불씩만 번다해도 그것은 2억여 원의 예금을 은행에 가지고 있는 것과는 동일하다는 것 말이다.
일하는 노후를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 #애니맨이라고 하는 앱에 대한 소개를 김미경 MKTV에서 방영한 것이 생각이 난다. 누구나 앱을 통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심부름센터) 노년층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그런 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특별한 기술이 있지 않아도 나이가 많아도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사람들이라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면서 자기의 수입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한다.
그 영상을 보고 우리 주부들이 생각났다. 사회적 신뢰도가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주부들에게 맞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에 주부들도 이제 주방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일을 하려다 보면 준비를 해야 한다. 컴퓨터, 디지털 지식, 영상편집 등 나만해도 최근에 들어서 배워나가는 영역이 정말로 다양하다. 어쩌면 그동안 하고픈 것들을 이제부터 하면서 수입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나도 나의 미래에 대해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시간과 더불어 사이좋은 척 그러나 속으로는 갈등을 겪는 백조 부인처럼 이중적인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젠 나도 주방을 넘어서 내가 하고픈 것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며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 둘이 독립을 하고 나니 확실히 할 일이 준다) 그동안의 노고가 모두 더 값어치 있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엔 프라이팬을 더욱 정성 들여 부드러운 수세미로 닦아 주었다. 그러면서 더 다부진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이제 주방에서의 시간을 좀 더 효과적으로 단축하고 또한 나만의 공간이 아닌, 남편, 자녀들이 함께 공동 작업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싶다. 이처럼 누군가가 주방을 거들어주어야 주부들도 마늘 냄새나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무엇인가, 어디에선가 어떤 것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주방이 주부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주부의 변신은 자유이지만 주부가 주방을 벗어나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스스로도 이제 자기만의 영역을 남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내려놓는 마음도 필요하고 그리고 그런 주부에게 적극적으로 자신도 돕겠다고 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은발을 날리며 주방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쟁반에 음식을 올려놓고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는 남편의 모습이야말로 너무 근사하고 멋진 모습일 것 같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그런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래야 남편도 그동안 삼시 세 끼를 준비해왔던 아내의 노고를 이해할 수도 있고 상대의 노고를 알아야 진정으로 통하는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 역시 남편의 노고를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새로운 나의 인생 후반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브런치의 작가가 된 것이 그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나만의 공간이었던 나의 소중한 부엌을 남편에게 우선은 부분적으로 (토, 일) 양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남편 씨 우리 조금씩 달라져 볼까요?
이제 나만의 주방이 아닌 우리들의 "주방을 당신께 부탁해요!!!"
생각만 해도 기쁘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둘째로 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