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봄을 부른다. 만년설도 봄이 되면 녹아내리며 여름을 준비한다. 꽁꽁 언 어느 인간의 마음이라도 봄이 찾아올 수 있다. 나에게도 또다시 봄이 왔나 보다. 봄이 오니까 향기가 느껴진다. 내 안에서 풍기는 향기에 취하는 나르시시스트라고 해도 괜찮다. 누가 뭐라든 이젠 가수 양희은 씨처럼 "그러라고 그래" 하고 싶다. 물론 추웠던 겨울 때문에 단단해진 덕분이다.
누군가가 호기심을 갓 태어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물이라고 했다. 나에게 갖는 질문, 그 호기심은 나에게 봄을 불러다 주었다. 알고 보니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몰랐던 존재는 바로 나였던지라 나는 나에게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른다. 도대체 나는 나에게 누구였던 것일까?
얼마 전 지인이 나에게 "너는 착하다기보다는 뭘 모르는 것 같다"라고 말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에야 나를 모르는구나 싶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모범생이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열등생이었다. '그저 착하다'라는 말에 망둥이처럼 좋아 뛰면서 그 말을 증명하려고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가당키나 한 사실인가? 뒤늦게 정신없게 튀어나오는 삶의 이슈들에 정신 못 차리면서 진짜 뭘 진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야 말았다.
지독한 속앓이를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갔다. 분노와 슬픔이 습지에서 자라는 이끼처럼 내가 자초한 만큼 자라고 있었다. 나를 내가 배려하지 않은 대가는 나로 끝나지 않았다. 내 큰 아픔은 그것이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처럼 아픈 것, 자라면서 멍들었던 자리에 또 다른 멍이 들었던 것이다. 결핍도 전염이 된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젠 주는 것에 지나치고 받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리라, 삶에 여유를 가져야 했다.
아이 어른이 어른 아이가 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났던 증상은 분리불안 증세로 인한 두려움이었다. 서너 살 때인가 멋도 모르고 외사촌을 따라 강원도 두메산골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얼마나 고집이 센지 '가지 말라'라는 엄마 말에 먹통이었다고 한다. 기차역에 가서야 엄마한테 가겠다고 버둥거렸다지만 소용이 없었나 보다. 몇 달 동안이나 울며 불며 밤마다 엄마를 찾았을 것이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기가 죽어 있다면서 그때 내가 받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한다. 하여간 나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천치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눈치를 많이 보더란다. 전에는 길 갈 때 제일 앞에 나서지 않으면 땅바닥에 앉아 다리를 꼬며 앙탈을 부렸다는데 그 증상도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트리거일 뿐 원래 문제가 많은 집구석이었다. 현실이 슬픈 아빠의 역마살은 엄마를 더욱 불안하게 했고 가엾은 엄마에게는 착하고 쾌활한 치어리더가 필요했다.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기뻤던 나는 역할에 집착을 했다. 문제는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급기야는 자기 비하를 겸손으로 착각할 정도로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아, 아, 가엾게도 그런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든 것은 좋은 시절이 많이 지나간 50대에 들어서였는데 그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때까지 나의 역할이 나인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의구심에 차서 때때로 내 이마에 'Easy going"이라는 주홍 글씨라도 쓰여있는 거야? 왜 다들 나를 무시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열심의 능력이 한계에 찰 때까지 나는 상대방의 더 많은 요구에 맞춰주느라 애썼다. 내 옹달샘의 바닥이 드러나 더 퍼주려고 바가지를 들이댈 때마다 '빡빡'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면 '고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서적인 버닝 상태였다. 야속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 진절머리가 났다. 어른 아이다운 유치함은 칭찬과 격려를 언제나 갈구했다. 언젠가부터 숨을 깊이 들이쉴 때마다 아이가 많이 울고 나서 딸꾹질하는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서러웠던 거다. 그렇게 아팠던 시간만큼치유의 시간도 길었다.
치유란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자신과 친하지 않았다. 나하고 친하지 않고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기는 힘들다. 몸이 따라다닌다고, 생각을 매일 하고 산다고, 진정 자신과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필요에 따라 나를 써먹는 시간 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
처음 상담 심리를 배울 때 교수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How do you feel?" 놀랍게도 내가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신선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았던 것인가? 여럿 속의 나, 집합 속의 나가 아닌 따로 떼어낸 나를 오롯이 만나려니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그때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갈증이 심했던 만큼 몰입했고 그 몰입의 시간이 참된 나를 만나게 했다.
오늘 나는 지인으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고마워, 더 이상 말로는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네. 그냥 너무너무 감사해, 넌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이야"
이젠 좋다는 말이 좋다.나는 따뜻한 말을 나에게도 자주 건넬 것이다. 글로 쓰는 시간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너에게로 이렇게 돌아오기까지 참 힘들었다. 이젠 너에게 내가 있어." 사랑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번 고치면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수없이 경험했던 시행착오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지우고 또 지우면서 새롭게떠오르는 글자에 주목한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이 아마도 에릭슨이 성격발달 이론에서 말한 중년 이후의 생산성일 것이다. 삶이라는 선물을 통해 얻은 경험을 딛고 따뜻한 가슴으로 타인과 살아가려고 글을 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계절로 비유하자면 나는 아주 혹독한 겨울을 거치고 이제 봄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중인 것 같다고... 어쩐지 나는 그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아직 나의 겨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꼭 말해야 할 것도 없지만 마치 누군가가 기다리는 것처럼 써내려 갈 것이다. 글이란 것은 그런 것이니까, 나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니까. 글도 겨울을 닮았다. 결코 쉽지 않지만 결국 나를 알게 해주는 봄을 부를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은 나에게, 혹은 이글에 공감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긍정 확언이다. 날마다 성장하는 어른아이들에게 보내는 격려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