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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 Mar 25. 2024

의미 있는 일 vs 돈 버는 일

둘 중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작년 이맘때쯤 나는 기존에 해왔던 업무와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들을 사장님께 털어놓았고,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내가 다른 길을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며, 다만 그 생각의 과정을 오픈해서 이야기했으면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부터 회사 내에서 새로운 유형의 거래처들을 개발하고, 새로운 타입의 딜들을 시도했다. 내가 하고픈 일과 내가 해왔던 일 사이의 간극을 줄여보고 싶었다.



그렇게 1년, 결국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새로운 일터를 경험하는 것이구나 - 를 깨닫고, 이직에 앞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는 이직이 흔하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회사에서 머물면 연봉 인상률이 그렇게 높지 않아, 대부분 이직 시 연봉 협상을 통해 급여 수준을 올려나간다. 그래서 헤드헌터들도 많고, 직장인들의 소셜네트워크인 링크드인을 잘 관리하고 있으면, 심심찮게 이직 생각 없냐는 헤드헌터들의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나는 이직이 처음이다. 게다가 일이 내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왔던지라,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내 하루의 상당 부분을 일하는데 쓰고 있으니,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내 하루의 질을 결정할 테고, 그러면 내 직업 선택은 어떤 연인을 만나는지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는 중요한 선택이 아닌가.



처음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민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내 생각의 과정이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여기 적어본다.



내가 왜 커리어를 필요로 하는지 (직업 만족도와 관련 있음 - Why OOO라는 질문은 언제든 본질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에게 이상적인 일터는? (어떤 것은 참을 수 없는지를 나열해 보면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



책 효율적인 이타주의 (Effective Altruism)로 유명한 철학자 윌리엄 맥카스킬는 직업 만족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직업 만족의 가장 큰 조건은 '정신이 참여할 수 있느냐'가 결정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1.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2. 좋은 피드백을 주고
3. 자립심을 발휘하게 하며
4. 더 큰 세상에 자신이 기여하게 만드는지

와 같은 이성적인 측정 기준이 중요하다. 당신의 직업이 지금, 당장, 실제로 의미가 있는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가? 내가 개발해 온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가?
 
By 윌리엄 맥카스킬



William MacAskill의 질문들은 직업으로 의미를 찾는 것을 전제로 한 질문들이다. 당연히 직업으로 돈을 벌고 의미는 딴 데 가서 찾을 수도 있다.




커리어와 관련된 생각을 해나가면서,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해 본 질문들은 아래와 같다.


이미 쌓아온 경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것.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큰 조직에서 일하는 것과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의 가치는 무엇일까?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것의 가치는?

내가 이걸 정말로 원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아닐까?


A냐, B 이냐,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을 넘어서, 내가 왜 A를 원하게 됐지? 내가 왜 B를 원하게 됐지? 하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까지 깊게 생각해 보면 나라는 사람은 어디서 동기 부여를 받는지,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처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내 고민을 공유하는 편이다. 내 관점을 이야기하면서 생각이 정리되거나, 무의식적으로 내가 어떤 것을 더 긍정적인 어투로 설명하고 있는 걸 상대방이 간파해서 - 이미 그쪽으로 마음이 기운 거 아니야? - 하고 짚어주기도 한다. 또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의 대화가 의외로 큰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이번에도 주변분들, 그리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아빠는 “아빠라면 A라는 선택을 했겠다만, 그게 좀 더 쉽고 익숙한 길인 것 같아서 그 선택을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건 아빠라서 그런 거고, 너라면 다를 수도 있지. 아빠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참조만 해~”라고 이야기해 줬다.


엄마는 처음엔 내가 너무 이상적인 꿈만 좇는 것 같다, 노파심에 나를 혼냈지만 (?) 긴 대화를 거쳐 내 고민들을 이해하게 됐고, 나중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상황에 있는 게 내 노력의 결과이니 대견하다고 했다.


물어볼까 말까 고민했던 동산씨(가명) 에게 이런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가, 동산씨가 해준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동산씨는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든 하나의 선택으로 결정된다기보다, 내가 이런 고민들을 계속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에서 오는 것 같다며, 하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영원히 이어지진 않고, 끊임없이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에서 가치가 나온다 - 고 이야기해 줬다.


학교 선배님인 베니씨(가명)는 회사를 선택할 때 People Factory, 즉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좋은 사람들을 배출하는 곳인지를 보는 것이 좋은 기준이라고 했다. 내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내 가치관과 잘 맞는 기준인 것 같다


이외에도 많은 영감이 되는 조언들을 준 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이직과 연애는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운이 상당 부분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파트너 및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좋은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괜찮은 사람인 데다 뛰어난 역량을 가졌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좋은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직과 연애 모두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음을 인정하고, 내가 세운 원칙, 기준들을 고수하면서 참을성 있게 좋은 기회와 만남을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헤드헌터나 데이팅앱, 결혼 정보 회사 같은 외부의 전문적인 도움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애에 있어선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성격의 사람과 맞는지를 아는 것이다. 직업에 견주어보면, 어떤 종류의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왜 좋아하는지, 어떻게 동기 부여를 받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야 정말 좋은 사람, 좋은 직장이 나타났을 때, 나와 맞는 기회이구나 포착하고 잡을 수 있으니까.



수많은 고민과 주변 분들과의 대화를 거쳐서 위의 질문들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의미 있는 일과 돈 버는 일 두 가지를 다 하고 싶다. 난 이 둘이 상호배타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보며, 두 가지 다 잡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 것이다.


삶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는 능력 있고 똑똑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



이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내 역량을 계속 발전시켜 나아가면, 운이 좋으면 이 원칙에 해당하는 직장을 발견해 기회를 포착하거나, 아니면 내 원칙들을 충족시키는 길을 나 스스로 만들어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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