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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사이다 Jun 10. 2022

난독증 동생을 둔 첫째 이야기

둘째가 난독이라 아무래도 엄마 손이 많이 간다.

자기 전에 항상 붙들고 책 읽어주고,

혼자 글을 읽고 과업을 시행하는 것이 어려워 학교 숙제도 대부분 엄마가 도와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우리 집 첫째는 똑순이다.

알아서 공부도 숙제도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잘한다.

열심도 있고, 잘하고 싶은 욕구도 강한 아이라 뭐든 시작하면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는 아이다.

대적으로 느린 동생을 보다가 첫째를 보면 나름의 위안을 얻는다.

둘째가 난독이라고 하면 아직도 부모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시선이 가끔 너무 아픈데, 잘 커주는 첫째가 있어서 위로가 된다.


그런데 뭐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육아에서는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이 보통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요즘 들어 첫째와의 관계가 자꾸 비틀어진다.

내가 한마디 하면 두 마디로 대답하고, 오고 가는 말이 날카롭다.

이제 4학년이니 사춘기가 오는 건가 싶기도 한데, 이러다 엄마와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난다.

둘째를 케어하면서 오는 나의 스트레스가 첫째 아이에게 가는 것이 아닌지,

둘째는 자꾸 안쓰러워 하나라도 더 챙기고 격려하게 되는데 그걸 보는 첫째 아이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사실 나도 첫째로 태어나 첫째의 마음을 잘 안다.

부모님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시지만 어린 내 마음에 나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 같은 부모님의 눈빛,

그 대신 나에게는 말로 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기대들이 등에 지워졌다.

그야말로 K-장녀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나의 상처를 첫째 딸에게 그대로 대물림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첫째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사랑의 대화를 나눈 적이 언제였는지,

나도 몰랐는데 어느새 그 아이의 눈이 슬퍼 보인다.

 상처를 첫째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내 모습이 싫다.

내가 싫어했던 내 엄마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부족해서 미안해.

이제 엄마의 말이 칼이 아니라 너를 살리는 햇살이 될게.

너에게 온전히 충만한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될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는 상처들을 여기서 멈추고, 사랑은 그저 아름다운 사랑으로 너에게 전해줄게.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가 없었다면 엄마는 너무 힘들었을 거야.

부족한 엄마에게 더 큰 사랑으로 채워줘서 고마워.

그리고 더 늦지 않게 우리 사이의 틈을 발견할 수 있어 엄마는 감사해.


어제저녁 내 마음이 달라지고 너에게 말하는 언어가 달리지니

너는 한순간에 달라지더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더구나.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만 변하면 되는 건데.

미안해, 겨우 돌아 여기까지 왔다.

너에게 더욱 충만하게 내 사랑을 표현할게.

너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 너는 그 자체가 내 삶의 선물이었어.

사랑해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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