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핫했다. 뜨겁고 메마르고 타오르는 여름이었다. 집 앞 잔디가 누렇게 말라죽고 집 앞을 지키던 나무도 거죽이 누렇게 변해서 뿌리까지 적실만큼 매일 물을 주었다.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소를 잃지는 않은 것 같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산불의 영향으로 매일 대기 오염지수를 찾곤 했다. 휴가를 맞아 가야 할 곳을 정해야 했는데 떠나기 전날까지도 하늘은 회색으로 매연이 가득했기에 어디로 갈지 몰랐다.
휘슬러 쪽은 검색 결과 연기가 심하지 않은 것 같아 그쪽으로 향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활약한 곳, 캐나다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다. 그곳에 가려면 Sea to Sky라고 하는 하이웨이를 타게 된다. 캐나다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No.1 하이웨이가 시작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왼쪽으로는 드넓은 태평양과 흩어져 있는 섬들을 바라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는 깎인 산맥을 끼고 밴쿠버에서 약 한 시간 반 가량 달리면 휘슬러에 도착한다. 휴가지로 떠나는 차량들이 커브길이 심한 구간도 빨리 달리므로 초보 운전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휘슬러 가기 전 스콰미시라는 작은 타운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밴쿠버에서 약 50분가량 떨어진 곳이다. 산에 올라 전망이 좋은 곳에서 텐트를 치는 차박 캠핑을 주로 하는 편이라 평소 캠핑장 예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라 더 편안한 캠핑을 하고 싶었다. 마침 Paradise Campground에 한자리가 남아 하룻밤을 묵었다. 파라다이스 캠핑장은 주립 캠핑장에 비해서는 비싼 편인데 (1박 50불가량)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도 샤워실도 깨끗했고 간단한 커피와 아이스크림 등 스낵을 파는 오피스가 있어서 편리했다.
파라다이스의 밤이 되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숲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아이들이 머리에 단 랜턴이 숲 여기저기 비추는데 꼭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프로판 가스를 모닥불처럼 피워놓고 두런두런 정겹게 이야기는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이 붉은 불빛에 어른 거렸다. 캠핑장의 식구들은 각기 다른 개성대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옆은 루프탑 텐트에서 편안하게 잠을 청하고 갔다. 기타 캠핑카와 텐트족도 많았다. 캠핑하는 식구들도 식구들이지만 늦은 저녁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푸른빛 하늘을 배경으로 숲이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게 재미있어 그저 바라만 보는데 실실 웃음이 나왔다.
파라다이스에서 1박을 하고 캐나다의 국민 참새 방앗간, 팀 홀튼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휘슬러로 출발했다. 마스크 없이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이제 조만간 다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영업장도 제제를 받을 터인지라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커피 한잔씩을 뽑아 들고 휘슬러의 이곳저곳을 슬슬 걸어 다니다가 다시 1박을 묶을 곳인 캠핑장으로 향했다.
하룻밤 15불을 내는 관리인 없이 운영되는 Calcheak Recreation Site라는 캠핑장이었다. 비용은 알아서 입구 쪽에 설치된 곳에 넣으면 된다. 휘슬러 지역에서는 비싼 돈을 내고 호텔에서만 투숙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니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에 있는 Sea to Sky 산책길이 호젓하고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왔다. 회색빛이 도는 신비스러운 비취색 강물이 콸콸거리면서 굽이쳐 흐르는 곳이었다. 간간히 우는지 웃는지 모르겠는 숲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도 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물가에서 책을 읽거나 누워 자는 가족들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묶고 출발하기 전 Sea to Sky Trail을 걷기로 했다. 신비스러운 회색 웅덩이가 군데군데 산재한 산책길이 호젓하고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왔다. 2킬로 정도 걷다 보니 물길을 가로지르는 작은 구름다리가 나와 출렁거리는 중에도 가족 셀카를 찍었다. 구름다리를 건너고 나니 철길이 있었다. 기차가 다니는 것 같지 않은 호젓한 철길에서 배짱도 좋게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머문 곳은 캠핑장 초입이고 더 깊숙한 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걸어놓은 빨래가 마르는 모습도 반가웠다.
두 번째 캠핑장 숙박 후 집으로 향하다가 하이웨이 옆 전망대에 들러 빙하가 거대하게 박혀있는 Tantalus 산을 구경하였다. 지구환경이 나날이 척박해지고 있는데 저 산맥 위의 빙하도 언젠가는 녹겠지 싶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으나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스콰미시의 독수리를 구경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식사를 하였다. 많이 알려진 곳이라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파티오 테이블에 앉아 네 가지 메뉴를 시켜서 먹었다. 샌드위치, 피시 앤 칩, 치킨 윙, 토마토 수프와 빵이었는데 풍경이 아름다워 그러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바로 옆에는 강가에는 갈매기들이 떼 지어 놀고 있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 11월이 되면 어디선가 날아온 독수리들이 떼 지어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11월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Porteau Bay이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하기로 했기에 저녁시간까지 해변에 앉아 졸다가 깨다가 하며 한여름의 오후를 누렸다. 까마귀와 갈매기가 흑백의 순수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서로 편을 갈라 해변에서 놀고 있었다. 이 들과 달리 머리를 물속으로 쿡 처박으며 물속으로 들어가 42초 이상 나오지 않는 물오리도 있었다. 어쩌나 싶어 바라보는데 세 마리가 리드믹컬 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반은 물고기인 것 같은 새였다.
Portpeau bay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바라본 바닷물 위에 반짝이던 윤슬이 내 눈 속에서 여름의 기억으로 반짝인다. 햇살이 산고개를 넘어가며 달콤하게 윙크하듯 남겨준 그 순간이 올여름의 정점이었다. 팬데믹의 시기를 보내며 검게 그을었던 마음을 대자연은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소중한 존재로서 돌봄을 받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는 그런 순간이 없다면 여행은 그저 거주지의 이동에 불과할 것이다. 자연은 사랑의 공간이다. 여행은 그 사랑의 공간을 향한 떠남이다. 언제든 임의로 찾아갈 수 있는 여행길은 축복의 길이기에 다시 떠나고 싶을 뿐이다.
어스름하게 저녁이 가까워지고 있는 해변의 풍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해변가 캠핑 촌의 테이블 곳곳에는 지글지글 저녁을 짓는 소리와 냄새가 보이는 듯했다. 어느 테이블에 선가는 비트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아이들이 까르르 하고 있었다. 올여름엔 캠프 화이어가 금지되어 있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못하던 이야기도 불꽃 앞에서는 저절로 오픈되는데 말이다. 일주일간의 휴가 중 2박 3일을 보냈고 집에서 과제가 많은 아이들을 위해 1박을 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에도 정해진 곳은 없다. 어디든 길이 있으면 떠나고 가고 나면 또 떠나게 만드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집 밖으로 나오면 그 순간부터가 여행이다. 집안의 무엇이 우리를 구속하길래 우리는 길에 나와서야 행복해지는 것일까 싶다. 관광지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더 여유로워 보인다. 그들의 미소는 바람처럼 가볍게 보인다. 여행이란 떠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영역이다. 매일의 삶과는 다른 일상으로 떠나 삶의 의외성을 만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집이 좋다"이다. 그런데 떠나야 집이 좋은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을 통해 일상이 객관적으로 바라보이는 모양이다. 여행할수록 평범한 하루가 더 고귀하게 느껴진다. 그러길래 떠나면 더 알게 되고 그래서 떠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으로 여름 여행이 끝나지는 않았다. 몇 년 만의 일주일간의 휴가로 잔뜩 들뜬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여름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지난여름이 고된 만큼 떠난 자가 누리는 축복이라니 감사할 뿐이다.
여름 여행의 순간 2부 순서는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 많은 사진으로 보여드리고자 한다. 다시 못 올 것 같은 순간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