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책과방
1.
부녀는 마주 앉아 치킨 박스를 비운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TV 영화를 보고 실컷 수다를 떨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부녀'라는 모습은 다르겠지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이랄까.
맛있는 걸 먹고 여유를 즐기며 좋은 작품을 보고 실컷 수다를 떠는 일.
그렇다면 오늘도 당장 할 수 있지.
그 순간에 행복을 의식적으로 인지해 보아야 겠다.
2.
삶만큼 죽음도 모두에게 고유한 것이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그렇지 숨을 쉬고 숨이 멈춘다는 사실만을 제외하고는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완전히 고유하지.
그런 생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건 결국 남은 자들의
위안이자 놀이이자 도구이자 축제일 뿐이겠구나.
남은 자들에게, 죽은 자의 이야기는 결국
잘만들어진 작품 하나를 보고 감상 후기를 나누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지도.
책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있듯, 각자의 평가도 결국 살아있는 자의 자화상일 뿐이겠지.
결국 남들을 의식해서 내가 갈 길에 방향을 틀거나 멈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3.
“저런 놈 아니면 싸울 일도 없어요, 사실. 그리고 이왕 싸울 거면 꼭 이겨야죠.”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나도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싶다.
파이팅 넘치고 어떤 곳에서 우월한 곳을 차지하겠다는 의지.
나는 분쟁을 싫어하고 그럴바에야 그냥 지고 말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적으려다보니 이런 생각은 사실 국한적이다.
즉, 특정한 대상에게만 그렇게 하는 거 같다는 의미다.
나는 웬만해선 싸우지 않지만 상대가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생기면
대놓고 싸우진 않아도 그에 걸맞은 피드백을 하는 편이다.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지만
이왕이면 이겨야겠다 정도의 마음은 장착되어 살고있는게 아닐까?
어쩌면 나 스스로에 대한 착각을 터무니 없이 많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4.
“다들 사정이 있긴 해. 그치?”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다들 저 마정의 사정이 있지.
그러나 문득 저 문장을 보는데 대체 얼마만큼의 사정을 봐주어 하는 것일까?
그 기준이 궁금해진다.
나는 많은 경우 이런 식으로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래 그건 너만의 이유가 있었겠지. 그건 저 사람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
와 같은 다정하지만 안일한 이유로 이해해왔던 많은 일들.
대체로 그런 문제를 파고 들어 일을 키우기 보다는
저렇게 마무리하는 것이 내게 편했기 때문에 선택한 방식이었겠지.
결국 '내가 편안한 만큼'의 사정만 봐주면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 내가 편안한 만큼 이라는 나만의 기준이 존재하는걸까?
그건 아마도 '억울하지 않은' 정도,
일이 있고나서 다시 떠올라서 '그러지 말걸' 하고 후회는 하지 않아야 할 정도겠지.
그래. 적어도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선까지만 이해를 하자.
5.
“쭈그리고 있는다고 잊히겠니? 살다 보면 잊는 거지.”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충동적인 슬픔에 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그렇지.
모든 감정은 충동적이기 마련이지.
혹은 은은하게 오래되는 감정들도 결국은 시간의 힘에 따라 흩어지지.
어떤 일을 의연하게 받아들일지 혹은 심각하고 막연하게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바로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사건이, 이 감정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세상에 멈춰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물건들도 그 물건을 지탱하는
인력과 장력이 끊임없이 움직여서 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까.
결국 모든 것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러므로 맞딱뜨린 일들과 감정, 그러니까 충동적인 슬픔이 흘러가는 것도
자명하고 또 자명한 '사실, 팩트'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자꾸만 잊게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순간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6.
남편이 때렸다고 하면 ‘다음에는 잔소리를 좀 더 부드럽게 하라’는 말을 충고라고 하던 시대였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경악을 금치 못하는 문장.
나를 때렸는데 맞을 짓을 했겠거니가 용인 되어있는 시대를 보여주는 한 마디.
이런 글을 보면 시대성에 따라서 도덕적 가치가 얼마나 가변적인지 매번 놀라움을 겪는다.
그 오래전에는 추앙받았던 가치들은 때때로 고지식한 옛것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온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관념이 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이럴 때있을수록 어쩐지 커다란 바늘이 나를 콕 하고 찔러주는 것 같다.
"이것봐. 니가 지금 그렇게 몰두하거나 집중하고 있는
그 가치들의 무게는 이렇게 가벼운거야.
시대가 흘러가면 그것은 깃털이 되고 먼지가 될 수도 있어.
그러니 니가 진짜로 원하는 가치를 찾아야지."
하고 콕콕 찌르며 구박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 구박이 꽤 마음에 든다. 으히히히.
그래 먼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것들로 싸매고 고민하지말자.
맛있는것 많이 먹고 많이 웃고 떠들자.
7.
나희는 만약 오래전 죽은 엄마의 유령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했다가 금세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엄마는 나희에게 미안한 것 없이 죽었기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7년 전 이 세계를 떠났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 밀리의 서재
소설 속 나희가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지를 보여주는 세 문장.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 그러지 못함에 대한 위로,
본인의 욕심보다 엄마의 행복을 더 빌어주는 마음.
나희는 20살인데 이런 마음을 몇살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런 마음은 지켜낸다고 지킬 수 있는게 아니고
떼어내고 싶다고 뗄 수 있는 것들이 아니겠지.
따뜻한 나희가 상처받고 마음을 접고 차가워졌다가도
이내 다시 따뜻하게 돌아오는 삶을 살겠지.
차가워졌을때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얼마만큼은 괜찮았으면 하는 소망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