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을 하자.

예술 안에서.

by Rachel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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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채널 '민음사 TV'를 즐겨보는 요즘.

특히 독서클럽 모임을 좋아한다.

대체로 문학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데,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부분은 호스트와 게스트가 소설 속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할 때이다.

감정이입해 그 상황을 이야기하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을 험담하기에 이르게 된다.

걔는 대체 왜그런거에요? 그때 정말 황당했잖아요.

같은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몰입하고,

그 몰입이 웃긴지 서로의 모습에 깔깔 거리는 장면들.


내가 왜 이 장면이 이토록 좋을까를 돌아보면,

이야기를 하는 50분의 시간이 몹시 무해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남을 험담하는 일에 대하 다른 사람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

20대의 혈기왕성하던 시절,

누군가가 내 앞에서 험담을 하면 그를 손절하기도 했다.

반드시 그가 내 뒤에서도 내 욕을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물러지고 세상의 각박함을 겪으며,

이제는 험담이 주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동의하며 살고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남의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공식이 있다.

그것이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험담은 유해하다'는 나만의 공식은 유효하달까.


그런데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험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소설 속 인물에 대해 강렬한 비난을 하거나 악담을 퍼붓더라도

그것으로 피해 볼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안전한 장치 속에서 험담의 긍정적인 효과만을 누리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렇다. 나도 험담을 마구 내뱉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꾹꾹 삼켜 참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실용성을 높이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예술의 효용에 대해 의문을 품곤 한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은 예술이 주는 심미와 경이를 예술의 효용이라 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몹시도 실용적인 효용을 가진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술’은 사람들의 욕구를

매우 안전한 방식으로 해소하게 한다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감탄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잔인한 호러 영화를 통해서 스릴을 만끽하며,

헤비메탈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귀여운 그림을 소비하며 행복에 젖어 드는 것이다.


만약 예술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욕구는 그대로 뿜어져 나왔을 것이고,

대체로 원초적인 본능은 생존과 위협에 아주 가까운 것들이므로,

사회는 점차 ‘동물적’으로 변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본능을 펼쳐도 무해한 곳. 그곳이 바로 예술이라는 장르인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성인군자를 흉내낸들 우리는 인간이고 그전에 동물이다.

동물에게 본능과 욕구는 막거나 절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배출되어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만큼 훌륭한 욕구의 배출구가 있을까?


으흐흐.

예술을 동물적으로 마구마구 소비해보리라 즐거운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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