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과도에 대하여)
심규선의 〈밤의 정원〉을 들으며, 나는 오래 잠겨 있던 문 하나를 열었다.
소리 없이 열리는 그 문 너머엔, 내가 차마 마주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과도’라 부른다.
누군가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내겐 오히려 쉬어가고 싶은 정원이었다.
눈을 감고, 그저 쉬고 싶은 날-
서랍 속 그 과도를 떠올리며 살아왔던 나날들.
그래서 나는 이 과도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둘씩 엮어 풀어내보려 한다.
언젠가는, 연두 작가가 되어서 풀고 싶었던 그 이야기들을,
나는 — 200번째가 된 나의 고백들 중에 하나를 섞어 풀어보려 한다.
과도는 언제나 내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위협의 물건이지만,
나에게는 끝내 꺼내지 못한 마음의 상징이었다.
죽음을 붙잡고 싶었던 날에도,
겁 많던 나는 그 칼날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것은 내게 하나의 ‘쉼터’가 되었다.
그 가늘던 칼날을 바라만 보면서 버텨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어쩌면, 나는 이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써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들리는 〈밤의 정원〉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노래의 가사처럼 잊는다, 잊힌다 생각하면서도
기억 속에 명징하게 떠오르는 그 칼의 모습.
25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 모습은,
어린 날의 상징으로 기억 속에 응축되어 있다.
어린 날 처음으로 과도를 집어 책상에 넣던 날.
나는 그날 울고 있었다.
열 살이 조금 넘었던 날 —
나에게는 참으로 괴로운 날이었다.
십 년이 조금 넘는 날들을 살아왔는데 무에가 그리 괴로웠는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너무 날카로운 말들을, 내가 쥐었던 과도보다 날카로운 말들을
마음에 꽂힌 그 비수들을 참아내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차라리 술이라도 알았다면 나았을까.
그날 내가 쥔 과도는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어린 날의 손목에 꽂아넣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나는 끝내 그 칼날을 꺼내지 못했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 꺼내며 살아 있다.
칼 대신 단어를 쥐고, 나는 나를 지켜냈다.
내가 지켜낸 날들을,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자 한다.
하나의 장면도 가감없이, 덜도 더하지 않고-
목격자의 시선으로 들려드리며, 나의 삶을 이야기하며
함께 걸어보고 싶다.
그래도, 될는지-
조심스레, 여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