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닌 것 같아요.
주말의 한낮. '잘 쉬고 있어?'
어제 헤어지기 전 친구에게, 이번 주말엔
아주 오랜만에 육아에서도 벗어난 휴식을 맞이한다 했더니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잘 쉬고 있는건가?
지난달부터였다.
‘잘 쉰다는게 무엇인지’란 주제가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때는.
그 사이 시간이 지나 잊혀지려다, 또 갑자기 이틀 전부터
'대체 잘 쉬는게 뭘까? 난 어떤 휴식을 취하고 있지?
나도 참 잘 쉬고싶다'고 생각이 번진다.
생각은 어느새 '올해는 잘 쉬는것 하나만 제대로 알고
실천하면 그걸로 충분할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 삶을 짧게 반추하며,
내가 언제 가장 잘 쉬었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데
신기하게도 잘 쉬었단 생각도 나지 않고 감각마저 생소하다.
뭐야, 난 그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걸까?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
쉰다는 걸 떠올렸을 때 무엇이 떠오르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숨을 좀 돌린다'는 생각이다.
머리와 몸이 바쁘게 일하다가 잠깐 멈추어 서서
숨을 의식하고 편히 쉬는 것.
이 이미지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무언가를 하느라 '바쁘'거나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두번 째로 떠올린 이미지는,
놀랍게도 쉼에 대해 떠오르는 ‘무기력함’이다.
20대때 평일에 회사를 꽉꽉 채워 잘 지내고 나면
주말엔 에너지가 쭈욱- 방전, 나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쉬었는데 잠을 오래자거나 누워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개운한 휴식과는 먼 감각이었고,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절규하는 듯한
귀찮음과 무기력증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그즘에는 ‘쉬면 우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었지.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과거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주말에 아이가 아빠와 나가고 5~6시간의 휴식이 주어지면
나의 휴식은 크게 두 가지 중 하나로 뻗어간다.
내가 명확하게 하고싶은거나 할게 있는 날은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뿌듯한 시간을 보내지만,
아무 생각이 없고 그저 몸이 피곤해서 그냥 누워서 쉬고싶은 날에는,
두세시간이 지나면, 무얼 해야하지? 하는 혼란이 시작되고
이윽고 무기력이 되어 내 휴식시간을 잡아먹는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휴식'이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나는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야’하는 모드라고 정의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일상에 나가서 쓸 에너지가 필요한데,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적극적인 휴식‘을 했다가는
평일에 살아남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관성이 되어 지금껏 나와 함께 있다.
자, 그러면 나에게 '진짜' 휴식은 무엇일까.
내게 잘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적당한 탄력’
곰곰히 생각한 나의 답변은 이것이었다.
늘어지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은 적당한 탄력.
결국 내게 진짜 휴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내 삶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평안을 가져왔고 무엇때문에 불편했을까?
균형은 평안을 곧장 가져왔고,
치우침은 언제나 불편했다.
나는 늘상 무엇인가에 질려했는데,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반드시 불편해져,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보는 일을 평생 반복했다.
균형.
그것을 맞추기 위해 나는 부단 노력해왔다.
휴식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결국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균형'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아마고 이런 내 삶의 가치관 때문에
내가 휴식을 떠올렸을 때 생각났던 것이
'잠깐 숨을 돌리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내내 바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늘어져 쉬는 것도 아니라,
잠깐 멈춰서 숨을 돌리는 장면.
적당한 균형이 존재하는 장면.
어쩌면 이것이 내가 원하는 휴식의 의미를 관통하는 장면이었을까?
20대 그리고 30대의 초반까지도
평일엔 에너지를 너무 쏟고 주말엔 에너지를 너무 아꼈는데
이런 삶은 그닥 나에게 잘 맞지 않았다.
30대 초중반이 되고서는 회사에서 에너지를 아꼈다.
육아를 해야하니 에너지를 있는대로 쓰기가 겁이 났으니까.
그러나 이런 삶 역시도 그닥 나에게 잘 맞지 않았다.
이것들은 불균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게 휴식이란, 잘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내게 필요한 휴식 또한 '균형을 맞추는 행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균형있게 나를 쓰는 것.
지나치게 머리 쓰는 일에 몰두했다면
산책을 해서 바람을 피부로 맞이하는 것
도시에서 오래 지냈다면 자연으로 잠시 머무르는 것
결국 내가 정의한 휴식이란,
바쁘거나 몰입이 먼저였다.
휴식만 덩그라니 있는 것이 아니라 몰입 뒤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따라오는 것.
그러니 나는 따로 휴식을 취하려고 무엇을 한다기보단
평소에 ‘균형을 맞추는 방향‘을 지향하고 살면
애초부터 휴식을 갈망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가닿는다.
김영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선 안 된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던 수년 전에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일출이 떠오르는 성산대교 위를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지금은 분명히 이해한다.
최선에는 균형이 없다.
무엇이든 그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
극단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보고 살아왔다.
자연스레 굳어진 이분법과 흑백논리와 극단적인 사고가 뒤흔들던 20대,
그리고 여전히 사고후유증처럼 남아있던 30대의 시절까지.
어렴풋이 알던 것들이 분명해진다.
나는 가장자리의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삶은 가장자리에 다가가느라, 그곳을 맴도느라 피로했다.
나에겐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
삶의 정답이 존재하리라 믿고,
어느 한쪽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는 일이
나에게 그토록 어렵고 늘상 의문을 주던 이유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내게는 특정한 정답을 향해서,
어떤 목적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적절한 탄력을 가진 선 위에서
앞으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맴돌거나 머물더라도,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읺게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서있으면 되겠단 생각.
꽤나 유의미한 결론이 나와버렸다.
극에 가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만의 균형을 찾는 것에 집중하자.
그러면 자연히
내 일상에, 살아가는 과정에, 나의 몸에, 나의 기분에
맘편히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될것 같다.
그리고 왠지,
인생은 그것이 다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