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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Jul 31. 2023

한여름 캠핑

아직은 여름


집집마다 여름꽃들을 가꾼다.

그 여름꽃들이 살랑살랑 고갯짓을 하며 즐거워한다.

나도 그렇게 여름꽃처럼 여름을 사랑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여름이다.

가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벌써 가을인가 싶어 아쉽다.

가을도 좋아하지만 여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린아이 같다.



밴쿠버는 우기가 있어 여름이 특별하다.

어느 계절이든 아름답고 특별하지만 밴쿠버에선 모두가 나처럼 느낄 듯하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지루하게 내리는 비, 잘못하다간 얼굴에도 마음에도 회색 구름이 낀다.


여름을 제일 잘 나는 존재들은 창가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누리는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다.

아침에 문밖을 뛰어나가자마자 기지개를 켠다.

그리곤 하늘을 우러르며 경탄한다.



요즘은 시간 앞에서 감사할 수 있어 좋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추억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시간 앞에서 시간을 바라본다.

아 좋다, 아 감사하다!

이런 감탄의 언어가 나올 때는 길가에 핀 여름꽃을 바라볼 때이다.

특히 흙길을 달릴 때 차창을 가득 채우는 여름 야생화들을 바라볼 때 가슴이 뛴다.

나는 흙냄새 나는 길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이다.



지난여름의 사진첩을 보니 캠핑 가서 흙냄새 맡고 물소리 들으며 경탄했던 시간이 보인다.

그렇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흙길을 달릴 준비는 언제든 되어있다.

밴쿠버란 도시는 흙냄새 맡는 게 쉽지 않다. 정원에 있는 거름흙이 흙의 전부다.

잔디 정원으로 집집마다 흙을 덮어버렸고 차가 다니는 길은 알다시피 아스팔트다.

그럴 때 자갈길,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교외 도로는 향수에 젖게 한다.



어릴 때 기억이 난다. 신작로를 따라 달리던 시내버스, 터덜터덜 걷던 어린 나의 뒷모습,

깡충 뛰어넘던 개울, 뱀 껍질도 말라비틀어져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여름을 꽉 채우고 나야 오렌지빛 감도 열리고 고소한 밤도 따 먹을 수 있었다.

밴쿠버라는 도시를 떠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말, 소, 라마, 양, 염소 등이 보인다.

그때와는 다른 풍경이긴 해도 동물들이 노는 들판은 풍요롭다.

게다가 차 안에서 듣는 오래되고 익숙한 팝송과 가요, 동요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다 보면

마음이 평화롭고 따뜻해진다.

봄처럼 살갑고 여름처럼 뜨거우며 가을처럼 따뜻하고 겨울처럼 싸늘한 표현도 없이

덤덤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 4계절처럼 나이 들고 싶다.



쾌활하고 순진하며 자유로웠던 호기심이 그래도 산과 들로 나가면 내 몸 어디에선가 뛰쳐나온다.

한마디로 착해진다. 예뻐진다. 사랑스러워진다.

그땐 내가 봐도 내가 좋다.

더불어 같이 있는 사람도 멋지다.

그래서 떠나고 싶다.

나도 예뻐지고 당신이 멋져지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여름 사진첩을 펼쳐본다.

생각해 보면 지금도 젊다.

예전에는 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그런 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지금이 그래도 젊고 추억이 가득한 시간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한국에서 여름 이야기를 만날 것이다.

푸른 아버지 품 같은 밴쿠버의 여름 귀퉁이를 돌아

초록 어머니 품 같은 한국의 여름을 만날 것이다.

그때까지는

푸른 밴쿠버의 흙냄새를 찾아 여름 캠핑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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