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회 경험

(feat. 바보 같은 나)

by Rachel

신입생 시절의 기억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동아리에 많이 매달렸었던 거 같다. 소속감을 주는 것이 동아리니까, 과 동아리에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학과 소속의 풍물동아리 문을 두드렸지만,

선배들은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대놓고 따돌리곤 했다.


빠릿빠릿한 친구들이나 사회 경험이 있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러서 그런게 다 티가 났다.

한번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 어리버리했다.


가끔은, 선배들의 은근한 따가움이

바느질처럼 마음에 촘촘히 박히는 걸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눈물이 후두둑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화장실에 간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는 사람은 없고 내 가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나'까지 사라진 것처럼.



그래서일까, 중앙동아리에서 만난 동기의 존재는 사막의 단비 같았다.

더 매달리고, 더 집착했던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아리의 술자리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그 자리는 내게 거의 '도피처'같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술자리에서만큼은 나를 따돌리는 걸 느낄 수는 없었다.

취기에 올라서 헛소리를 하든 말든, 나를 챙기는 사람- 동기들은 있으니까.



나는 그게, 조금은 서글펐다.


갑갑한 마음에 동아리 방에 남아 혼자 별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주말에 집으로 간 룸메이트의 빈 자리를 보며 숨죽여 울곤 했다.


나는 그 때도, 내가 우울증 증상을 앓고 있는지 몰랐고

주말마다, 선배들이 놀자고 불러 줄 때마다 너무 기뻐서 울었었다.


사실 선배들이 신입생을 불러서 같이 놀자고 했었던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로 좋았다.

내가 기댈 곳이, 생긴 것 같았다.

여기도 우리 집이 생긴 거 같아서-

피는 안 섞였어도, 내 가족이 새로 생긴 기분이었다.

그래서 선배들을 많이 따랐고, 그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아주 많이 믿었다.


그런데, 첫 사회 경험을 대학교에서 쌓을 때는 꽤 큰 것들을 알게 된다는 걸 몰랐었다.

그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산적이 나를 불러냈다.

"너, 조심해."

"뭘?"

"눈치 챙겨.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선배들이 너 그만 부르래."

"뭐? 나 뭐 잘못한 거 있어?"

"눈치 없으면, 말이라도 하지 말고 웃기만 해."

"......."

그 즈음의 나는 눈치가 없으면 웃기라도 하라는 그 말을 지켰다.

그러니 다른 말이 나왔다.



"너 요즘 왜 그래? 실실 웃고 다녀서 이상한 애 같대."

"눈치가 없으면 웃으라며?"

"하아. 진짜 너- 사회 경험 없냐?"

"그게 뭔데?"

"..... 그냥, 너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해."

어리버리에 눈치까지 없던 내가 답답했는지,

산적은 다음날부터 나를 보면 코칭하기 바빴다.



"물은 니가 직접 떠. 친구들 하는 거 보고 있지 말고."

"응."

"그리고, 친구들 하는 거 보고 있지 말고 너도 많이 해. J 봐봐. 먼저 하잖아.

그런 사람이 되어야 사람들이 너에게 먼저 말이라도 걸어보지."

"응, 그리고?"

"그리고, 인사 잘 해. 맨날 인사 잘 하면 되는거야. 대신, 눈치 챙겨가면서 인사해."

"인사는 나 늘 잘 하는데?"

"그런 말대꾸 말고- 상황을 봐가면서 인사를 하라고. 인사할 상황도 아닌데 인사하지 말고."

"어.. 알았어."

"그래, 그럼 좀 알아서 잘 커라."

머리를 쓰다듬어 준 산적은 그대로 학과로 걸어갔다.

나는 분반이 달라서 수업이 없는데, 1교시 수업이 있다며 먼저 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에선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산적을 먼저 보내고 터덜터덜 동아리방으로 돌아오는데,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는, 그렇지 않나?"

"걔 말대로 대가리 꽃밭이지."

"그래, 그래서 좀 그렇다. 자르기 전에 나갔으면 좋겠는데."

동아리방 문을 열려고 하자, 문 앞에 서 있던 선배가 말했다.

"지금 회장단 회의 중이니까, 장비방으로 가자."

대가리 꽃밭이란 말을 들어서일까, 저 말이 나를 향해 꽂히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힘겨웠다.

"D야."

"네."

"선배들 지금 네 얘기 많이 해. 안 좋은 쪽으로."

"네?"

"자르네 마네, 이야기가 많아. 눈치 없다고."

"......."

"그러니까 잘하라고."

"....제가, 그렇게 눈치 없이 굴었나요?"

"왜 울어?"

"노력한다고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안 되나 봐요."


당황한 선배를 놔둔 채, 나는 화장실로 달렸다.

울컥, 하고 차오른 눈물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변기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우는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광대구나.

바보 같은 아이구나.

사람 좋은 사람들이라서, 나를 배척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 가족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대했구나.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인생 처음의 첫 사회 경험은, 그토록 싫어하던 술맛과 같이 쓰디썼다.


그날 마신 혼자 마신 맥주 한 캔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만큼 묘하게 달았을 정도로, 인생의 맛은 무척이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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