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과 여름 MT

(feat.나의 추억들)

by Rachel

여름 합숙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MT를 갔다.

사실 시간 순서로는 성년의 날과 MT가 다리 부상보다 앞이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순서를 조금 바꾸어 두려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양발을 깁스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활발하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5월, 동아리 생활에서는 어버이날 이벤트와 20기 선배들의 성년의 날 이벤트가 겹쳐 있었다.

내가 농담 삼아 "아빠"와 "엄마"라고 불렀던,

회장 선배와 훈련부장 선배에게 어버이날 이벤트를 해 드렸었다.


그날은 다들 취해서 몸을 못 가눈 날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제정신이었기에 다들 챙겨보려고 했는데,

산적은 온데간데없고, 용용이와 키가 큰 동기도 갑자기 사라져서 진진이만 챙겨서 기숙사로 올라갔다.


진진이 녀석이 키가 나보다 컸기 때문에 너무 무거워서 잠시 쉬는 동안,

대자로 뻗어 코까지 골면서 자버렸다.


술에 취한 여니는 훈련부장 선배가 먼저 데려다 주러 갔기 때문에,

나는 혼자 힘으로 낑낑대며 진진이를 옮겼다.


진진이는 그날 술에 절어서 혼자 중얼중얼거렸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누구랑 대화를 한 게 아니라,

내일 할 일을 중얼거렸던 거였다.


그리고 다음 날, 사라졌던 용용이는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다.

하지만 함께 사라졌던 키 큰 동기와 산적은 딱 한 대씩 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야, 너네 싸웠지? 꼭 한 방씩 얻어맞은 것 같은데? 산적은 입술 터졌고, 너는 코피 난 얼굴이잖아?”

그러자 키 큰 동기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냐, 안 싸웠어.”

나는 장난스레 덧붙였다.
“에이~ 맞구만. 아무리 봐도 산적 입술 작품은 네 거 같은데? 혹시 알아, 내가 손 갖다 대면 딱 맞을지?”

까르르 웃으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정말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셋이서 란란이를 두고 말싸움이 붙었고, 결국 주먹까지 오갔다고 했다.
누가 란란이를 먼저 좋아했는지—그 사소한 문제 때문에 말이다.

그 흑역사는 지금도 내가 가끔 놀려먹는 단골 소재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란란이는 정말 예쁜 아이였다.

산적이 왜 란란이를 좋아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런 산적이, 어떻게 나와 결혼하게 된 걸까.




성년의 날에는 작은 체육대회도 열렸다.
학과 체육대회는 늘 지루했지만, 이 작은 운동회는 웃음과 경쟁이 가득했다.
상품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즐거웠다는 사실 하나만은 오래 남아 있다.

행사가 끝나고, 만 20세가 된 선배들에게 잔을 올리며 우리도 내년엔 다 함께 축하받자고 약속했었다.

란란이, 진진이, 산적, 키 큰 동기, 여니, 용용이―
그때만 해도 우리 동기들은 정말 많았다.
합숙, 여름 MT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많았다.


그해 여름, MT시즌도 이번 여름처럼 정말 더웠다.


MT 첫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래프팅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두 조로 나뉘어 각각의 보트에 올랐다.

물살을 가르며 내려가는 것도 신기했지만,

진짜 재미는 발을 이용해 서로의 보트에 물을 튀기거나 빠뜨리려는 장난이었다.

같은 보트에 탄 안전요원님이 유난히 장난꾸러기였는데, 내 뒤에 앉아 있던 여니가 그 표적이 되었다.
요원님이 일부러 뒤에서 물을 튀기고 흔들자,

여니는 깜짝 놀라 꺅꺅 소리를 지르며 앞에 앉은 선배를 꼭 끌어안았다.

놓아주질 않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요원님은 그럴 때마다 더 장난을 걸었다.

나는 그 뒤에서 그 광경을 보며 깔깔 웃다가 몇 번이나 보트 밖으로 빠질 뻔했지만, 결국 끝까지 버텼다.

물살만큼이나 시끌벅적했던 하루였다.


저녁에는 폭탄주가 빠질 수 없었다.
마침 내 생일이 MT와 겹쳐서, ‘생일주’를 과하게 마신 탓에 숙취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다음 날 보물찾기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했고,

내 동기들만 땡볕에서 열심히 숙취를 이겨내며 뛰어다녔다.
기진맥진해 돌아온 친구들과 함께 두 번째 날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꼬리잡기와 점심 만들어 먹기였다.
시원한 실내에서 누워 수다를 떨다 시작한 꼬리잡기는 인원이 많아 우당탕거리며 장난을 치는 맛이 있었다.
도장에서 여름휴가처럼 노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합숙 이야기를 꺼내자 선배들이 쿡쿡 웃으며 “합숙 한 번 더 할까?” 하고 농담을 던졌다.
나는 덥석 “네~!” 하고 대답했지만, 동기들은 일제히 “아니오~!” 하고 외쳤다.
그 엇갈린 대답이 뒤섞여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행복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 해의 여름 MT는 단체 사진으로 끝이 났다.

사진 속의 우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유학을 가서도 그 사진을 오랫동안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두었다.
몸은 멀리 있었지만, 그 사진 속의 나와 친구들이 나를 늘 학교로, 그 시절로 데려가 주었다.

아마도 그 사진 덕분에 나는 끝까지 그때의 나를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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