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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Sep 18. 2024

혼자서, 모두와

강뻘 걷기


조용히, 은밀하게, 혼자서 어디론가 떠난 내가 되었다. 어제.

밴쿠버의 Fraser River, 록키에서 내려오는 빙하 녹은 물이 수백 킬로를 달려 내가 사는 마을 곁을 지난다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이곳에 산 게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강에도 해변처럼 모래사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후가 되면 Fraser River는 아침과 달리 물이 빠져 바짝 마른 사람의 갈비뼈처럼 앙상하게 제 몸속을 보여준다. 강에서 카누를 타는 노인들은 물이 빠지기 전 후다닥 강에서 빠져나왔다.


기억이 되살아났다.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가 만나는 곳,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 내 학교가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냇물에 달랑 걸쳐져 있던 외나무다리가 장마 때 떠내려가면 우리는 가끔은 학교를 못 갔다. 하지만 '전투'라는 전쟁 드라마에 나오던 용사들처럼 책가방을 총 삼아 머리 위로 올리고 기어이 냇물을 건너 학교에 가곤 했다. 교복은 집에 돌아갈 때쯤 되면 말랐다. 내 체온이 젖은 옷을 온전히 말려주었다. 물론 신발은 예외였다. 꿀꺽꿀꺽 물이 차오른 운동화는 끝까지 질척거렸다.



밴쿠버의 Fraser River 가 강원도의 부론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는 뒤통수를 잡아끌며 내 눈 안으로 부서져 들어오는 강의 풍경에 빠져 들어 자주 이곳 강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차 안에 앉아 내가 최근에 알게 된 CBS Rainbow의 앱을 틀어놓고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 전투하면서. 



급기야 어제는 슬리퍼를 준비하고 강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신발을 벗고 걷기로 했다.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감각은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발바닥이 미끄러지며 두더지처럼 진흙사이를 파고들었다. 미끌미끌, 살짝 초록빛으로 물든 진흙밭을 지나면 보슬 뽀슬한 모래가 기다렸다. 강바닥이 진흙과 모래를 모두 품고 있는 줄을 몰랐다.



비틀거리며 진흙밭을 걷다가 모래를 만나면 보송보송해 만만하게 보고 달리기도 하다가  이럭저럭 저 끝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은 걸렸다. 군데군데 자빠져 있는 나무에 올라타 흔들흔들, 춤추는 마음을 애써 감췄다. 아무도 없지는 않았다. 나뭇잎이 보초 서듯 뻘을 지켜보는 것을 보고 같은 키높이로 납작 엎드려 셀카를 찍었다. 나도 함께야. 너랑.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사람의 발자국이었다. 나처럼 맨발로 걸은 아이와 엄마의 발자국. 아니면 아빠였거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으로 던지는 빨간 공을 따라 강물로 뛰어드는 검은 개는 어디선가로부터 나타나 열 번은 뛰어다니며 숲과 강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행복할까? 나처럼.



나는 그 순간, 언제나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마음도 몸도 아픈. 맨발 벗고 걷기가 병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역시 아프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 미리 걷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에 뭉클했던 맨발 걷기의 시간을 끝냈는데 문제는 발을 어떻게 씻느냐였다. 강물에 씻고 나서 신발을 신었지만 신발 역시 뻘에 빠져 들었다. 결국 라군처럼 물을 담고 있는 곳이 있었다. 나무가 있어 나무를 타고 건너 모래 위로 뛰어내렸다. 차 안에 있던 물로 한번 더 발을 씻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차 안에서 책을 읽었다. 이젠 혼자가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내가 아닐까?



오후 5시쯤 되니 내가 비틀거리며 걸었던 강뻘에 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발자국은 금세 지워지고 없을 것이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는 것처럼. 미련을 버리고 내일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학교가 끝났는지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청년은 낚시를 하고 픈지 강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만 가끔 보일뿐, 이 아름다운 곳을 두고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나도 한가했던 시간이 많았지만 혼자 이렇게 다니기 전까지는 몰랐던 곳이 아니던가?



나는 운명처럼 만나는 이런 시간에 빠져들 때,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고백이 드러난다. 충분히 사랑하고 살아야겠다는, 사랑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나를 향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뜨거운 고백.


리스트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고 했다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쓸 수 없을 만큼 써라.' 나에게는 쓰는 것이 사랑의 고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매일 글을 쓴다. 몰스킨 노트에도, 컴퓨터에도. 불가능을 꿈꾸고 있다. 하긴 불가능이라 생각해서 더 간절히 더 꿈꿀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나, 딸이 주인공인 소설, 두 번째 챕터부터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첫 삽을 어떻게 떠야 할지. 



혼자 실컷 놀다 보면 기대가 된다. 혹시 어느 날 갑자기 글이 내게 선물처럼 다가오지는 않을까? 이렇게 진흙탕과 모래뻘에서 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연처럼 '사랑'이 찾아올지도. 그 우연을 찾아 이곳을 뻔질나게 드나들 수밖에 없다. 혼자서 모두와.



삶에는 의외성이 있다. 내가 모르는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혼자서 떠나야만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내 안에서 나를 찾을 수 없을 때 나보다 나를 더 잘고 있는 곳을 향해 떠나면 어떨까?  





아래 사진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부론강의 사진이다. 지난여름 방문 했을 때 찍은 사진인데 밴쿠버의 Fraser River와 닮았다. 그때는 여름, 지금은 가을, 계절이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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