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 3월 1일
2월 25일 수요일
뜨거운 물이 허공에 쏴. 아기 목욕 전 욕실을 따듯하게 데운다. 아이는 소꿉놀이 장난감 몇 개로 식당놀이를 하고 나는 틈틈히 식당 사장님의 역할을 하며,아이의 머리와 몸에 거품을 문질문질. 샤워를 하고 난 후엔 얼마전 싹뚝 잘라버린 단발머리를 드라이기로 위잉 말려준다.
아이의 머리를 말릴 때는 온풍과 냉풍을 적절히 섞어서 테크니컬하게(ㅋㅋㅋ) 손목 스냅을 흔들어준다.
뜨거운 바람이 나올 때면 아기 머리결이 상하려나 싶어 차가운 바람으로 얼른 바꾸는데, 문득 생각이 흐른다. 어차피 이 머리는 잘려나가겠지? 하는 생각.
아이가 파릇파릇 쑥쑥 자가나고 있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지만, 머리카락과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깍은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하얗게 다시 자라난, 초승달 모양의 손톱 끝다시 잘라줄 때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이는 앞으로 손톱 자르는 일을 수없이 반복하겠구나. 그리고 나는 아이의 절반만큼 남았으려나? 내가 없는 아이의 삶도 제법 길겠지? 하는 생각.
그러다 우리 엄마아빠는 아이의 반의 반만큼이 남았겠구나 하고 어쩐지 짐짓 마음이 가라앉는 생각이 머리를 휘젓는다.
그러나 머리말리기가 끝나고 아이가 끝났어요?물으면, 생각들은 비눗방울처럼 펑 하고 터뜨려져 흔적없이 사라진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아이와 나 부모, 결국 사람의 생애에 대해 짐짓 생각해볼 순간들이 많지 않았겠지?
틈틈히 떠올리며 함께 있을 때 잘해야지.
그런 하나마나한 다짐을 또 한번 하는 하루의 끝.
2월 24일 화요일
지난 일요일. 아이와 둘만의 데이트.
늦게까지 집에서 늘어져 놀다가 느릿느릿 외출준비.
느린게 좋다. 그릭요거트와 커피, 과일과 쌀로 만든 빵을 테이블 가득 늘어뜨려놓는다.
아이는 주말 아침에만 볼수있는 티비를 보고 난 그 옆에 딱 붙어 앉아 종이책을 읽는다. 넷플릭스 ‘개비의 매직하우스’ 두편이면 50분. 중간중간 개비 스토리에, 음악에 대해 짧은 잡담도 나누고 서로 입에 빵도 먹여준다. 다보고선 마주보는 방향으로 앉아선 무릎에 올려둔채 안아주고 뽀뽀도 하고 간지럼도 태우고 얘기도 한다. 완벽한 주말 아침.
여유롭게 외출준비를 하고 근처 대형 복합상가로 향한다. 일렬로 늘어선 식당. 입구에 그려져 있는 메뉴판을 차례차례 구경한다. 다섯개의 식당을 돌아다니며 먹을 음식을 고른다. 아이는 아비꼬 카레집을 선택한다. 키즈메뉴 하나 매운 어른카레 하나. 키즈메뉴에 나온 카레도 맵다며 소세지 돈까스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엄마가 선택해주지 않고 스스로 고른 식당과 메뉴. 자기가 선택해서인지 매운 카레를 재워하곤 다 잘 먹는다. 아마 이 간단하고 짧은 과정에서 아이는 선택과 결과에 대한 흐릿한 감각을 배우지 않았을까.
그러고선 약속했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야하는데 배가 불러 소화를 시키자 했더니, 네살배기 아이는 어른을 흉내낸다. 그르쟈~많이 먹어가쥬규 좀 움직여야대~
거대한 복합상가이므로 구경할 곳은 천지. 교보문고 앞에서 팝업 매대가 열려 구경하는데 아이가 마음에 쏙 드는 키링을 발견했나보다. 요새 유생하는 키보드 키링이다. 생각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이건 안되겠다 얘기하고 아까 전 마음에 들어했던 삼천원짜리 인형으로 협상을 시도한다. 아이는 받아들이긴 하지만 시무룩하다. 입술이 쭉 나온 상태로 계산을 하러 가는 길, 퀄리티가 거의 비슷한 키링이 반값도 안하는 걸 발견! 기쁜 마음에 둘이 쭈구리고 앉아 고심하여 골라본다. 장난감 두개에 만원도 하지 않아, 엄마도 아기도 만족스러운 쇼핑.
아이스크림도 먹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기대했던 전시회도 보고, 전시회 옆 카페에서 그림책도 보고 그림을 그렸던 하루. 놀이동산이나 여행에 가서만 먹을 수 있던 츄레스까지 카페에서 와구와구.
그렇게 온종일 원하는 것을 온전히 취하기만 했던 하루. 주5일 어린이집에서 규칙을 따르느라 참고 긴장했던 아이, 그리고 주5일 어른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규칙에 더 긴장한 엄마에게 선물같던 날. 이러려고 돈 버는거지 뭐. 담번엔 더 대범한 경험과 소비를 해보리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