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졸았다

일힘처럼 쉴힘도 필요하지 않을까?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나는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반짝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아차리게 된 것 같다. 그 많았던 시간들을 닥치는 대로 열심히만 살아오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보냈던 시간들이 마치 손가락으로 꽉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들 같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다가오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너무 기대가 커서일까 맛있는 만찬 뷔페처럼 준비된 시간 앞에서 마치 무엇을 먼저 먹어야 좋을지 몰라 설레며 흥분하는 어린아이처럼 젓가락을 들고 이것 먼저 먹을까 저것 먼저 먹을까 하며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갱년기가 지나면서부터 나는 계획 없이도 어둑어둑한 새벽에 자명종 없이 잘 깨어 난다. 일찍 일어나서도 멀뚱멀뚱, 잠인지 꿈인지 모르는 몽롱한 시간을 보낸 세월이 적어도 5년은 넘는 것 같다. 여름의 아침은 그래도 새들이 있어 견딜만했다. 비록 비몽사몽중 잠꼬대 같은 기도 같아도 새벽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새들과 함께 하늘에 올려 드렸다. 그러다가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인 겨울철에는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위안 삼았다. 그 정도라도 내게는 미라클 모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알차게 아침을 보내며 앞으로 다가올 노후를 멋지게 준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계획 하듯 빼곡하게 계획표에 적어서 하나씩 해 치우는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되어 마음이 분주했던 것이다. 새로 만든 아침 루틴은 우선 예전처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을 매일 쓴다고 생각을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침이라 기분이 상쾌해서인지 나의 의식이 이슬처럼 영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머릿속에서 뛰어나와 허공을 떠 돌며 "나 좀 잡아봐라" 하는 낯설고 기발한 생각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게 되기도 한다. 글을 짓기 위해 필요한 이것들도 그나마 새벽이라야 조금 잡히지 기운이 떨어지는 저녁나절이 되면 만사가 피곤해져서 그런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쉬려고 어디 가서 앉으면 꾸벅꾸벅 졸음이 온다.


나는 생각나는 글들을 곱게 다듬어 한 글자씩 한줄한줄 메꾸어가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런 사람은 단정하고 곱상할 것 같다. 내 메모노트는 그야말로 생각나는 글들을 붙잡으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 보이는 무질서, 혼돈 그 자체이다. 어쩌다가 내 노트에 끄잡힌 낱말과 문장도 다듬어서 써야지 정말 오죽하면 나에게 잡혔을까 싶을 정도로 꼬락서니가 엉망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잡혀서 재미가 없다는 듯이 늘어져 있고 때로는 신음하고 있는 것 같다.


하여간 그렇게 나의 아침 시간은 마음속 전쟁 격전터가 되기도 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면 하면 뭔가 뚝딱 좋은 글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될 것 같다. 때로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해 놓은 것 없이 분주하기만 하고 피곤하기까지 하다. 온갖 떠오르는 상념들을 제대로 정리를 못한 경우에는 뭔가를 뒤에 두고 온 것 같이 더 찌뿌둥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결과는 없을지 몰라도 그 시간이 가장 살아있는 시간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그동안 하릴없이 놓쳐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 곱셈이라도 해서 늘려놓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앞서가는 마음보다 훨씬 못 미치는 나의 집중력과 흐릿한 시력 때문에 종종 시간은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흘깃 쳐다보면서 성큼성큼 한 큰 보폭으로 후딱 지나가버린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멀티 생각 플레이어인 나는 부지런한 하기도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소리만 요란하고 해 놓은 것은 없는 게으른 사람 같았다. 그렇게 나를 놀려먹는 시간 때문에 나는 가끔 속상했다.


그런데 드라마틱하게도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진짜 미라클 데이 드림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 기쁘던 지난 여름날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로또 같은 시간이었다. 온전히 나로 쉴 수 있었던 시간, 아무런 욕심도 없이 그냥 있는 시간 가운데 평화롭고 행복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 "치유하는 글쓰기"란 책을 읽고 있었다. 저자인, 박미라 작가가 소개하던 책 속의 마음 치유 그룹원들의 이야기에 전이되어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나도 그들처럼 "Healing"되었던 것 같다. "Healing"의 어원은 전체, 하나 됨의 뜻이라고 한다. 그때 책과 나는 하나였다. 책을 읽으며 어린애처럼 흐느끼다가 노곤하던 차에 잠시 깜빡 졸았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공간을 꿈이라고 하는 것일까? 낮의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감싸주던 시간 때문이었을까? 나는 꿈속에서 또 다른 "어린 나"와 깡충깡충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얼마 동안이었을까?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노는 것이 너무 좋은 아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착한 아이가 꿈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자기 좀 바라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나 좀 봐요, 여기 좀!" 내 딸처럼 어린 나의 해맑은 모습은 내가 전혀 모르던 모습 같았다. 그것은 나의 원래 모습, 구김 없고 사랑스럽고 예쁜 모습이었다. 그냥 거기에 좀 더 머물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날벌레 한 마리가 나의 귓가를 날아다닌 통에 나는 그 꿈같은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던 그 순간, 그 짧고 달콤했던 순간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였고 내가 잊고 있던 삶에 대한 경이, 호기심, 기쁨, 환희 같은 것들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 삶은 경이다. 내가 바라보는 곳에 보물이 있는 것이었다. 단지 어린이 같은 마음이 아니면 볼 수 없을 뿐!


그 잠깐의 시간은 그동안 내가 분주하게 보내던 날들과는 다른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내가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시간이라는 선물은 때론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닌 그 너머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나보다. 아침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뭔가를 하던 시간도 좋았지만 나는 의도하지 않게 잠깐 졸았던 그 낮잠의 시간 속에서 진정 행복한 나를 만났다. 그러니 매일 계획과 계획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살더라도 가끔은 우연처럼 다가오는 뜻하지 않은 행운도 기대해 보면 어떨까? 난 그런 행운을 지난여름에 만난 이후로 가끔 그때의 '어린 나'로 다시 돌아가 몸이 진동할 만큼 슬퍼하며 울기도 한다. 이유 없이 꿀꺽 딸꾹질처럼 울컥 올라오는 서러움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나 자신을 괜찮냐며 달래기도 한다. 그러면서 틈틈이 나 자신의 손을 잡아주면서 이젠 약하지 않고 강하다고 항상 곁에 있어 줄 것이라고 말해준다.


나를 스스로 찾아가 만날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장한 것도 알고 보면 그간 가졌던 경험과 책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시간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고자 서로 촘촘하게 연합전선을 만들어 구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휴식의 시간이 또 얼마나 중요한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골똘하게 궁리를 하다가 쉬는 순간에 창의적인 생각의 탄생이 생긴다고! 꿈꾸는 곳에 보물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깜빡 졸았기에 행복했던 그날 오후, 나는 더 좋은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깜짝 바캉스를 생각해 냈었다. 그래서 집 뒤뜰에 캠핑용 간이침대를 펼쳐놓고 반나절 하늘 바라보기를 하며 나랑 놀아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칸쿤도 하와이도 부럽지 않았다. 바라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초록 나무들이었다. 늘 보던 것들인데 웬일인지 마치 캠핑이라도 떠난 것처럼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때 하늘은 누워서 선글라스 끼고 본 하늘이라 그런지 더 파랬다. 지금도 나는 어쩌면 내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는 시간이 내게 줄 수 있는 기쁨의 시간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요즘도 가끔은 낮잠을 청한다.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쉬고 나면 다시 어린아이처럼 에너지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잠깐이라도 깜짝 졸아 보라고 말이다. 열심히 살 때 열힘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마도 쉴힘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쉴힘도 필요하다. 근사하게 계획하여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좋다. 나를 쉬도록 해주는 마음, 쉬게 해 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는 요즘도 종종 잠깐은 졸기도 한다. 누가 알겠는가? 다시 또 그 천진난만한 나를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