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발 깁스 공대생

(feat.공대의 명물)

by Rachel

부모님이 오시길 기다리는 동안, 2학기를 위한 노력들이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집에서 부산까지 달려온 부모님은 그 꼴을 보자, 처음엔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러다 한참을 지켜보시더니 조심스레 물으셨다.


“너, 휴학할래?”

“웬 휴학이에요? 2학기 시작하자마자 휴학을 해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지. 이런 다리로 어떻게 수업을 듣겠니. 여긴 경사가 심한 학교잖니.”

그랬다. 우리 학교는 경사가 많은 곳이었다.
목발로는 버티기 힘든, 그야말로 ‘언덕의 학교’였다.

경사로로 악명 높은 부산의 3대 학교 중 하나였으니,

휠체어라도 탔다간 아마… 비명횡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우리 학과 건물에서 휠체어를 잘못 몰기라도 하면—
경사로를 타고, 정문까지 노브레이크로 단 3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차라도 만난다면 나는 아마 저 위로 가겠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목발이었다.
적어도 목발이면, 휠체어보단 괜찮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목발을 짚고 학과 건물을 종횡무진 다니기는 했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었다.

공대는 워낙 머릿수가 많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보고도 좀처럼 비켜주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비로소, ‘양발 깁스’를 본 뒤 흠칫 놀라며 비켜줄 때가 더 많았다.


나는 목발을 하고 난 뒤 정말로 후회를 했다.

교수님들보다 빠르게 강의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늘, 문을 먼저 훤하게 열고 들어가기에, 지각한 주제에 교수님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수업을 열심히 하던 교수님들은 나를 보곤 처음에는 화난 표정을 지으셨다가,

낑낑대며 들어오는 내 꼴을 보곤 놀라곤 했다. 특히 앉을 때, 양발의 깁스를 보곤 매우 놀라는 분이 90%였다.


“학생? 지금 한쪽만 깁스를 한 게 아닌가?”

“아닙니다. 양발 다 깁스를 해서… 늦었습니다.”

“양발에 깁스를 했다고? 그럼 휴학을 하지, 왜 지금 수업을 듣나?”

“2학기 중간에 휴학을 하자니 아까워서요. 그래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음… 학생 이름이 뭐지?”

“D입니다. 아마 깁스를 푸는 날까지는 계속 늦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니네. 학생은 언제든 수업에 늦어도 돼. 그런 열정을 가진 학생일 줄은 몰랐네. 다리가 그러니 지각 처리는 면해 줄 테니, 언제든 수업에 들어오게.”


물론 모든 교수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략 10%쯤의 교수님들은 내 이름을 기억해 두셨다가, 다른 분반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다.

“양발에 깁스를 했는데도, 수업을 들으러 오는 열정적인 학생도 있는데—
지금 수업 안 들어오는 놈들은 뭐냐.”

덕분에 나는 졸지에, 우리 분반뿐 아니라 다른 분반 학생들에게까지 명물이 되었다.
학생회에서도 나를 눈여겨볼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 결과, 나는 양발 깁스 때문에… 자발적 왕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 왕따는 학과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방으로 가는 길, 그 여정은 꽤 험했다.
목발을 끙끙대며 짚고 가다 보면, 공대 1호관 테라스에서 쏟아지는 눈빛을 맞아야 했다.

복학생들의 수군거림도 따라왔다.

“야, 군대 갔다 오니까 저런 애도 있네.”
“쟤는 뭔데 남자 둘 데리고 다니나 했더니… 양발 깁스래. 여자가.”
“세상에, 휴학도 안 하고 다니는 거 봐라.”
“안 쪽팔린가?”

그 쑥덕거림이 귀에 꽂히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걸음을 재촉하다가 그만, 목발을 놓친 적도 있었다.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선택이니까, 하고 어거지로 다녔다.

복학생들이야 신기하니까 그러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신기하면-

16기 선배가 사진까지 찍어갔을까.


내가 다치고 이틀이 지난 뒤,

동아리방에 들렀던 선배가 내 다리를 보고는 한참을 웃더니 그랬다.

"D야, 미안한데 선배가 사진 한번만 찍어도 될까? 내가 여자가 양발깁스한 거 처음 봐서 그래."

".....네..."

그게 그렇게 신기한가, 라고 생각하며 선배가 다리를 찍도록 잘 내밀었다.

그리고나서야, 왜들 신기해하는지 알았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공대생이, 그것도 여자가-

양발 깁스를 하면서 휴학도 안할 정도라면 굉장히 재미있는 사건임은 분명했다.


그 해 나의 2학기는, 양발깁스 사건으로 꽤 시끄러웠다.

하지만 나를 도와준 산적과 동기들로, 2학기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깁스는 꼬박 세달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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