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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May 04. 2022

말이 칼이 되지 않기를

육아 속에서 나를 본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육아를 하면서 나의 밑바닥을 처절히 마주하게 된다고.

나 역시 그렇다. 엄마가 되면 한없는 사랑과 인내로 자녀를 위해 희생할 것 같지만

나의 밑바닥을 보는 순간, 나에게 실망하기 일수다.

마음과 다른 말이 나오고, 뒤돌아서면 후회할 일들이 반복된다.

특히 첫째 아이에게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똘똘하고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고 걱정시키지 않는 딸이다.

그런 딸을 더 칭찬하고 격려하기는커녕 날 선 말투로 경계의 선을 걷는 날들이 많다.

나는 딸을 사랑한다. 그런데 어떨 때 보면 나보다 딸이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엄마 앞에서는 아직도 아이고 내 작은 칭찬에도 행복해하는 너무 예쁜 아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상처를 투영하는 나를 본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항상 바쁘셨다.

시골에 살았던 우리 집은 동네 중심이었던 가게를 했다.

그 당시 우리 가게에는 아이들 과자부터 쌀, 식재료 등 없는 게 없었고 엄마는 항상 바쁘셨다.

가게만 운영하신 게 아니라 농사도 지으셨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주중부터 주말까지 쉬는 날이 없었다.

경제관념이 없었던 아빠의 몫까지 온전히 엄마가 감당해 내셨어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그 뒷모습이 바빴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셨다.

바쁜 시간을 쪼개 내게 책을 읽어주셨고, 바쁜 중에도 나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셨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이 있다.

바쁘고 고되셨을 그 삶 속에서 가끔 엄마에게 나오는 말들이 나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됐다.

내가 잘못해서, 혹은 내가 실망시켜드려서, 혹은 엄마가 피곤해서, 혹은 아빠 때문에......

엄마의 말끝은 날카로웠고  어린아이는 아무 방패 없이 그 칼을 받아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어린아이에게는 감당이 되지 않는 순간이 많았고, 나때문이라는 죄책감도 있었다.


지금 어른이 된 딸은 그때의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지만 상처의 기억들은 아직도 나를 찌른다. 그리고 그 상처가 미쳐 다 아물지 않았다.

이해하는 것과 그것에서 자유하다는 말은 다른 의미니까.


나는 엄마의 날카로운 말의 칼이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 아이를 혼내는 내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내 엄마의 모습이었고,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이 어느새 나에게도 물들어져 있었다.


첫째 아이를 혼내고 나서 혼자 얼마나 울었을까.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입술에 어린 시절 내가 있었다.


미안하다 딸아,

엄마의 상처를 더 이상 대물려주지 않을게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내가 이제 끊어낼게.

혹 이미 많은 상처가 쌓여있었다면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상처는 엄마가 처리할게.

너의 모습이 걱정되고 염려된다는 핑계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말의 칼로 아프게하지 않을께.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도 부족한 우리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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