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싫어하는 이유

(feat. 대가리 꽃밭)

by Rachel

첫 눈맞춤 이후, 나는 동아리방에서 산적을 기다리는 일이 잦았다.


우리는 같은 과였지만, 분반이 달라서 쉬는 시간에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아예 다른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강의실 위치도, 수업 시간도, 친구들도 모두 달랐다.


신입생이라 학교에 적응하기도 전에 지칠 판이었다.
대학이 자유롭다는 말, 그건 나랑 거리가 멀었다.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는, 그 정도로 좀 빡빡했다.

하루 종일 강의실을 돌다가 보면,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름도 얼굴도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게, 나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지쳐버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동아리방이었다.
거기만 가면, 내 이름을 아는 선배들이 있었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 산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있으면, 나는 말을 걸었다.
정말 별 얘기도 아닌데.


"오늘 수업 몇 개 들었어요?"
"이거 보고서 언제까지에요?"
"아, 진짜요?"

그는 짧게 대답했고, 나는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또 다른 말을 꺼냈다.


나는 그를 좋아한 게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좋아한 거라고, 자꾸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술자리에서 듣게 됐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선배들이랑 술을 먹던 날,

선배들의 권유로 삼일쯤 뒤에 우리 동기들끼리 술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은, 아지트라는 술집이었다.

갓 스무살이 된, 주민등록증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우리들은 신나서 술집에 가서 맥주를 시켰다.

"어, 왔다!"

하나 둘씩 도착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한명씩 숫자를 세고 있을 무렵, 산적이 느지막하게 도착했다.

"오, 오늘 수업 이제 끝난 거야?"

"아니, 선배들이랑 할 말이 좀 있어서 하고 왔어."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산적을 보면서, 나는 좀 맥이 빠졌다.

나에게만 무심한 척 대답하는 게, 조금은 속상했다.

그래서 마음먹고 무심한 척 물었다.


"너는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왜 그런 거야?"

"너? 너 대가리 꽃밭이잖아."

"뭐?"


대가리 꽃밭이 대체 무슨 말이야?

처음 3초는 멍해서 무슨 말인지 생각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어,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너, 대가리 꽃밭이라고. 웰컴투동막골에 나오는 머리에 꽃 꽂은 애. 걔랑 똑같다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랬던 걸까.

나는- 그 순간 코 끝이 매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맥주를 홀짝였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나는- 네 목소리가 좋아서, 그냥 계속 말을 걸었는데. 그게 대가리 꽃밭이었어?"

"응, 그래서 네가 싫어. 남들은 너 때문에 불편해하는데, 넌 그걸 모르잖아."

"어, 그래. 조심할게."


애써 마음을 그러모아, 대답을 한 뒤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한 일들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아, 또 내가 눈치없이 굴었구나.

나는 눈치 없이 구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 걸 생각 못했네.


나도 모르게, 세면대 위에서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눈물 때문인지, 아까 급하게 마신 맥주 때문인지, 취기가 올라 발개진 얼굴을 보며 든 생각은-

아, 취한다. 술에 취하는 건지, 눈물에 취하는 건지 모를, 취기였다.



취한다 생각하면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대가리 꽃밭’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그 사람한테 말을 걸었던 날들,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오늘 머리 감았어요?" 라고 물어봤던 날도 있었고,

가끔은 좀 개인적인 질문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왜 그걸 물어봤지 내가?)


내가 생각해도 좀… 꽃이었구나.


누가 당황해하든 말든, 내가 궁금한 걸 먼저 물어보는, 나 중심의 성향이 그런 생각을 만들었구나.


그 사람은, 그걸 ‘무례’라고 여겼을 테고,

나는, 그걸 ‘호기심’이라고 여겼던 거다.


그날, 나는 머리에 꽂혀 있던 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눈치 없이 내 맘대로던 내가 처음으로 눈치를 보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