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취준생분들 화이팅
싱가포르에도 설날이 찾아왔다. 화교들의 나라이니 연휴가 길 것 같지만 아니다. 설날 당일과 다음날만 공휴일이다.
해외에 나온 뒤에 명절을 한국에서 보낸 적이 거의 없어, 한국에서 명절 바이브가 어땠는지 그 느낌이 가물가물하다. 설날에 맞춰 한국에 들어간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들 한다. 다음 명절엔 한번 휴가를 내서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 시내 중심가에 살다가 외곽으로 나오면서 집 렌트비가 많이 낮아졌다. 그래서 시내에 나갈 땐 죄책감 없이 택시를 타왔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하루에 유산소 운동(Zone 2)을 하려고 40분씩 로잉머신을 타는데, 지하철역까지 왔다 갔다 걸으면 거의 30분이니까, 지하철을 타면 로잉 머신을 안타도 되잖아? 그 이후로 대중교통을 더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냥 좀 더 많이 움직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는데, 집에 있으니 활동량이 떨어진다고 로잉머신을 사고.. 물론 구입을 후회하진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 삶을 참 복잡하게 만든다.
설날 당일 나온 시내. Raffles Place (래플스 플레이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약속 장소인 보트키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요즘 싱가폴 날씨는 축복받은 것처럼 선선한 데다 덥지도 않고, 해도 뜨겁지 않다. 연휴라 그런지 차 없는 도심에, 한걸음 걸음마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관광객들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예쁜 강변의 풍경. 기분이 너무 좋아져 엄마 아빠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광경을 보여줬고, 나를 보고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졸업한 대학원 재학생분들과 최근에 졸업한 분들을 만났다. 친하게 지내는 대학원 한국인 동기가 최근에 졸업한 한국 사람들이 싱가폴에 아주 많다고, 한번 모임을 주선해 보면 좋겠다고 이야기만 해오다 Whatsapp 그룹을 만들어 모임을 추진하게 됐다.
취업 시장 상황이 안 좋아 많이들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외부 상황이 어떻든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해요." 말은 쉽지, 실제로 직접 본인이 전쟁통 같은 취업 경쟁 속에 있으면 외부 상황을 무시하고 내가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내가 뭘 할 때 기쁘고, 어떤 일이 보람 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수능을 봤고, 취업률을 보고 대학교를 선택했다. 대학원은 글로벌 MBA 랭킹, 대학원에서 추구하는 가치, 캠퍼스 위치를 보고 선택했다.
이 두 선택이 나에게 맞는 좋은 선택이었던 이유는, 두 학교다 관계 지향적인 문화였다는 것. 대학교/대학원 모두 선후배 사이가 끈끈하고, 활약하는 선배들이 내가 원하는 직업군에 많은 곳이었다.
다들 똑똑하고 능력이 출중한 개인들이지만, 그런 훌륭한 인재들이 몇 개 되지 않는 자리를 위해 피 터지게 경쟁하고 있기에 더 힘들다. 링크드인에 취업 공고가 나온 곳에 지원하면 어떨 땐 1,000 대 1의 경쟁률, 혹은 더 높기도 하며, 심지어 이미 그 자리를 채우기로 점쳐진 사람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한계효용의 법칙처럼, 어느 정도 개인의 역량/스펙을 키운 뒤에는 자소서 한 줄 더, 인턴쉽 경험/자격증 하나 더 넣는 것의 효용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연결되는 게 더 중요하다. 혹은 나를 그런 사람들과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 connector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타이밍이다. Be in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연결'을 공고히 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욕망/결핍이 있으며, 어떻게 당신 회사 혹은 이런 분야에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진솔하게 어필해야 한다.
내가 다시 대학원 때로 돌아가서 취업 준비를 한다면, 취업을 원하는 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coffee chat을 신청해서 만나고, 그 업계 이벤트(싱가폴에는 세미나/컨퍼런스 들이 상당히 많이 열린다)를 찾아가 네트워킹을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같은 대학원 출신인 선배님이 한국에 '커피챗'이라는 커리어 조언을 구하는 플랫폼을 런칭하기도 했다).
여기서 효과를 늘이려면, 취업을 희망하는 분야/직군을 위해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Linkedin을 통해 잘 홍보하는 것이다. (뉴스레터, 포스팅 등) 그리고 이런 노력은 MBA 학위가 없어도 지금 당장 누구나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도 2년 전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궁금했던 업계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만나보고, 업계의 실상을 알게 되어 이직 희망을 접은 적도 있으며, 기대 없이 편하게 만났던 인연들이 job offer로 이어진 적도 있다. 나에게 80% 결과를 준 20% 노력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나의 소중한 동네 친구들 트위티와 모아나와 만나 인도 케랄라 지역의 음식을 파는 식당 - My Kitchen - Kerala Restaurant 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도 케랄라 지역은 다양한 향신료, 다양한 쌀을 써서 만드는 채식 위주의 음식들이 유명한 지역으로, 이 식당은 케랄라 지역의 Authentic한 음식들을 파는 곳으로 인도분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인 듯했다.
바나나 잎에 싸여진 밥은 보리밥과 같은 동글동글한 식감에 아주 내 스타일이었다! 새로운 음식과 문화를 알게 되는 것이 참 즐겁다.
저녁을 다 먹고 친구들과 동네 두 바퀴를 걸었다. '야 이렇게 동네에서 만나서 걸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라는 친구 말에, 새삼스레 한국을 떠나 이국에서 이런 환경을 가진 게 얼마나 큰 행복이며, 행운인지가 갑자기 온몸으로 느껴졌다.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음 맞는 따뜻하고 선한 친구들과 동네를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