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먼저 당당하고 발랄하게 솔직할게
아이들 곁에 있어주고 싶다. 늘 그러고 싶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가까운 거리로 치면 이보다 더 가까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순간이 많다. 가족이라고 해서 마음의 거리도 지척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끔 안드로메다쯤에 가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볼 때면 가슴에 철썩 파도가 친다.
언젠가 불현듯 누구에겐가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힘든 감정을 털어놓고 끙끙 앓았던 경험이 있다. 또 누군가도 나에게 그랬고 자기 스스로 멀어져 갔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자신도 상대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감정을 나누며 솔직하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가족 간에도 좋은 감정,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라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이 많을 텐데 하면서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못한 이야기, 안 한 이야기를 다하려면 억만년의 시간이 필요할 정도다. 아이들에게 올인하며 웃게 해 주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살았던 세월만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전전긍긍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불편한 지경이 된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엄마'라는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언감생심, 내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따뜻한 엄마였으니까, 자상한 엄마였다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좋은 엄마로 남고 싶어 좋은 이야기만, 행복한 이야기만 하고 살았다. 친정어머니에게도 어려울 때에는 잠수를 타고 행복할 때에만 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감추고 있는 딸의 고뇌에 대해 모르고 있지 않으셨다. 짐작하느라 추측하느라 더 고통스러워하셨다. 부모는 힘들 때 함께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무너진다. 조금의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던 기회를 부모로서 놓쳤다는 사실이 부모를 망연자실하게 한다. 사실을 알게 될 때보다 추측할 때 훨씬 더 고통을 느낀다. 내가 솔직하지 못했기에 엄마는 늘 이럴까 저럴까 가늠하느라 더 힘들었으며 그래서 더 가슴 아파하셨다.
우리가 가족으로 살아왔으면서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 그러고 보니 너무 많다. 같이 살아왔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싶다. 이제 아이들도 독립하여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대화를 더 잘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법인 것 같다. 가까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으면 모른다. 한 길 물속보다 열길 가족의 속을 더 잘 알도록 돕고 싶다.
가족과 더 가까워지고 행복해지려면 더 솔직해져야 한다. 현실을 무시한 가장된 표현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운 더 솔직해 지기가 더 어렵다. 솔직하려면 일부러 용기를 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해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어쩌면 솔직해지기 어려운 이유가 인정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행복한 사람, 괜찮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슬픈 일은 감추려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엄마로서 행복한 삶의 모델이 되어 주고 싶은 과욕이 앞섰던 것 같다. 딸들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결국 다 들키고 만다. 감정이 원래 그런 것이다. 물속에 공을 아무리 집어넣으려 해도 결국 튀어나오는 것과 같다. 감정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데 골라서 좋고 기쁜 감정만 나누고 살 수는 없다.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자연스럽고 편한 관계가 가족이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울고 싶었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한다. 자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오랜 기간 고착된 감정 표현 방식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꾸준한 감정 표현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솔직하지 않은 엄마로 살아왔다. 엄마라는 명분으로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괜찮은 척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살아왔다. 낮은 자존감은 자신이 가진 것만큼 대접받을 수 있다고 믿게 했고 스스로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믿었기에 더 행복하게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마는 찡그리면서도 입술은 웃고 있는 미소천사였다. 가끔 울고 싶은데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때가 있다. 겉으로는 괜찮은데 어린 시절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가 깨었을 때처럼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모를 울음 끝, 딸꾹질이 올라온다.
이제 가슴앓이 그만하고 가족에게도 솔직해지자. 친한 친구와 나누었던 것처럼 나누자. 내 슬픔 정도는 알아차리고 위로해 주겠지, 나중에 철이 들면 다 알았었노라며 꽃다발이라도 챙겨 주겠지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말아야겠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감정을 나누어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한길 물속보다 더 깊은 열길 내 속도 가족이라고 해도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어쩌면 가족도 몸과 마음이 완전히 다른 타인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치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가족을 대하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뭔가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말하지 못했던 진실, 슬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자.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 시간의 끝이 지금 우리 문턱의 앞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불안과 슬픔도 나누어 괜스레 추측하고 걱정하지 않게 솔직, 발랄하고 당당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체면 따위는 버리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야겠다. 가족이야말로 나와 같이 평생의 동행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어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