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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Aug 28. 2021

딸의 노트북

  2학기가 시작됐다. 코로나는 여전히 수도권에서 4단계로 확진자 수가 줄지 않는다. 1학년인 둘째는 매일 등원이 결정되었고, 3학년인 첫째는 당분간 전면 온라인 수업이다. 개학을 이틀 앞두고 줌 수업 때 사용하던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수리를 맡길까 고민을 하다가 수리를 맡기더라도 딸의 컴퓨터가 하나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매일 온라인 수업으로 컴퓨터가 필요하고, 영어 영상을 찾아보거나,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취미가 붙기 시작해서 큰 맘먹고 큰 선물을 하기로 했다. 저렴하지만 딸아이가 쓰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노트북 하나를 주문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비싸고 좋은 것보다 편히 써도 내 마음이 편하고, 저렴하지만 a/s가 편한 국산을 택했다. 배송은 하루 만에 이루어졌다. 바로 다음날 노트북을 주문받고 딸아이에게 선물해 주었다. 딸은 뛸뜻이 기뻐했다. 하루 만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모른다. 딸아이는 노트북이라는 고가의 선물을 받은 사실과 온전히 자기 것이 생겼다는 기쁨에 행복해 보였다. 

  노트북을 선물해주고 이틀이 지났다. 첫날은 배경화면과 잠금화면에 자기와 동생 사진으로 노트북을 꾸몄다. 그리고 아직 써보지 않았던 한글에 글을 쓰고 저장하는 법, 포토샵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딸은 그 컴퓨터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제는 다이어리 폴더를 만들더니 거기에 일기를 썼다. 물론 엄마가 절대 열어보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글들이라는 폴더를 만들더니 얼마 전에 읽은 안네의 일기에 대한 간단한 독후감(?)을 썼다. 나는 사실 놀랐다. 컴퓨터를 사주면서 그것으로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지 않을까, 네이버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딸은 노트북을 자신의 작업대로 사용했다. 물론 아직 어리고, 사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사줬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내가 글을 쓰는 걸 봐서 그런지 자신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거다. 

  딸이 초등학교에 가면서 주변에 많은 부모들이 핸드폰을 사주고 컴퓨터를 사주는 걸 봤다. 우리 딸은 핸드폰은커녕 집에 TV도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학교 수업조차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고 이제는 전자기기를  뗄 수 없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디지털 세대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가 디지털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 이제는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듯하다. 나도 딸아이에게 바탕화면에 포토샵이나 도움이 되는 홈페이지를 몇 개 깔아줬을 뿐인데 알아서 활용한다. 확실히 요즘애들을 디지털 능력이 탑재되어 있는 듯하다. 어른인 나도 내 노트북이 생긴다면 행복할 텐데 딸아이는 오줄 할까. 부디 그 노트북으로 글 많이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딸아이 안에 세계가 확장되기를 바란다. 

  지금 서로 컴퓨터를 켜고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있고, 딸은 미국 드로잉 수업을 듣고 있다. 딸아이가 컸을 때, 엄마가 어릴 적 사줬던 노트북이 나의 세계를 넓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건 60만원짜리 노트북을 사주고 하는 너무 큰 욕심인가. 


딸아, 창작할 때 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빛나는 너의 눈 안에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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