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을 길러나가는 중
직장 생활을 한지 횟수로 벌써 10년 차. 오늘 내 스스로가 기특한 일이 있었다.
예전 직장에서 업무로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대화를 걸었을 때, 어둡고 시무룩한 반응이 돌아온 적이 있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길래 다가갔던 건데, 쌀쌀맞은 반응에 '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나?' 생각하고 거리를 뒀었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의 당시 상황이 힘들었을 뿐, 나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 내가 왜 그런 피해의식을 가졌는지, 자기중심적인 내 생각과 예민한 대응이 아쉽다.
결국 그 분과는 자연스럽게 관계가 멀어졌다. 서먹해진 관계가 아쉽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는 '회사에선 일만 잘 하면 되지. 나는 내 일만 잘 챙기고, 친밀한 관계는 친구들에게서 찾으면 돼.'라며, 멋진 커리어 우먼이라도 된 것처럼 일과 친목을 분리하면 된다고 쿨한 척을 했던 것 같다. (이불킥)
지금 직장은 동료들의 평균 연령이 어리고 빠르게 커가는 젊은 조직이다. 평균적인 업무 로드도 높은 편인데다가 사명감을 가지고 탁월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돋보여 거기서 오는 은근한 peer pressure도 있다.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동료들을 보면 얼굴에 빨간불이 켜진 것 같은 이들이 보일 때가 있다. 무슨 일 있나? 싶다가 몇 달 후면 퇴사 메일이 날아온다. 아, 그 신호였구나.
오늘 한 동료와 업무로 대화를 하다가, '일 말고, 다른 것들은 요즘 어때? 지난번에 좀 힘들어 보이던데, 요샌 괜찮아?'라고 말을 건넸다. 동료는 나아진 게 없고,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힘듦을 토로했다. 통찰력이 좋고 높은 책임감에 배려심도 깊은 좋은 동료다. 똑똑이처럼 느껴져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혼자 많이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문제들은 혼자 고민할 게 아니라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했으나, 동료는 '이미 몇 번 이야기했지만 변화의 조짐이 없어 보인다.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다'라고 우울한 투로 답했다.
과거의 나라면 '그래.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알려줘' 하고 대화를 끝냈을 텐데, 동료가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좀 더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너의 견해는 통찰력 있고 정말 귀중한 피드백이야. 너의 고민들을 상사에게 이야기하면 오히려 고마워할 거야. 관리자는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게끔 운영할 책임이 있는데, 우리가 피드백을 줘야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알 수 있으니까, 피드백을 주는 건 오히려 그들의 일을 더 쉽게 해주는 거지. 너의 견해를 귀담아듣지 않으면 오히려 그들의 손해일 거야.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더 이야기해 봐. 오히려 그들도 고마워할걸?
이런 내용의 몇 번의 긴 장문의 메시지를 나눈 끝에 동료는 개선점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게 아주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 필요성에 공감하니 이야기를 꺼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의 견해와 피드백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MBTI 성격 테스트를 하면 T와 F가 반반씩 나오는 나는 대화의 목적, 특히 회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대화는 문제 해결이 주된 목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오늘의 경험은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보다, (똑똑이들은 문제 해결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인정, 상대방의 잘 하는 부분에 대한 칭찬이 문제 해결을 도운 경험이었다.
대화는 문제 해결뿐만이 아니라, 연결, 자기 확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구나. 그러고보면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을때 이미 알던 내용도 더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남의 일은 똑부러지게 잘 하지만, 막상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은 더 조심스러워지거나, 객관성을 잃곤 하니까.
내 주변에는 유독 본인의 의견이 얼마나 귀중한지 잘 모르는 똑똑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스스로도 가끔 그렇고. 앞으로 많이 리마인드 해줘야지. 자기애 자기 확신을 가지자 이 세상의 똑똑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