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해서 사람은 행복할까?

'철학을 보다' 유투브 채널 후기

by RachelJane

문명의 발전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에 대해

철학자, 심리학자, 신학자와 뮤지션이. 대화를 나눈다.

다양한 의견을 내는데 어떤 말들이 꽂힌다.


첫 번째

문명 혹은 물질의 발달은 되려 행복이 아니라

그것의 결핍을 만들어내 불행에 가까워지는 것일수도 있다는 것.

세탁기, 냉장고, 인터넷 같은 산업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편리해진 삶.

그러나 편리하다는 것이 행복한 것이냐 묻는다면

그건 꽤 다른 장르의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편리한 물건을 가지지 못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장 불행과 연결된다.

결국 문명의 발달은 결핍의 발달과 같은 문장이 된다.


나는 가지지 못해 불행한 게 있나?

적고 보니 결핍이란 풍요를 실체적으로 경험한 이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어린 시절 풍요롭게 자라지 못해서인지

나는 가지지 못했다는 결핍보다는 돈이 부족해 겪었던

불화나 엄마의 푸념과 불면 같은 것들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큰 것 같다.

소유를 경험하지 못해 소유불가한 것에 담담하다니.

이것은 슬픈 일일까, 다행인 일일까.


다시 한번 돌아가 질문해보면,

내가 가지지 못해 불행하다 여겼던 건

아무래도 마음의 평화 였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간에

마음의 편안함, 안락과 평화를 원했는데,

그것이 결핍되어 내가 혼돈을 겪으면

그것이 그렇게도 불행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인간인 이상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두 번째

SNS, 인터넷, 언제나 그리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세상.

이 곳에서 우리의 모든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리의 과거가 화석이 되어 자꾸만 들추어진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갈까 망각으로 살아갈까?

둘 중 중요한 것이 ‘망각’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좋은 기억력이 자랑거리가 되고

한 시절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망각이 없는 인간이란 저주와도 같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이 저주를 세상에 선사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데,

실수한 순간을 영원히 복기시키는 것.

십여년 전쯤인가 유행했던 ‘영고’

(영원히 고통받는다의 줄임말)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신학자가 이야기한다.

‘우리는 잊혀져야 해요. 타인에게서도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서도’

그 말이 나를 관통한다.

그렇지. 그래야 하는데

나는 내 과거의 것을 계속해서 들추지.

그래서 나를 감추지.


만약 내가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 곳에서,

나의 과거를 내가 원한다면 감출 수 있는 세상에서 산다면

난 모든 과거의 흑역사를 지워내고

순정한 삶을 살아온 마냥 자신감 가득 살수 있으려나?

곧바로 대답 하기 어렵다.

나라는 사람의 천성으로 보면 기술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나의 어두운 역사를 반추할 것 같고,

또 한편 주어진 환경에 충실한 특성이 부각되어

과거를 망각한 채 룰루랄라 살았으려나.

그 상황이 오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지.


나도 이제는 지나온 부끄럽다 여기는 날들의

나를 좀 놓아줄 때도 된 것 같다.

세상은 점점 더 발전하겠지만,

나를 기억할 무엇인가가 어딘가에 남아 날 괴롭힐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무감하게 망각하고 살아가도 되지않을까.

적어도 내 스스로 나를 괴롭히지는 말아야 하는게 아닐까.



세 번째.

선택으로부터의 스트레스.

선택지가 6개가 넘어가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건 예전부터 알던 이야기니 진부하게 느껴졌는데,

출연자 중 한명인 뮤지션이 이야기한다.


다른 출연자 모두들, '그렇죠. 선택이 너무 많으면

‘손해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저는 어릴 때 더 다양한 음악을 듣길 원했어요.

선택지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며

자기보다 20살은 더 많은 학자들에게

대화의 결을 거스르는 내용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저는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대중적이고 상업성이 있는 보편의 음악의 시대.

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게는 전제가 있다 생각했다.

‘그는 취향이 확고하다,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점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깨닫는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나의 취향을 확고히 아는 사람은

쉽게 불행하지 않겠구나.

남들이 좋아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순서가 몹시 중요할 것 같다.

나를 먼저. 다른 사람은 다음에.

결국 나에게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자 할 때와

같은 순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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