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고 있어요
요즘엔 눈이 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동하는 차안에서는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종이책은 들고다니기가 번거롭고, 핸드폰으로 보기엔 눈 건강에 안좋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무튼 유투브에서 나에게 맞는 채널을 찾아 귀로 듣는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늘은 배우 이청아가 민음사 TV에 출현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설명해주는 콘텐츠였다.
책을 좋아하는 이청아는 자신의 유투브 채널에서도 그런 면모를 마음껏 뽐냈는데, 민음사 TV에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설렜던 모양이다.
의례적인게 아니라 진심으로 들뜬 마음에, 캐리어에 책을 담아서 온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그 마음이 짐작이 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청아가 그 채널의 호스트에게 이야기한다. 역시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소녀미가 느껴졌다고. 그들 사이에서 (혹은 나를 포함해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고 그것들을 서로 알아봐주는 것이다.
처음 만난게 분명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경계가 아닌 친밀감이 15분 내내 뿜어져 나왔다.
어떤 대상을 함께 좋아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해제하고 호감을 갖게 하는 아주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면 사이가 좋아진다는말이 있던데 그것도 이 같은 원리인걸까?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서부터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무엇인가가 통한다는 맥락을 관계에 대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가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무작정 귀를 쫑긋 세우듯이 말이다.
요즘 많이 하는 말인데 나랑 같은 지점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해서 좋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클리셰에 급속히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나는 독특함을 추구하는 줄 알았다.
겪어보니 감상에 한해서는 그런 것이고, 내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서는 특별하고 독특한 지위에 있기 보다는 보편적인 것을 원한다.
다시 말하면 홀로 고독한것 보다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아티스트웨이에 나오는 모닝페이지를 흉내내려고 이렇게 무작정 적고 있다. 최근 몇 개월동안 내 귀에 많이 들려온 책이라, 오늘은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 하고 대여를 했다.
책을 읽기 전에 밀리에서 리뷰를 보는 것 또한 재미있다. 책을 고르는 과정의 일부가 되었는데, 짧은 한줄의 감상에도 사람이 보이는게 재밌다.
아주 심플하고 건조하게 책에 대한 감상만 명료하게 적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마도 이 사람은 굉장히 실용적이며 드라이하고 중립적인 사람이겠지?) 칭찬 일색인 책에 대해서도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한다.
‘밀리의 서재’라는 플랫폼은 어쨌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접근하는 곳이므로 네이버와 같이 사용층의 범위가 다양한 사람들인 케이스와는 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리뷰댓글들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역시나 어떤 집단에서나 제각각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정해져있나보다.
새로운 키보드 키감이 좋아서 자꾸 메모를 하게 된다. 시원하게 들이키는 아이스라떼. 맛있다. 교감이 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으며 여유로운 대화를 즐긴다. 자연을 감상하거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이면 금상청화. 내 행복의 모습. 그렇다면 오늘 점심 시간은 내가 원하는 삶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그런 것일수록 너무나 까먹기가 쉽다. 자꾸 기억해야지.
엄마의 환갑이자 정년퇴직을 기념으로 떠난 가족여행. 아빠의 환갑여행 이후 처음이었으니 약 4년만의 모임.
그때는 아이를 가진지 몇 주 안 된 임신초기라 아이는 내 뱃속에서 콩알로 존재했는데, 이번엔 예전 한국나이로 다섯살이 되어버린 아이가 분위기 메이커를 톡톡히 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의 부모는 늙어간다. 이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자 자연의 법칙인데 요즈음하는 실감이 남다르다.
정년 퇴직 후의 엄마는 어떤 삶을 꾸릴까. 25년을 넘게 일을 해오셨으니 한편 후련하긴 해도 마음이 복잡하고 불안하시겠지.
내가 억만장자가 되서 엄마가 하고싶은 걸 이제 오직 누리게만 해드릴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도 나를 키우는 동안 수없이 하셨을 생각이겠지?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생각이기도 하고.
가족과 타인에 대한 차이는 이런걸까. 내 가족은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싶어진다.
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까?
어떤 음식들은 몸에 독이 되고, 또 어떤 음식들은 몸에 약이 되듯,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 그것으로부터 뻗어나오는 생각들은 내 마음에 켜켜히 쌓여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내 몸에 잘 맞는 음식을 취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것들을 배제하듯, 내 삶도 그렇게 돌보아야겠다.
26년에 접한 유투브 영상들, 책들 그리고 어제 코칭에서 만난 사람들. 이전과 다르게 나는 나에게 잘 맞는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인생. 길어야 100년. 이 유한한 삶에서 그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펼치고 비슷한 목적으로 일을 도모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시간은 빠듯하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고 비워내며 살아가야지.
(무가당)아몬드라떼에 길들여지고 나서는 다른 라떼에서는 그만큼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아몬드 브리즈 언스위트에 포션커피를 한캡슐 더하고 거기에 소금을 한꼬집 넣고 전자렌지에 2분 데운다. 다이소에서 사온 2천원짜리 거품기로 거품을 내서 마신다. 뜨끈하고 짭짤하고 고소하다.
이런 조합은 시중에 팔지 않기 때문에 살수도 없거니와, 매일 밖에서 두세잔의 커피를 사먹었던 것에 비하면 돈도 상당히 아낄 수 있다.
내입맛에 딱! 맞는 조합을 찾아내고 그게 가성비도 좋다니, 행운이다.
나의 까다로운 취향에 확고히 맞는 무언가를 찾아낸 일. 으아 너무 좋아라.
일상에서 겪는 이렇게 소소하지만 아주 확실하고 단정한 행복.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사는거지 뭐.
매일 아침마다 글을 쏟아낸 지 50일 정도 지나갔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짧게나마 후루루룩 적어내던 것이 내 마음의 배기구로 작동해서 참 좋았다.
그런데 브런치를 하다보니 브런치에 적을 만한 글인지를 자꾸만 검열하면서 적게 된다. 그러니 원래는 쭈욱쭈욱 써지던 글도 갑작스레 손이 멈춘다.
내 배기구의 묘미는 머리의 생각을 거치지 않고 손부터 작동하게 두는 것인데 자꾸만 생각이 관여한다. 이래서는 안된다. 그냥 원래하던대로 막 쓰자. 뭔가 성과를 내려하지말자. 제발 좀 뭔가를 해내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이 공간 만큼은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거늘 예끼!! 이놈!! 정신차리자.
역시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흥미로웠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다시 배우고,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은 좋았다. 불과 1년 전 내가 느꼈던 감정과 완전히 달랐다.
서울 시내의 오래된 건물 6층에 둘러앉아 14명의 어른이 강사 한분의 수업(직무교육)을 듣는다는 것. 어쩌면 이 장면은 내가 수없이 많이 겪어온 장면이라 뻔하다. 새로울 것 없이 흥미로울 것 없는 외형. 이미 다 해보았고 지루하다는 감정을 느껴보았던 장면. 같이 교육 듣는 이들과 별로 할 얘기도 없고 어색해 혼자 밥먹을 곳을 찾아 헤매고 혼자 산책을 하고 돌아왔던 점심시간들.
이 즈음의 시기에 인생을 대하는 내 자세도 비슷했던 것 같다. 아 해외 어디에 가도 이제는 별로 이국적이지 않아. 영화를 볼때도 아 상업영화의 클리셰네 재미없다. 맛있는 음식도 아, 아는 맛이지 뭐. 모든 게 뻔해 재미가 없어. 그런 생각들. 삶에 대한 권태감, 더불어 찾아온 무기력감. 아마도 나는 그때 모든 경험의 외형만 바라봤던게 아닐까.
그 경험을 이루던 모든 구성요소에는 각자의 사연과 스토리가 있는 법인데 내가 먼저 지레짐작으로 미루고 놓쳤던 재미들이 너무도 많을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고 그게 아니면 별로야 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도 그 시절 내 안이 ‘그저그런 생각’으로만 꽉 차 있었던 거겠지.
어제 수업을 들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호기심이 갔다. 강사님부터 각각 다른 이유와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온 옆자리의 사람들. 지금 내 안에는 어느덧 그저그런 생각을 밀어내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차있나보다.
인생이 얄궂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 한끗 차이 같기도 하고, 거대한 세계관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1년전의 나보다는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살고있는 것 같아 괜히 또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