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월) - 2월 22일 (일)
[시어머니: 아이의 할머니, 친정엄마: 내 엄마]
우리는 양가 부모님이 지방에 계신터라 서울에서는 늘 세가족이 전부였다. 아이 덕에 친구가 된 다른 가족들을 만나긴 하지만, 서울에서 아이에게 가족 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줄 이는 엄마와 아빠뿐인게 사실.
집에서 엄마나 아빠가 집안일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아이는 혼자 놀거나 기다려야 했는데, 여기서는 누구든지 한명은 본인과 놀아주니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오랜만에 본 양가 부모님까지 모두 행복하다.
특히 아이가 쑤욱쑤욱 자라고 성향도 홱홱 바뀌어 버리는 시기, 42개월 차 아기.
지난 추석과 비교해 아기의 외형, 말본새, 태도 같은 것들이 많이 달라져있어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무척 신기해 하신다. 친할아버지는 아이가 말을 너무잘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도되겠다 하시고, 외할아버지는 아이가 선물받은 키즈폰 카메라를 곧잘 조작하자 천재가 아니냐 하신다. 아이는 할머니댁에 와서는 온갖류의 선물과 칭찬세례를 온몸으로 받고, 주인공이 되어 온 가족의 시선을 듬뿍받고 간다.
여기서부턴 좀 재밌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친/외 할머니들에게도 역시 쪼꼬만 몸과 입에서 나오는 아이의 행동과 말이 신통방통하고 예쁘지만, 아이에게 하는 말의 내용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무척 다르다.
친할머니는 제 손주의 예쁨이 가장 먼저 들어와 아이를 우선하는 말들을 많이 하고, 외할머니는 아이를 이렇게까지 키우느라 여간 고생하고 있을 딸내미에게 시선이 꽂힌다.
예를 들어 달달한 음식을 먹는 일이나, 양치나 목욕을 시켜야 할 때가 그랬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눈치가 보이더라도 달달한 음식을 몰래라도 하나 손에 쟁여주려 하신다. 아이가 엄마 눈치를 보는 것 같으면 먼저 나서, ‘괜찮아! 그냥 먹어도돼! ’ 내가 어떤 대꾸를 하기도 전에 얘기를 하신다.
친할머니 눈에는 눈치 보는 아이가 며느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반면 친정엄마는 본인이 아아스크림이 드시고 싶어 아이에게, ‘아가 아이스크림 먹을래?’ 물었다가, 내가 단걸 너무 많이 먹었다 하니 금세 ‘가게가 문을 닫았네’ 하고 말을 돌린다.
아이가 목욕이나 양치를 안하려 들때도 시어머니는 아이 편을 드시고 친정엄마는 내편을 든다.
겪어보니 드라마나 미디어에 노출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은 사실 기반이다.
아무리 좋은 직장 상사를 만나 마음을 주고 친하게 지내더라도, 그와 나의 본질적인 관계는 상사와 부하직원인 것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설령 양쪽이 모두 좋은 사람일지라도 한국에서 오랜시간 보편적으로 가져온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리긴 어려운 터라 고부관계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체로 미디어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는 ‘당한 사람’의 입장을 표현한다. 보통 ‘ 아랫사람’인 며느리가 당하는 입장으로 그려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며느리의 시선에서 그려진 시어머니는 까다롭고 고지식하며 제 아들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아마도 나도 시기마다 크고작게 미디어로부터 얻게된 이미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나 남편이 오직 밉기만 하던 시절엔 시댁 어른들과 전혀 교류가 없을지라도 시댁을 생각하기도 싫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명절을 지나며, 시어머니의 시선이 아이에게, 친정엄마의 시선은 내게 더 오래 그리고 짙게 머무르는 걸 보니, 저마다 각자 역할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아이 편에 서서 누군가는 내 편에 서서 고루고루 살펴주니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 만약 둘다 아이편에 섰다면 나는 외롭고 섭섭했을 것이고, 둘다 내 편에 섰다면 아이가 주눅들기 쉬웠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커지는게 맞다.
예전엔 내 편 아닌 이들에게 오직 적대감만 느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내가 해가 될 것 같은 눈앞의 것들을 빠르게 분류화시키고 경계했다면, 지금은 내편이 아닐지라도, 혹여 나의 적이라 할지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대감보다 고마움의 마음이 더 크게 들게 끔 변했으니 말이다.
아이와의 삶은 내가 나를 벗어나, 타인에게 마음을 더 크게 그리고 넓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부모의 선생이 된다.
[워킹맘, 어차피 뭐!]
워킹맘이라 힘든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는 직장생활과 육아 두가지 일을 해야하니, 양적 혹은 물리적으로 눈코뜰새없이 바빠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기 쉽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그것은 두 가지 이상의 과업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진짜 핵심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힘든 포인트는 두 가지인데 모두 ‘감정’과 연관된다.
하나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감각 때문이다. 직장생활과 육아 둘 중 하나도 온전히 뛰어들어 해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겐 에너지의 총량이 있고, 엄마인들 다를 바 없으므로, 에너지를 한 군데 모조리 써버리면 반드시 반대 쪽에서 구멍이 난다.
바쁜 일이 주어져도, 혹은 영감을 받아 조금 더 일을 하고 싶어도 칼퇴를 해야한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니까. 오전엔 이른바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어 출근이나 등원에 대한 압박감이 없지만, 하원까지 손을 빌리자니, 금전적인 부담을 넘어 아이에게 못할 짓이란 죄책감이 더 크다.
다행히도 요새 직장은 이른바 '일가정 양립'을 위한 분위기가 많이 퍼져있다. 그러나 여전히 엉덩이로 일하는 것을 높게 사는 조직이, 아니 그 안을 이루는 사람들이 전체의 반은 넘는다. 그런 시선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쿨한 성격까진 못되는 지라, 퇴근 시간이 되면 칼퇴를 두고 이리 저리 눈치를 본다.
특히나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 예상치 못하게 회사에 못나가게 되는 날이면, 이를 어쩌지, 조급한 생각에 실시간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는게 느껴진다. 가장 힘든 건, 아이가 아픈데도 회사에서 나의 입지가 어찌될지를 떠올리는 내가 혐오스럽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육아를 잘하는 것도 아닌 이런 @$!% 같은 상황.
매번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하원을 하는 아이를 보거나, 아침마다 엄마 회사가지마(ㅠㅠ) 하며 울먹일 때면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린다고 이 아이를 고생시키나 하는 마음이 후욱 하고 올라온다.
바쁜 직장생활을 탓하며 반찬도 국도 다 사다먹인다. 머리로는 이 방법이 효율적이고 심지어 영양적으로도 효과적인 걸 알면서도, 엄마의 밥을 먹고 자란 나는 '요리하는 엄마'를 훌륭한 엄마라는 이미지에서 떨어내질 못한다. 반찬을 주문하면 죄책감도 함께 배달 된달까.
회사를 다녀온 저녁 또는 일주일 근무를 다 끝낸 토요일, 축 내려앉은 체력때문에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지 못할때면, 직장생활도 아이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쉽게 우울감으로 번진다.
두 번째는 이번 명절을 지내면서 훅 치고 올라온 감정.
새삼스럽게 계산 해 보면, 아이와 나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평일 아침 30분, 저녁시간 3시간 남짓을 함께 한다. 그리고 약 12시간을 떨어져 지낸다. 등원때까지는 이모님이, 그 이후엔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아이.
나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아이를 보니 아이가 매일 얼마나 자라고 어떻게 커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절 연휴 5일을 내내 붙어지내니 아이가 이만큼이나 자랐다고? 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구사하는 단어와 문장들, 생각의 방향, 위기대처능력 등등이 이제는 더이상 아기가 아닌 어린이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보지 못하는 매일의 12시간 동안 아이는 쑥쑥쑥쑥 너무나도 쑥쑥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겨우 3시간 조금 넘게 아이를 보면서, 내가 낳았고 휴직 1년은 매일 24시간을 함께 했다는 시절을 끌고 와, 아이를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이쯤 되니 나보다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더 잘 아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지며 괜스레 선생님이 부럽고 질투가 난다. 아이를 돌봐주는 이를 질투하다니!! 슬프도다.
아쉽고 울적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적었는데, 연륜(?)인지 생존본능인지는 나를 우울에만 빠지도록 내버려지 두진 않는것 같다. 갑자기 '어차피 뭐!' 라는 모드가 발동된다. 현실을 직시하는 직관이 생긴 걸까?
무슨말이냐 하면, ‘내가 아이를 가장 잘 안다’는 것은 사실 오로지 엄마의 착각에 불과하단 사실을, 미리 배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앞으로의 아이 인생 내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어휴 적다보니 한참 남았네??) 아이의 일상 대부분은, 지금처럼 기껏해야 최~대 세시간을 부모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곤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이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겠지.
그래 결국 내가 할일은 내가 없는 공간에서 아이가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고 씩씩하게 살수있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맞아 이게 내 육아의 목적이었는데 또 금새 까먹고 살고있었나보다.
그래, 장착하자. 쿨맘의 모드. '어차피 뭐! 독립시킬려고 키우는건데 뭐!!'
자. 그럼 워킹맘이라 힘든거 말고 좋은 점을 떠올리며 잠에 들어야겠다.
예컨대 다음달 월급으로는 예쁘고 소리가 찰진 키보드를 사야지~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걷다가 목격한 사랑의 장면]
30분정도 일찍 마친 회사. 그 덕에 동네에 일찍 도착했다.
'어린이집에 애기 일찍 데리러 가야지~' 하는데, 아이가 아침에 내 귀에다 대곤 ‘(베시시) 텐텐 좀 사줘라~ 까먹지 말고‘ 했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재빨리 근처 약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는 길, 지하철 역을 지나는데 군복을 입은 남자와 일상복을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여자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인인가? 왜 개찰구까지 가지 않는거지? 하는 슴슴한 생각으로 그 옆을 지난다. 괜히 궁금해져 뒤를 돌아보니 여자는 연인이 아니라 엄마였다.
연인인 줄 알았을 때는 별다른 호기심이 가지 않더니, 내가 엄마가 되서인지 (물론 딸 엄마지만 ㅎ) 그 모습이 갑자기 크게 와닿는다. 휴가를 복귀하는 아들, 단순한 이별의 슬픔이 아닌 아들이 하게 될 고생에 마음이 미어진 엄마. 흐그그흐극. 갑자기 마음이 주책 맞아진다.
아들은 엄마의 눈물을 다래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군모를 벗어 손에 들고 휘저으며 씩씩한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 ’나는 괜찮은데 왜 울어‘ 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는다. 흐그그흐극.
걷다가 사랑을 목격했다. 사랑의 장면을 마음에 꼬옥 담아두고 서둘러 약국을 향한다. ‘텐텐 하나 주세요!!‘ 텐텐 쥔 손을 패딩 주머니에 넣고선 어린이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의 사랑이 기다리는 곳으로.
(엄마가 되면 이렇게 감상적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