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끝, 여름의 문턱

(feat.여름밤 같은, 중간고사)

by Rachel

그 해의 중간고사를 기억한다.

나는 그 시험을 여름밤처럼 기억한다.

숨 막히게 무겁고, 길게 이어지는 공기 속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결국은 견뎌내야 했던 밤.



더운 날이면 어김없이 그때가 떠오른다.

첫 시험, 유난히 애를 먹던 물리·화학.
공대에 왜 왔는지, 수학 머리도 없으면서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눈물과 자책이 먼저 몰려왔고,
공식을 정리하는 손끝은 과제 더미에 묻혀 허우적거렸다.



대학 생활의 낭만은 분명 낭만이었지만,
시험만큼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어려운 만큼, 나는 밤을 샜다.
하루가 갈수록 눈 밑은 짙어지고,
잠이 부족해 눈앞이 아득해지곤 했다.
어느 날은 기숙사에서 내려야 하는데도,
멍하니 학과 사무실 건물 앞에 내리기도 했다.


같은 학과는 아니었지만, 수학과 동기에게 어렵게 물어가며
동아리방에서 과제를 붙잡고 공부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농담 같기도 한 선배들의 말이 떠돌았다.


“우리 D, 이번 중간고사 과탑 하겠다~”
“하하… 제가요? 수업 시간마다 조는걸요.”

어색하게 웃어넘겼지만, 그 말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중간고사 첫날,
홀로 동아리방에 남아 있는 나를 보고
한 여자 선배가 건넨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늦은 시간 수영 수업까지 듣고,
저녁에는 토익 학원에 가기 전에 전공책을 두러 들른 길에
우연히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동아리방은 낯설었지만,
나는 더 공부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선배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노력하면, 저 사람처럼 자기 관리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선배는 정말 과탑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동아리에는 과탑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올라,
나는 그 해 첫 중간고사를 뜨겁게 지새웠다.
“남들처럼만 하자.”
그 생각으로 도서관에도 나가고, 책을 빌려와 공부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는 참담했다.
나는 썩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중간고사에서 그저 ‘중간’을 한 걸 보고, 이상하게 안심했다.
아, 진짜 공대 와서 중간을 한 게 자랑스러운 날이 올 줄이야.




중간고사 결과가 발표된 날, 우리 기수는 술자리를 가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소주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간을 한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중간이라도 한 내가 기적 같았고,
그러면서도 더 잘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마셨다.

그날의 기억을, 깡그리 잊고 싶어서.

부질없이 쌓인 공부의 날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바야흐로, 봄날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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