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의 순간 (2)

구름 곁 산행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그럭저럭 살아가다가도 어떤 상황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 뭔가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인정에 의지하는 야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솔직하고 싶을 때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철벽같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은 그대로 두고 변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이 움직여야 할 때는 또 어떤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오래 견뎌야 할 때 그럴 때 마음껏 달아나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혼자서 산에 왔다는 메디컬 학도인 여성이 달린다. 여성 혼자서 저렇게 산에 다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밑의 사진 중간 검은 점은 아기곰이다. 마주치지 않아 다행이다.



일단 떠나면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현실은 생각보다 덜 심각할 수도 있고 그 무게감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선을 분산함으로써 에너지를 저축할 수 있다. 여행 중 가장 으뜸으로 손꼽고 싶은 것은 자연과 직면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 샘물을 꿀꺽 거리며 마시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우리 가족이 가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그저 산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새롭다. 이번에도 자연이라는 위대한 존재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작은 것들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는 그저 그 웅장함 앞에 무릎 꿇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만일 나 혼자였다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밴쿠버 집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Cheam Peak이라는 산밑 Cheapmonk Recreation Site에서 2박 3일 캠핑을 했다. 자연으로 가면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어도 혼자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제법 주어진다. 무엇보다도 새벽에 혼자 깨어 숲에서 피어오르는 신선한 기운을 들이켤 때, 콸콸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담그며 그 차가움에 정신을 차릴 때등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날씨가 흐렸지만 출발을 했고 밤새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가 텐트에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지친 영혼에게 속삭이는 듯했고 그 속삭임이 달콤해서 어린애처럼 즐겁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 김치찌개로 밥을 먹고 '밴쿠버 오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 유투버 부부와 함께 Cheam Peak으로 향했다. 우리는 산의 1000미터 부분까지는 랭글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산의 정상까지는 3시간 정도 등산을 했는데 올라가면서 2000미터 정도의 고도에서만 자란다는 허클베리를 따 먹으며 걸어 좀 지체된 것이다. 작은 묘목 같은 나무에 달린 허클베리는 새콤하고 달콤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마늘냄새가 난다고 하고 심지어는 햄버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순전히 자기 맛대로 해석을 한다고 하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자연인이 되어 입술이 새 파래지도록 먹었다.




신비스러운 안개에 싸여 산에 올라갔다. 정상에는 해의 등장을 축하하듯 구름들이 몰려들었고 발아래에는 믿을 수 없는 구름 세상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늘세계가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구름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보잘것없이 작아진 존재라고 느껴져 더 가벼워졌다. 어깨에 진 무게를 다 벗어던진 것 같았다. 깎아지르듯이 내리 꽂힌 절벽의 위에 서니 날개 달린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라며 나를 찾을 이유조차 없어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머리 위에서는 구름 속의 태양이 뽀얀 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다람쥐는 뭔가를 달라고 자주 우리들 앞으로 출몰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땅콩을 주니 볼이 터져라 욱여넣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어딘가에 저장하고 또 얻으러 온 것인데 그들도 자신의 저장물을 어디에 둔지 찾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하니 웃음이 났다.




올라갈 때는 구름에 휩싸여 있던 길이 내려올 때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내려가는 길에 마멋이라고 하는 동물이 먼발치에서 동상처럼 앉아 있었다. 사람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산 정상 부근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던 그의 자태는 그야말로 모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아해서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가 저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언제까지나 저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내려가는 길에 마치 에덴동산처럼 생겨 쥬라기 공룡들이 마구 튀어나올 것 같은 초록 공간이 있었다. 뭔가가 움직인다고 하여 일행이 드론으로 확인을 했는데 아기 곰이었다. 지천에 깔린 허클베리를 따 먹던 곰은 엄마도 없이 혼자 돌아다녔다. 주차장에 이르기 전에 길 양옆으로 무리 지어 피어있던 야생화들을 어떻게 잊을까 싶다. 앞으로도 수십만 번 이상 내 시야에 머물며 나를 위로해 줄 존재들에게 해 줄 것이 없다.




나는 압도적인 광경으로 하늘 기적을 보여주던 그 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럴 때면 다시금 아주 먼 공간에서 나를 바라보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돌봄을 받는 아기 같은 작은 존재였다. 내 영혼에 깃든 감사한 마음은 다시금 나를 새롭게 했다.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의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자아가 너무 커져서 나 중심으로 파고들어 갈수록 나를 지은 매뉴얼을 가지신 분의 시각으로 돌아가려 한다. 자연으로 가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된다.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라는 책에서 본 글 중 인상에 남는 글을 옮겨와 보았다. 여행은 세 번 다녀온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에 준비하면서 한번, 실제로 여행 가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돌아온 뒤에 지난 여행을 추억하면서 다시 한번, 이렇게 말이다. 다시 떠날 생각을 하는 시간이 좋고, 가서도 좋고, 다녀와서도 좋을 테니 자연으로 떠나는 산행보다 좋을 수는 없다. 짧더라도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버거운 현실 안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구름 사이로 우리를 내려다보던 그때의 태양을 만나고 싶어 다시 떠나야겠지만 그 찰나를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단 한 번뿐인 찰나는 그때뿐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함께 간 일행인 '밴쿠버 오하이'채널입니다.

아직 Cheam Peak 영상은 안 올라 왔네요.^^ 구독 좋아요는 사랑입니다. 아 쑥스럽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ayQtdsQx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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