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진 모든 것이 삶의 무게, 여행의 길에서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모로코의 쨍한 햇볕 아래 뽈뽈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얼굴이 구운 아몬드 마냥 잘 익었다. 다년간의 노마드 생활로 축적되어 있었던 기미 주근깨들이 휴면기를 깨고 하나 둘 올라오고 있다. 매번 지우기 번거로운 화장은 잊은 지 오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누 하나로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는 햇빛과 바닷바람으로 자연 건조하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푸석이는 탈색머리, 외모로만 평가한다면 모두들 나를 바닷가 인생 n년차에 서핑 고수인 줄 알 거다.
이렇게 치장도 샤워도 간소하게 끝내버리는 이유는 내가 지금 배낭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각종 스킨케어, 색조 화장품, 세안 도구, 드라이기 등 부피가 크거나 없어도 견딜만하다고 판단된 물건들은 몇 번이나 담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내려놓았다.
땡볕에 지고 다녀도 실신하지 않을 만큼을 맥스로 꾸린 15킬로 배낭은 한여름부터 한겨울까지를 살아내는데 필수품들과 가장 좋아하는 옷들로만 채웠다. 나는 이들을 반려(물)건이라 부른다.
끝을 모르는 여행의 길에서 새로운 것을 사서 소유한다는 것은 마치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과 같이 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내가 만든 선택의 결과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 낼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충동적으로 지갑을 여는 바람에 한껏 무거워진 짐을 들고 다니다 보면 사실 별 필요 없는 물건이고 쓸데없는 소비였단 걸 깨닫고 후회하게 될 때가 많다.
새로운 구매를 한다는 것은 이고 진 기존의 모든 것들의 중요도를 저울질해야 하며 결국은 아무것도 거두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또 한 번, 고뇌의 시간을 거쳐 찰나의 유혹을 잘 이겨내고 나면 마치 무소유를 수행하는 현자 마냥 초연해진다.
모로코를 여행 중인 지금, 길거리에 널린 이국적인 상품들을 보면 흔들리는 눈빛을 감출 수 없지만 앞으로 짊어지고 갈 무게를 생각하며 애써 눈길을 돌린다. 다만 3일이 지나도 그 상품이 눈에 밟혀 잠을 설치며 잃어버린 반쪽 마냥 계속해서 떠오른다면 '이건 사야 해'의 신호다. 얼른 달려가서 나의 운명의 반려 물건으로 맞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