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책 읽다가 딴 길로 새기

by RachelJane
책의 원문을 적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잡이로 적었습니다.


1부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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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흔히 여러 단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을 받는다.

어쩌면 내가 무엇이든 시작 자체를 어려워 하는 것도,

이렇게 '시작은 중요한 것' 이라는 이런 통념이 내 뇌리박혀 작용했을 수도 있겠구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시작 자체가 중요하긴 하지.

엄밀히 따지면 시작을 어려워 하는게 아니라,

'시작부터 완벽하길' 원하기 때문이겠지.

이른바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이 어려워하는 포인트가 정확히 이런거겠지.

완벽할 수 있다는 이상,

그것은 인류를 위대하게 하는걸까. 겁나게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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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사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 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그렇지.

우리는 어떻게 만났어? 같은 질문은 심심치 않게 하지만,

연인의 욕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의 불알친구가 아니고서야

연인과 연애가 어떤식으로 흘러가는지 시시콜콜하게 묻지 않는다.

왜일까? 흥미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모두 제각각 그것이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굳이 한번 더 꺼내서 씁쓸함을 곱씹지 않겠다는 의지일까?

문득 진화론적인 관점이 떠오른다.

사랑의 과정이 유쾌하지만은 않고

때로는 도피나 결별을 원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면,

인류가 더이상 사랑하려 들지 않고,

마침내 번식이 종결되는 상황에 대한 번식본능의 발현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까지 흐른다.

쭉 적어봤지만 다시 돌아온 결론은,

사람은 나의 슴슴하고 지지부진한 하루의 일과 말고,

좀 더 설레고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일들에 훨씬 더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나는 모든 이들의 그 지지부진하고 불편하고

숨막히는 듯한 갈등의 과정이 궁금한데??

그래야 내가 겪는 이 과정도 일반적인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글을 통해 기쁨보다는 위로를 얻는 쪽인가보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 완벽은 허상인데? 그렇다면 사랑은 허상일까?

사랑에 빠졌을 땐 나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행위가

날 도와주는 행위로 느껴지지만,

사랑으로부터 조금만 빠져나오면,

그것은 잔소리로, 독선의 목소리로, 과도한 간섭으로 느낀다.

그렇다면 사랑은 허상이 맞는것 같다.



그는 자신의 세계들로 그녀의 허기를 채운다.
커스틴은 수십 년을 거슬러 열두 살의 소년을 위로해주고 싶은데, 그 갈망이 자신도 놀랄 만큼 강렬하다.

누군가를 아는 것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를 아는 것은 그 사람의 표면을 이해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알고 좋아하는 것은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겠지만, 인간의 고독을 달랠 수는 없다.

어떤 인간도 고독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사랑을 통해 나의 세계 안에 누군가를 들이고,

누군가의 세계에 들어가봄으로써

잠깐이나마 고독을 지워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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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년의 관계 안에서 재현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맛본 사랑이란 보다 파괴적인 다른 역학들과도 얽혀 있다.

소름 돋는 문단.

슬픈, 처참한, 고된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자기의 이야기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이성에게 끌리는 것이나,

혹은 자기를 학대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군림했던 존재와 닮은 이성에 끌리는 것.

그것들을 설명해주는 말 같기도 하다.

결국, 어렸을 때 겪어보았던 '익숙함'을 찾아가는 것.

새로운 것은 언제나 뇌를 긴장하게 하니까,

슬펐더라도, 처참했더라도, 고되었더라도

조금이라도 익숙한 그 길을 다시 걸으려 하는 것일지도.

내가 혹여 어떤 불행을 선택하려는 패턴을 발견한다면,

반드시 내가 이런 유년시절에의 친밀한 감정과 연관된게 아닌지 잘 살펴야겠다.

지금보다 나아지는 삶은 쉽게 가질 수 없다.

무겁더라도 긴장이 되더라도 새로운 선택이 있어야만 나아질 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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