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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Oct 09. 2024

해바라기와 호박 경연대회

밴쿠버 가을 경치


밴쿠버에 가을이 돌아왔다. 거리의  단풍나무가 끝가지부터 새빨갛게 붉어지려 한다. 하룻밤 지나면 서리가 내릴까 봐 그런지 서두르는 기색이다. 가을은 오랜 연인처럼, 팔짱이라도 낄  폼으로 다가온다.



 와플로 아침을 먹으러 집 근처 Krauser Farm에 갔다가 뜻밖에 보게 된 호박 경연대회, 작은 기중기까지 동원한 모양이다. 그렇게 큰 호박을 본 적이 없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1등을 뽑는 기준이 뭘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무게가 기준이었다. 올해는 1.2톤에 해당하는 미국 호박이 세계에서 가장 큰 호박으로 뽑혔다고 한다.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어 그런지 농장 지역을 돌아다니는 게 소일거리가 되었다. 밴쿠버에서는 봄부터 겨울까지 일상을 보낼 페스티벌이 각 지역마다 연달아 이어진다. 오늘은 해바라기, 호박밭을 소개하고 싶다.



밴쿠버는 자연적 메리트가 많은 지역이라 바다, 산, 강, 벚꽃, 블루 베리, 크렌베리, 단풍, 연어회귀, 호박, 크리스마스 전등 행사 등 계절에 따라 눈요기를 할 수 있는 무료 행사가 이어진다. 어릴 때부터 이런 행사에 익숙한 때문이지 어른들도 사뭇 즐기는 모습이다. 이런 행사는 대부분 전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크랜베리 밭


내가 가장 황홀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크랜베리를 수확하는 밭이다. 물을 잔뜩 댄 후 크랜베리가 떠오르면 걷어내는데 그 장면을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그야말로 복권 당첨이다.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할 수 있는 밀밭, 옥수수밭도 꾸며 놓은 이 농장은 와인바와 식당, 관광용품 상점도 있는 시골 농업 관광 명소다. AI 시대니 뭐니 해도 이런 농장만큼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 않을까? 로봇에게 절대 양보하면 안 돼! 내 마음의 양식장이니까!



밴쿠버는 가족을 위한 가족에 의한 가족의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거리나 어둑해지면 인적이 드물어진다. 젊은이들 포함 장년층이 밤늦게 돌아다닌다면 분명 다운타운이거나 Pup과 같은 파티가 벌어지는 곳이다. 그 외에는 달빛만이 저녁 가로등과 슬쩍 친구가 될 뿐이다.



호박 밭에 도착하면 땅바닥에 나 뒹굴고 있는 오렌지 색풍덩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푸른 하늘과 오렌시 색의 호박은 극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이 두 극단적인 색깔 아래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자연스레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뜬다. 그러다가 호박하나 주워 들고 나오면 손은 무겁지만 가슴이 호박죽 하나 끓여 먹은 것처럼 부르다.



내가 찾아간 곳은 호박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원 구경과 함께 해바라기 유픽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인원이 모이면 출발하는 포클레인이 끄는 마차의 짚단을 깔고 앉아 호박과 해바라기가 넘실거리는 넓은 농장을 한바뀌 돌아볼 수 있다.



지난해처럼 해바라기를 싹둑 가위로 잘라 집으로 왔다. 꽃 한 송이에 1달러였다. 9송이를 들었는데 품에 가득이었다. 놓칠세라 손아귀로 꼭 잡았다.  한 송이는 씨앗이 촘촘하게 영근 것이라 까먹어 볼 생각이었다. 하루쯤 지나고 보니 아기 해바라기는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듯 머리를 반짝 들고 있는데 머리가 큰 해바라기는 그새 기세가 꺾였다.

 해바라기가  디너 테이블이 햇살이 내려앉은 태양의 놀이터처럼 보였다.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는 용케도 꽃병을 쓰러트린 적 없이 꽃냄새를 맞는 재주가 있다. 이번에도 킁킁 거리며 해바라기 냄새를 맡는데 어김없이 우아하고 폼이 난다. '고양이가 원래 이런가?' 고양이는 주인을 닮는다던데. 경험적 기준이 없어 여전히 내 맘대로 해석한다.




호박밭에 다녀오며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딸기도 땄다. 5월부터 따는 딸기를 10월에도 따다니 Krauser Farm 농장 주인이 대단해 보였다.  딸기가 항산화 작용에 최고 음식이라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씻지도 않은 딸기에 손이 자꾸 갔다. 요즘 건강에만 꽂혀버린 탓일까? 그래도 궁상은 떨지 말아야 할 텐데.




 호박, 딸기, 해바라기, 그리고 작은 동물들의 조합은 가을이 풍성함을 화려하게 증명했다. 자연처럼 변함없는 존재가 또 있을까?

밴쿠버의 자연은 오색 찬란한 화려함과 동시에 온기 있는 소박함도 품어 있어 마술적이다.

 만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면 밴쿠버를 선망해야 한다. 여유와 자비로움자연 도시, 밴쿠버, 오늘은 본의 아니게 밴쿠버의 1일 관광 리포터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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