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연인으로 살 수 있을까?
제리라는 산 사나이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Sep 21. 2021
어느새 어둑해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10미터가량의 자갈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우리 쪽으로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산으로 올라갈 때 빼놓은 공기를 타이어에 다시 주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차에 대해 아는 체를 하며 타이어 앞에 수그리고 있던 남편 곁에 한쪽 무릎을 접고 앉았다. 모자를 쓴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파르르 떠는 공기압 기구의 바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적 없는 그곳, 더군다나 검은 밤하늘 말고는 보이는 것도 없는 그 시간에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얼마 전 집 근처에서 산책할 때 보았던 여자의 사진이 생각났다. Missing Person이라고 쓰여있는 사진에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어떤 여자가 웃고 있었다. 갑자기 어깨 근육이 힘이 들어갔다. 웃고는 있었지만 양쪽 귀를 쫑긋하며 토끼처럼 곁눈으로 그를 슬금슬금 내려다보았다. 남편은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정보를 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리'라고 하였다.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자 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내 질문에 대답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내 옆에 섰다.
그는 단단한 중간 크기의 체격에 얼굴 옆과 아랫부분에 수염이 까칠하게 나 있었다. 짧은 머리에 선량하게 생긴 둥근 눈에 웃음을 띄고 있었다. 여러 겹의 옷을 겹쳐 입었고 겉옷은 국방색에 주머니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산에서나 볼 듯한 그런 옷차림이었고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노숙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그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자기가 주워 온 돌이라고 하였다. 작은 자갈돌 몇 개는 핑크색을 칠한 것이었다. 이어서 그가 또 꺼낸 것은 주먹만 한 돌멩이었다. 나는 한편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아무렇치도 않은 듯 그의 손을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발견한 것처럼 비추었다.
그가 말했다. "이것 좀 봐, 이 돌에 그린색, 보라색이 있다. 참 신기해" 나는 호들갑을 떨며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오호, 그렇네. 신기하다. 어디서 주웠어. 멋지다" 고 댓구를 했다. 남편의 머리는 바로 돌멩이 아래에 있었다. 낮에는 초록빛이 충만한 아량 넓은 품처럼 느껴졌던 숲이 검은 의상을 입은 밤의 도적들처럼 으스스하게 서 있었다. 강하고 낯선 사나이와 그의 손에 들린 주먹만 한 돌멩이, 그리고 남편은 그의 돌멩이 아래에 아무렇지도 않게 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시나리오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아이 둘을 남기고 사라졌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 어떤 여자도 생각이 났다. 낮이라면 모를까 이 사나이는 이 시간에 어쩌자고 산으로 들어가려는 것일까 싶었다. 만나는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솔직히 나쁜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흉흉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가려내는 안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제리는 돌멩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는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휴"하며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어깨의 긴장된 근육은 아직 그대로였으나 놀란 토끼처럼 곁눈질을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더 수다스러워지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Dewdney Peak에 다녀오는 길이야. 제리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 그는 산 어딘가에 있는 Cabin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곳에서는 불을 땔 수도 있으며 양식도 있다고 하였다. 만일 가고 싶다면 같이 가도 된다고 하였다. 세 사람이 충분히 지낼 수 있다고도 했다. 하루 종일 그 산에서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고 그런 곳에 Cabin이 있다니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은 자동차 바퀴 4개 중에 4번째 바퀴에 공기를 주입하려는 참이었다.
제리에게 다시 물었다."혹시 이 산 어딘가 추천해줄 만한 그런 곳은 없어?" 다녀본 산중에 가장 밋밋하고 특색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소리가 나는 계곡이 있었지만 내려가서 볼 생각을 하지를 못했었다. "Rose Lake, 그리고 Dickson Lake 가 있지. 그리고 내가 발견해서 이름 붙인 호수도 있는데 딸의 이름을 붙여 주었지". 그러고 보니 그는 결혼한 적이 있는 사내였던 것이다. 그가 돌을 보여줄 때 플래시에 비친 그의 손은 두툼하고 거칠었으며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그의 억양은 부드러웠으나 필경 최근에는 혼자서만 살아온 듯 산과 들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밤도 깊어가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몇 미터 앞의 허연 길뿐이었다. 그는 비를 살살 뿌려대는 하늘을 검은 우산처럼 받치고 저벅저벅 산 깊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것이다. 커다란 돌들이 굴러다니는 산으로 향하는 길은 누군가를 나가 자빠지게 할 만큼 심술이 나 있었다. 낮에 혼자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그들은 배낭을 메고 제대로 장비를 갖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사나이는 도대체 이 시간에 어쩔 셈인가 싶었다.
우리에게 자기가 머물 Cabin에는 먹을 것도 있고 불을 땔 수도 있다고 했지만 거기까지가 몇 킬로인지 물어보지를 못했다. 남편이 타이어에 공기를 다 주입시키고 일어서자 그는 인사를 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겉옷 아래에 입고 있던 후디의 모자를 끌어당겨 소곤소곤 내리는 비와 함께 걸으려는 듯했다. 한밤중이지만 그가 많이 외로웠으며 잠시간의 대화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만나서 반갑다며 예의도 바르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뒷걸음질 쳐 사라져 갔다. 그의 돌멩이를 넣은 겉옷의 주머니는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흔히 산에 가는 사람들이 챙기는 배낭도, 그리고 곰 스프레이도 , 물통도 가지질 않았다.
낮과 다르게 낯설게 보이던 산이 그에게는 검은 앞치마를 두른 엄마인 것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는 애써 자연스러워 보이려 하지 않았지만 그저 그래야만 하는 처지였는지도 몰라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곰도 달려들지 않으리라. 가엾은 제리, 자신이 이름을 붙여준 호숫가를 찾아 딸과의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 핑크색 자갈을 주머니에 들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눈이 촉촉해지는 것 같아 공연히 눈을 깜빡거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그렇게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이코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굴던 남편은 내가 그렇게 말이 많았던 이유를 결코 모를 것이다.
제리가 자연인이든 자유인이든지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었기를 바란다. 그가 Cabin까지 무사히 가서 화덕에 불을 붙이고 그 밤을 무사하게 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21킬로를 걸어 발견한 호수에 딸의 이름을 붙여 준 것처럼 온갖 자연에 이름을 붙이며 살갑게 굴 것 같다. 제리가 비록 혼자서 야밤에 산에 오르기는 했어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딸과 낮에도 산행을 하기를 바란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제리를 '자연인이거나 자유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순전히 나 좋으라고 하는 꿈보다 해몽 격의 해석 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해몽을 잘해볼까 한다. 밤에 비를 좀 맞으며 깜깜한 산길을 걷는다고 가엾게 연민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비와 눈과 바람과 별과 시'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는 하늘이 지붕이고 들과 산이 집인 자연인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차를 타고 산에 오르던 우리를 안타까워했는지도 모른다. 수만 보를 걷는 것 정도는 밥 먹듯이 하며 우리가 모르는 산 열매, '허클베리' 같은 불사약으로 몸을 다스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제리는 Cabin에서 불을 땔 수 있고 그곳에 우리와 나눌 양식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윌든'의 작가 '소로우'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장작을 패서 캐빈에 잔뜩 쌓아두고 자작자작 타는 불꽃을 바라보며 밤을 날 수 있다면 말이다. 날이 추워지면 주변에 있는 나무를 도끼로 잘게 쪼개어 불 쏘시개 삼아 화덕에 불을 지필 것이다. 그러면 외로움 따위는 다 불꽃 속으로 타들어 갈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불춤을 추는 동무에게 시비를 걸 듯 부지깽이로 뒤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잠이 올 것이다. 팔베개하고 잠들었던 숲에 아침이 찾아오면 새들은 왁자지껄 하며 그를 깨울 것이다.
산속 Cabin에는 철새처럼 그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하루 종일 끌고 다니며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토해낼 것 같다. 그러나 우뚝 선 산봉우리에 기대고 천둥번개 치는 하늘이 두렵지 않다면 모를까 아무나 제리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제리는 야심 찬 자연인이거나 자유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앞으로 산에서 발견할 호수에게는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 궁금해진다.
제리가 알려준 Dickson lake , '윌든'의 소로우가 호수 깊이를 쟀던 것이 생각난다. 이 호수에는 Rainbow Trout와 Cutthroat Trout가 산다고 한다
윌든 (Walden)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남긴 말
그대의 입구는 유쾌한 들판, 이끼 낀 과일나무들이 들판의 일부를 기운찬 개울에 양보한다. 개울의 임자는 소리 없이 움직이는 사향쥐와, 여기저기 헤엄쳐 다니는 경쾌한 송어들
이곳에 시인이 집을 지었다. 그 멋 옛날에. 보라 다 쓰러져가는 이 초라한 오두막집을.
이곳 경치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때 묻지 않은 약간의 햇빛이니..... 중략
울타리를 친 그대의 풀밭에는 아무도 잔치를 벌이며 놀지 않는다..... 중략
그대는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며 묻는 말로 괴로움을 받지도 않는다.
소박한 갈색 옷을 걸친 그대 처음이나 지금이나 순하기 짝이 없다...... 중략
오라, 사랑하는 사람들아, 그리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같이.... 중략
마침내 햇살은 직각을 이루고 따뜻한 바람은 안개와 비를 몰고 와서 눈 덮인 둑을 녹인다.
안개를 흩어 버리는 태양은 향을 피우듯이 김이 모락모락 오른 적갈색과 흰색이 교차된 풍경 위에서 미소 짓고 있다. 졸졸 흐르는 수많은 실개천과 개울의 음악에 흥이 겨운 나그네는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뛰어 건너며 이 풍경 속의 길을 간다. 개울들의 혈관에는 겨울의 피가 가득 차서 떠내려가고 있다.
부드러운 이슬비가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놓쳐버린 기회에 대해 속죄하는 것으로 (그것을 우리는 의무의 수행이라고 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사실이지,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 않는다. 나의 생활 방식은 자신들의 오락을 밖에서, 즉 사교계나 극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비해 한 가지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나의 생활은 그 자체가 오락이었으며 끝없는 신기로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장으로 구성된 끝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