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식구로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한 지 2년이 되었다. 처음 한인 농장에서 우리 토미와 나비의 어미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배가 만삭인 어미는 얼룩덜룩 흰 털에 검은 점이 있었다. 마침 SPCA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려던 차였는데 코비드 상황 때문에 기관과 연락이 잘되지 않았다.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입양하겠노라 하고 줄곧 기다렸다. 드디어 2년 전 7월, 이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미와 달리 아비를 닮아 검은 털의 새끼 고양이 6마리가 있었다. 내게 다가오는 두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 후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농장에서는 어미가 그 후 새끼들을 한 배 더 낳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아 우유를 먹여 길렀다고 한다. 그때 나온 새끼들 또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에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있었다. 밤에 고양이들이 집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늦게까지 두었다. 나가보니 코요테 3마리가 길 건너에서 우리 집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우리 토미와 나비가 잡혀갈 뻔했다. 냉큼 안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입맛을 다시는 듯했다. 주택가 주변에 토끼가 많은데 토끼를 잡아먹으려 왔을 테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을 만만하게 보고 또 올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워낙 좋아하다 보니 밤에 놀게 할 때가 있다. 다행히도 멀리 가지 않는 우리 집 고양이들이 고맙다. 아마도 수술을 해서 고양이들의 자연 야생성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들의 루틴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가 햇살에 샤워를 한다. 온몸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 하늘을 바라본다. 햇살이 좋으면 눈이 부셔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 그러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 사람 구경을 할 차비를 한다. 사실 사람 구경인지 지나다니는 개 구경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도 안 지나다니면 길 가운데 앉아 세상을 관찰한다. 누군가 오면 그때는 정원의 나무나 꽃 뒤에 숨어서 정찰한다. 자신의 몸을 어떻게 숨겨야 하는지 정말 잘 알기 때문에 지나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는다.
한참 놀다가 집으로 들어온다. 마른 사료와 젖은 깡통에 든 고기 종류를 먹고는 안아 달라고 보챈다. 밥을 해야 하는데 서서 주방에서 일하는 내 발목 밑에서 앉아 올려다본다. 누가 고양이가 야옹 하며 운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듣기로는 "응에 응에" 한다. 하긴 들을 때마다 다르다. 배도 부른데 와서 보채는 것은 안아달라는 이야기다. 안아주면 내 팔뚝에 두 발을 턱 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아주 고마운 눈빛으로. 나는 그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딱 우리 둘이 서로 영혼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말은 못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고 있고 믿고 있다는 그 눈빛. 품에 안겨 창밖을 내다볼 때 고양이의 심장소리가 팔뚝에 전해져 온다. 우리는 함께 있고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
맞은 편 집에도 고양이 두마리가 있다
고양이는 창밖을 하루 종일이라도 바라본다. 때로는 이웃집 고양이들과 눈빛을 교환한다. 이웃집 2층에 한 마리 아래층에 한 마리, 그리고 우리 집 고양이 2마리, 네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웃집 노란 고양이에게 손을 휘저어 본다. 내가 아마도 어떤 동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서로 눈빛이 교환되는 그런 순간.
고양이들은 낮에는 종일 잔다. 자는 모습도 정말 사랑스럽다. 팔다리를 쫙 펴고 잘 때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귀여워 죽을 지경이다. 자다가 예민해서 눈을 뜨기도 하지만 대체로 푹 잘 잔다. 때론 어디에서 자는지 도무지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저녁때가 되면 어슬렁어슬렁 제시간 만난 듯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가길 좋아한다. 저녁 시간에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반려견들을 구경한다. 자기 전까지 밖에 놓아두면 가든에서 풀도 씹어 먹고 꽃 냄새도 맡으며 행복해한다.
고양이들은 자연을 사랑한다. 특히 풀숲에 숨어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풀을 뜯어먹는다. 처음에는 토끼가 뜯은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 고양이들이 정원의 풀들을 뜯어먹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신기했다. 하지만 백합 종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들이 풀을 먹는 이유는 다양하다. 고양이가 잘하는 털 고르기 중 털을 먹기 쉬운데 그 털이 똥으로 배출 되게 하기 위해서 풀을 먹는다고도 한다.
알면 알수록 더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고양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에야 쟤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들이 클 때 그렇게 고양이들과 함께 밖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고양이들에게는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베풀 수 있다.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면서 나는 사랑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라"라는 말에 동의한다. 알지 못하면서 원하지 않은 것을 주던 시간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주었으나 원하지 않아 어디론가 가버린 시간과 노력들. 이젠 뭔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 커버린 아이들.
고양이를 기르면서 남편과 나 사이에 양육에 대한 관점이 틀려서 다소 언쟁이 있기도 하다. 남편은 고양이도 훈련을 시킬 수 있으므로 밤새 리터 박스를 밖에 두기를 원한다.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용변을 보게 한다나. 하지만 나는 고양이가 밤새 노는 야행성으로 참다가 용변을 본다거나 집안에 실수하기를 원하지 않기에 그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안에 리터 박스를 두고 잔다. 그리고 별로 냄새를 맡지를 못한다. 그런데 남편은 그들의 용변 냄새와 날아다니는 털에 예민하기에 늘 그 점에 신경 써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가족 모두 그들로 인해서 받는 기쁨이 훨씬 많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집으로 온 아이들이 "우리 집 고양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고양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고양이들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우리들,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 10배나 더 행복하다고 하니 우리야말로 고양이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한다.
"사랑해". 너희들은 동물의 차원을 지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천사였구나.
햇살, 바람, 풀, 꽃, 그리고 잠, 놀이, 먹거리 등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누릴 줄 아는 너희들 덕에 일상의 풍요가 더욱더 감사하다.
창밖이라는 하나의 풍경 만으로도 하루 종일 감사해하는 너희들의 뒷모습 덕에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아!
참 배운 게 더 있지. 나도 너희들처럼 낮잠을 잘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몰라서 몰랐던 낮잠이었어. 뭔가 그 시간이 아깝고 게으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내게 허락하는 그 잠깐의 시간이 내 몸에 안식을 주더라. 너희가 주는 천진난만한 여유, 알았어, 온몸의 긴장을 풀고 아무런 걱정도 말고 그렇게 너희들을 껴안고 그렇게 잠깐씩 쉴 거야. 쉬는 법을 알려주는 선물 같은 너희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