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장난을 치다 그릇을 떨어뜨린다. 이들의 과감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비와 복남이는 입양 후 우리랑 산지 5개월 된 고양이다. 부드러운 털 복숭이 생명체들은 꼬리 때문에 낯설으면서도 살갑다.
이들은 입양 5개월 만에 우리집을자신들의 요새로 만들었다. 우선 주방 공략, 부엌 싱크대로 앉은자리에서 점프한다. 그러면서도 프라이팬이 자신을 구워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한눈을 팔다가 이들이 가스 오븐에서 불맛을 보게 될까 봐 신경이 곤두선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 철부지들의 놀이터다.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불빛이 나는 전구가 눈에 거슬렸는지 이빨로 끊어버렸다. 열린 서랍에 들어갔다가 갇히기도 하다. 동작은 또 얼마나 민첩한지 계단을 내려갈 때면 실크 드레스처럼 발목에 휘감긴다. 며칠 전에는 턱시도 맨, 복남이가 없어졌다. 혹시 도망쳤나 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디쉬 워셔 안에서 찾았다. 큼큼한 냄새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다. 세탁기에도 날름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빨랫감 사이를 더듬거린다. 어디를 가든그림자처럼 소리도 없이 따라붙는다.
그런가 하면 낭만적 시간을 보낼 줄도 안다. 창가에 앉아 밖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에는 영혼이 있는가 싶다. '멍'때릴 때에도 품격 있어 보인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새들이 지저귀는 창밖의 풍경에 갸우뚱할 때 귀여움이 폭발한다. 게슴츠레 한 눈으로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는 날개 없는 부엉이 같다. 검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볼 때에는 옆모습이 표범이거나 치타의 그것과도 닮았다. 야성이 근질거리는 밤이면 뒷마당을 산책하다가 어디론가 잠시 사라지기도 한다. 아직 쥐를 모르는 것 같다. 영원히 그러기를 바라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릴 것이다. 잠시 문이 열린 틈으로 나간 이들을 도로 불러들이려면 춥춥 간식이 최고다. 빨갛고 까칠까칠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꿩 대신 닭인 줄도 모르고 먹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제멋대로 하는 자유분방함, 모두 세심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그런 본능적인 그들의 행위가 계산된 나의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완벽하다. 애초부터 밀당이라는 것조차 아는 것 같다. 친절하면서도 쌀쌀맞다. 그래서 쿨하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싫증이 나기 전 떠나며 외롭기 전에 찾아든다. 서로 싸우다가도 어느새 서로 털을 고르고 핥는다. 사과는 누가 먼저 하는지 자연스럽게 물처럼 풀어진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 해도 기어이 파고 들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면 "고양이는 액체다"라는 말이 맞다. 똥오줌을 치우려고 하면 꼭 눈앞에서 용변을 본다. 능청스럽게, 야릇한 표정을 하며 배설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변태 같다. 그래서 나와 다른 짐승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고양이, 본능적으로 행동하지만 그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내게 기쁨을 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때론 종이장처럼 몸을 쫙 펴기도 하고. 동그란 공처럼 몸을 마는 묘기도 보여준다.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다. 그들과 함께 놀다 보면 자주 깔깔하고 웃는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상대방을 웃겨주는 이들은 지금을 누릴 줄 아는 시간 엔터테이너이다.
언젠가부터 '나'라는 사람에게 짜증이 났다. 알고 보니 입만 열면 불평이었다. 답답했다. 뭔가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없어 수십 년간의 노력이 헛수고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삶의 모델이 주변에 없던 탓일까? 지름길도 없이 빙빙 돌아오면서 지쳐버려 만사가 다 피곤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감쪽같이 '나' 스스로를 속일 정도로 많이 슬펐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문득 초라하게 느껴졌다. 오염된 생각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기분은 제멋대로였고 말과 행동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저렇게 하며 미꾸라지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아, 사는 것에 실패하고 있는 것인가?" 초조했다.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뼈를 깎듯 스스로 자신을 성찰할 때 변화는 찾아온다. 이럴 줄 알았는지 그간 저축하듯 읽은 책과 들어 두었던 강연들로 인해 부족함에도 눈을 뜨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보다. 살아오면서 역할에 올인했고 눈앞에 닥친 상황을 처리하느라 충분히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웃고 울고 슬퍼하며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아기같이 연약한 본능적인 감정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인 통념에 민감한 생각에 비해 허술하게 감정을 편애한 댓가는 중년이 넘어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신체화 자각증상으로 뭐가 문제인 줄도 모르게 나를 넘어뜨리려 했다. 때론 슬픔, 절망감과 함께 새벽을 뒤척이게 만드는내 마음의 천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좋은 엄마와 아내가 되려면 먼저 네가 좋아야 해. 네 감정을 감추고 억지로 행복할 수는 없어, 진짜 행복하니? 솔직하지 못한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니? 감정을 누르지 마!"
고양이의 유리구슬처럼 맑은 눈동자가 거울이 되어준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함 앞에서 부끄러움은 사라진다. 편견과 잣대가 없는 고양이들의 동그란 눈은 아무런 느낌이 없어 오히려 아량이 느껴진다. 엉뚱하지만 의도가 순수한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거의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는 존재라니 그저 고맙다. 일상에 갇혀 낡은 생각에 잡혀 있던 나에게 재미를툭툭물어다 준다.
어느 날 고양이들이 언제나 "야옹"하고 울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를 기울일수록 감각은 섬세해진다. 울음에도 강약과 깊이가 있다. 때론 짧게, 때론 길게, 급할 때에는 크게 운다. 밖에 나가고 싶을 때와 먹이통이 비었을 때가 다르다. 나와 다른 이들의 감각을 통해 섬세함을 배운다. 표현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결을 성실하게 들여다보며 '덜' 실수하고 싶다. 누군가를 향한 미안함이 파도치며 몰려온다. 초라하거나 민망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람들을' 품어 주고 싶다.
그런데.....
"쨍그렁"
"야, 야, 야! 어딜 올라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감정에도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이 망나니들에게도 훈련이 필요하다. 선물처럼 다가 온 나비와 복남이가 커 갈수록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궁금해진다.
나비와 복남이는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도 있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