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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보낸 11월 한 달 돌아보기

벌써 2025년의 끝이 다가오다니

by 파일럿


정말 밀도 있게 보낸 한 달이다. 11월부터 업무의 성격이 조금 바뀌고, 분량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나에게 주어진 Task/마일스톤을 달성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채용과 전략, 팀 구조 개편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면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좋은 지원자가 들어오면 그 지원자를 우리 팀으로 끌어오기 위해, 왜 우리 팀에 이 사람이 필요한지를 어필해야 한다. 이 전쟁에 이겨 우리 팀으로 모셔오니, 합격한 다른 회사에 간 경우도 있었다. 만날 인연이 아니었던가요...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라 여러모로 도파민 터지는 일들이 많다. 어떨 땐 일 생각에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저녁에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잠도 잘 자고, 다음날 회복/수면 점수도 높았다. 신기한 명상의 세계.




다사다난한 한 달이었지만, 돌아보니 뿌듯하다. 무게중심을 잘 잡으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재택근무를 할 땐 내 일과 컨트롤이 쉬워서 괜찮은데 출장 중에 과로하지 않을까 염려되긴 한다. 다음 주에 일본 출장이 있다. 이번 출장에서 한번 테스트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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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같은 친구들이 있다. 한 친구는 약속시간에 매일 늦는다. 그래서 늘, '이 친구한테는 다른 친구들이 오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더 일찍 약속시간을 알려줘야지'라고 다짐하면서 늘 또 까먹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30분 늦게 도착한 친구. 신기하게 정확히 30분이다!ㅋㅋ 하지만 사랑스러운 면이 있어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친구다. ADHD 기질이 있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늘 All over the place, 정신이 없지만 아름다운 감정선을 가졌다. 이 친구와 비슷한 느낌의 지켜주고픈 다람쥐 같은 친구까지 불러 함께한 브런치.



야채와 소고기를 때려 넣은 마녀스프와 사워도우, 아보카도 스프레드, 흑미밥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디핑소스들 - 갈릭콩피, 올리브 타파나드, 후무스, 리코타치즈, 카야잼을 꺼내 밥과 빵 모두 먹을 수 있는 브런치 한 상을 차렸다. 맛있게 먹고, 수다도 한참 떠들고, 내가 좋아하는 "Table talks" 카드로 깊은 이야기도 나누며 주말 오후를 나른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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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도우에 꽂힌 요 며칠. 아보카도 스프레드, 계란, 리코타치즈와 석류는 궁합이 좋다. 여기에 발사믹 글레이즈를 뿌리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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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사 온 체리, 블루베리, 복숭아. 집에서는 보통 냉동 블루베리를 먹어 오랜만에 생과일로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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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인 모아나언니 집에 초대받아 트위티와 함께 맛있게 한식 한상을 먹은 날. 들깨 미역국, 잡채, 쭈꾸미 볶음, 그리고 한국 나물들. 전날 몸살 기운이 있었던 사람이, 아침에 운동까지 다녀와서 이렇게 밥을 뚝딱해서 대접해 줬다. 감동.



우리 셋 모두 해외 출장이나 여행이 많아서 셋 다 싱가포르에 있는 날을 맞추기가 쉽진 않다. 트위티의 12월 생일 축하 모임을 미리 하려고 만난 자리였는데, 알고 보니 트위티 생일 주간에 모두 싱가포르에 있었던 것..? ㅋㅋ 덕분에 생일 파티를 미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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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전날에 운동하다 허리를 삐끗했다. 내가 케익 담당인데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싶어, 온라인으로 바로 다음날 배달이 가능한 맛있는 케이크집을 찾다가 발견한 Queic by Olivia - 미슐랭 가이드에 올라온 곳에서 만드는 치즈케이크라길래 궁금해서 시켜봤다. 다행히 다음날 움직일 수 있어서, 모아나 언니 집에서 다 같이 케익을 먹었다. 황홀한 맛이었다...... 혼자서 하나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맛. 앞으로 웬만한 치즈케익은 감흥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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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점심으로 먹은 샐러드, 연어구이, 잡곡밥, 그리고 일본 미소된장에 순두부 숭숭 썰어 넣고, 마른미역 넣고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완성되는 미소 장국. 보통 책상 앞에서 일을 하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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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오트밀, 바나나, 그리고 설탕 대신 단백질 파우더를 넣어서 머핀을 구워봤다. 너!!!! 무 괜찮았다. 이렇게 서서히 야매 베이킹으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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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진 마늘 듬뿍, 연두, 스테비아 넣고 양념한 소고기를 구워서 집에 담아둔 양파/마늘/아스파라거스 피클과 야채를 썰어서 먹은 한 끼. 아스파라거스 피클 없인 못 살아. 아삭한 게 너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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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브런치 용으로 만들고 남은 아보카도 스프레드, 버섯볶음, 아스파라거스 피클,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사워크라우트, 그리고 수란 2개를 만들어 하나는 발사믹 글레이즈에, 하나는 에브리띵베이글 시즈닝을 뿌려서 먹어봤다. 둘 다 맛있었다. 내가 딱 좋아하는 한 끼 - 다양한 맛의 재료들로 이것저것 조화롭게 먹어볼 수 있는 사워도우를 밥으로 하는 양식 스타일 반찬 느낌. 놈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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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던 냉동 소고기 다짐육으로 파스타 소스를 만들었다. 샐러리, 양파, 당근, 마늘, 토마토, 토마토 페이스트, 올리브유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 만든다.





대학원 때 같은 스터디그룹에 이탈리아 친구가 있었다. 스터디그룹 친구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같이 요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탈리아 친구가 데이트할 때는 금방 할 수 있는 까르보나라를 해주고, 친구에게는 오래 끓여야 하는 라구 파스타를 해준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여자친구는 금방 바뀔 수 있으니 시간은 별로 안 들지만 근사한 까르보나라를, 친구에게는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야 맛있는 비프 라구를 해준다며. 들을 땐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랑은 짧은 시간, 심지어 한순간에 금방 빠지기도 하지만, 친구와의 우정은 오랫동안 뭉근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보통 젊은 우리는 사랑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우정에는 큰 힘을 안 들인다.



어쨌든, 그 이탈리아 친구가 생각날 정도로 너무 맛있게 완성된 비프 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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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 한 그릇 만들어 먹고 또 소스만 더 퍼먹었다. 이탈리아 사람들 토마토 잘 써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나의 멘토인 교수님이 싱가포르에 출장으로 오셨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싱가포르에 출장으로 오시는 교수님. 덕분에 독일에 살고 계시지만, 싱가포르이든 한국이든, 1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뵙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한국에서 해외로 나오게 된 계기도, 교수님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어서였다. 늘 교수님의 조언을 따랐던 건 아니지만,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신 고마운 멘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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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갔던 점보 시푸드, 덕분에 오랜만에 나도 갔다. 원래 싱가포르 현지에 있는 사람들은 점보 시푸드에 잘 가지 않는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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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Bamboo Clamp - Razor Clamp이라고도 한다. 2개면 충분하다기에 과연 그럴까 했는데, 무슨 손가락 3개만 한 굵기의 커다란 조개가 나왔다. 이렇게 큰 사이즈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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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내내 여름인 싱가포르는 시즌별 이벤트 분위기를 확실하게 내준다. 마치 이렇게라도 해야 계절감을 느낄 수 있어! 나 말리지 마!라고 하듯이. 10월 31일이 되기 전까지는 온 시내가 할로윈 장식이 가득하고, 할로윈이 끝나마자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갈아탄다. 지난 주의 오차드는 벌써부터 이렇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거리가 찬란했고, 캐롤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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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호텔 앞에는 맞은편 건물에서 빔프로젝터를 쏴서 이렇게 한 면 전체에 크리스마스 테마의 귀여운 캐릭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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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호텔과 연결된 만다린 갤러리에는 한국 미용실, 한국 레스토랑들이 꽤 들어섰다. 두부로 만든 젤라또를 파는 한국 아이스크림 집이 있다기에, 교수님과 칠리크랩을 맛있게 먹고 반짝반짝한 오차드 거리를 걸으며 감상하다 여기로 후식을 먹으러 갔다. 나는 두부 맛, 교수님은 피스타치오 맛.



두부 맛은 조금 콩 비린내가 났고 (이 나라에서 많이 파는 두유 향으로, 이 나라 사람들은 좋아하는 향 - 내가 안 좋아할 뿐) 피스타치오 맛은 맛있었다. 다음번엔 피스타치오 맛으로 바로 골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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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 장소 중 하나인 LA SAIGON CAFE에서 대면으로 하는 인터뷰를 하나 마치고, 뒤이어 친구를 만나 약속 2탕을 여기서 뛰었다. 약속들 사이에 먹은 작은 치킨 반미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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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먹은 건강한 한 끼, 버섯/단호박밥과 연어, 오이, 마, 그리고 양파와 아스파라거스 피클과 된장국, 후식으로 복숭아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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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계시던 하루 주말에 다른 분들을 함께 초청해서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선물로 Advent Calendar -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인 25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열어보는 선물을 받았다. 규칙은 꼭 해당 날짜에 하나씩 선물을 열어봐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매일 하루에 선물을 하나씩 받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재고를 처리하기 아주 좋은 마케팅 전략.....!!!




이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ㅠㅠ 정말 이런 것 참을 수 없어.. 서프라이즈도 절대 못 기다린다. 다음날 결국 다 뜯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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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향기로운 목욕 제품들이 있었고, 지금부터 벌써 잘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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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남편을 위해 독일에서 가져온 크리스마스 쿠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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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도우에서 이제는 바게트로 갈아탔다. 염소치즈, 석류잼, 피스타치오가 박힌 몰타델라 햄을 발라서 먹어도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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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발견한 꿀 조합은 후무스 + 카야 조합이다. 햄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후무스와 카야의 부드러운 운조합이 너무너무너무 잘 어울렸다. 발사믹 글레이즈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음. 후무스 + 카야가 꿀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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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연락을 가끔 받는다. 그렇게 알게 된 분인데, 결국 우리 대학원 말고 싱가포르의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셨으나, 연락을 주셔서 만나게 됐다. 덕분에 맛난 저녁을 얻어먹었다. 맛있었다.



https://maps.app.goo.gl/4DY247NEc2Q9X1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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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GO · 80 Bras Basah Rd, Level 1 Fairmont, Singapore 189560

★★★★☆ · Italian restaurant

maps.app.goo.g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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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피스타치오에 꽂혔나 보다. 구운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 한 통 순삭 했다... 너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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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장을 오신 팀이 있었다. 예전 직장에 있을 때 알게 된 분인데, 싱가포르에 출장을 온다고 연락을 주셔서 만났다. 밥을 먹고 간 카페에서 먹은 딸기 마차. 어디선가 마차와 딸기의 조합이 좋다기에 시켜봤는데, 다시금 느낀다. 밖에서 사 먹는 과당이 들어간 음료는 너무 달아서 늘 후회한다는걸... 담부터 아예 시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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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오셨으니 빠꾸떼를 드셔야죠. 한국인 입맛에 아주 잘 맞는 싱가포르 음식 중 하나인, 마늘이 듬뿍 들어간 돼지갈비탕 빠꾸떼. 국물을 무한으로 리필해 줘서 한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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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좀 걷다가, 전망이 좋은 루프탑을 소개해드렸다. 맥주 한 잔씩을 시키시고는 - '이렇게 먹는 술은 너무 좋지' 라고들 하셨다. 알고 보니 전날같이 출장 온 다른 팀들과 술을 3차까지 달려, 오늘 하루 숙취로 모두들 힘드셨던 모양이다. 오늘 저녁은 그 팀과 같이하지 않았지만, 따로 저녁 먹고 나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며, 오늘은 얼마나 마실지 걱정된다고 하셨다.



'오늘 저는 술 안 마시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하는 나의 물음에,



'그러면 그 사람이랑 같이 온 대리들이 불쌍해지는 거지.. 이게 한국 직장 생활의 현실이야.'라고 씁쓸하게 이야기하셨다.



그 자리에 있던 분들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이셨다. 잘나가는 회사의 대표님, 대학교 교수님, 큰 기관의 장이신 분도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술을 강요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폭탄주를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면서 다음날 일정을 힘들게 소화해야 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즐기는 마조히스트같은 사람이 상사로 있는 곳에 근무한다면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것 같다.




잠깐 이분들과 1시간가량 나눈 대화에서, 내가 저런 기업 문화가 싫어서 한국을 떠나왔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다.



회사는 일하러 가는 곳인데, 왜 일 이외의 것으로 서로를 힘들게 하는지.


자! 여러분! 내일부터 우리 모두 눈치 보지 말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합시다!! 하고 리셋해서,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가학적인 상사들 모두 타도했음 좋겠다. 들고일어납시다, Gen Z 들이여!! 나도 동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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