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고 있어요
[차가 막혀도 밖이 흐릿해도, 컨디션 매우좋음]
출근길.
버스로 회사까지 네 정거장을 앞두고 있다.
차 막히기로 꽤 유명하고 유서깊은 곳을 지나간다.
오늘 따라 평소보다 더 차가 막힌다.
버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시야가 뿌옇다. 미세먼지 주의보.
교통정체나 날씨와는 별개로 오늘 내 컨디션은 '매우 좋음'
재미있는 건, 이 모든 것들은 내 컨디션에 따라 '재편집'된다는 것.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고,
미세먼지 낀 뿌~연창문 밖의 풍경이
놀랍게도 내눈엔 생기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감상에 젖은 생각들도 쏟아진다.
저 수많은 차들이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구나.
다들 부지런하구나. 모두들 생기있게 살아가는구나.
미세먼지가 해의 산란을 더욱 부각시키는구나.
해 밑은 따뜻하겠지. 후후후.
역시나 세상을 보는 시각은 자화상이다.
내 안에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그것이 핵심이자 모든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도 노출되고
어쩔수 없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도
내 안에 차곡 쌓이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서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좋은 것만 먹고 예쁜 것만 봐야지.
모든 일과 모든 사물과 모든 사물에는
언제나 예쁜 면이 있을테니까.
[잘자라 우리 어른~]
좀 피곤해서 그런건지 뇌가 명람함을 잃었다.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지는 않는다.
책을 읽더라도 그게 총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오늘 날씨처럼 약간의 fog가 낀것 같다.
진짜 수면의 힘은 대단하다.
이렇게 자명하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도
왜 사람들은 이걸 이렇게도 쉽게 놓치는 걸까?
나만 해도 왜 놓치는 거지?
여건을 탓하지만 사실 여건은 어느때보다도
일찍 자기에 안성맞춤일지도 모른다.
아이랑 같이 잠들면 되니까.
근데 왜 그러는 거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아기를 재운 뒤 스트레칭을 하러 나오는 그 시간이
늦게 자게 하는 악의 근원인 것 같다!!!
그렇다고 스트레칭을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자니
아이가 나 때문에 깨면 낭패 중에 낭패.
그래 스트레칭은 한다는 전제로 스트레칭만 딱 하고 자자.
잠자기 직전에 몸을 이완시킨다는 목적으로
조용한 상태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들어가서 자야겠다.
그래 진실을 밝히자.
사실은 스트레칭이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칭을 할 때 심심해서 트는 유투브 콘텐츠가 문제.
하나가 끝나면 다음 영상 재생.
계속해서 재빨리 이어지는 손놀림에 취침 시간이 늦어진다.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가는 생각을 그대로 흘려버리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 속을 들여다볼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를 달라!!! 아, 여유는 누군가한테 받는게 아니겠구나.
혹여 받는 거라면, 내가 주는 일이겠구나.
여유롭게 살자.
[기대하는 자, 실망하리라.
기대하지 않는 자, 기뻐하리라.]
다른 나라의 이야기, 그것도 특정 시대가 반영된
소설을 읽는다는 건 참 묘한 느낌을 준다.
문체와 단락의 구성도 다르고,
소설 속 분위기나 주고 받는 대화풍도 이질적이다.
가끔은 주인공들의 대화의 맥락을 쉽게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의 것이니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니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더듬더듬 그 모습들을 그리고 맥락을 좇아본다.
이런 수용과 너른 아량은, 나와 멀리 있는 것일수록 더 커진다.
애초부터 나와는 다르다는 전제 때문.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무례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러려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듯이,
처음부터 다를 것들에는 동일한 행동양식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겠지.
이와 같은 선상에서,
내가 이미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것들을 대할 때,
우리는 훨씬 더 엄격하다.
현대 소설을 보거나 내가 전문가인 분야의 드라마를 볼 때는
탐구나 호기심이 아니라 얼마나 사실적으로 잘 묘사했는지 보자!!
하는 판단의 잣대가 벌써부터 자리잡고 있달까.
아마도 이국의 다른 시대에 대한 소설을 즐기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관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이고,
동시대의 현실이 반영된 소설을 즐기는 것은
깊은 공감과 위로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