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구원의 서)

by Rachel

기억 속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어린 나에게 숨을 다시 불어넣곤 한다.


나는 어린 시절,
김전일 만화를 참 많이 봤다.


그 시절엔 15금이라 볼 수 없었지만,
기를 쓰고라도 몰래 봤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시작할 때 흘러나오던 OST가 좋았다.


평온 속에 숨겨진 증오와
분노 속에 가려진 슬픔과
체념 속에 잊혀진 구원의 끝에도
아직 희망은 널 떠나진 않았어 —


그 가사는 내 마음 속 어둠에
조용히 빛을 들여보내는 주문 같았다.


늘 어두웠던 나에게,
그 노래는 하나의 구원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그리고 문득,
그때 왜 그렇게 마음이 어두웠는지,
왜 그렇게 모질었던 엄마가 떠오르는지를 생각한다.



엄마는 항상 모질지는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사랑해주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빛나게 하는 트로피가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매를 맞았고,
기분을 거스르면 회초리를 맞았다.
심한 날엔, 이불 속으로 잡혀 들어가 밟히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불 속에서 장난을 치다
누군가가 나를 내리누르면, 숨이 막혀 온다.



어느 날이었다.
주말 겨울, 엄마의 기분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어린 나에게 도망칠 곳은 식탁 밑이 전부였다.

그 체리색 나무 기둥. 아직도 그 둥근 기둥과 감촉을, 나뭇결을 기억한다.


도망침에 안심하고 잠시 발을 뻗었을 때 엄마의 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그대로 끌어내져 식탁 바깥 바닥과 안쪽 바닥에 반쯤 몸이 걸쳐졌다.

그리고, 엄마는 내 배 위에 앉았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지금도 말 안 들을 거면 커서도 말 안 들을 거지! 그럴 거면 미리 죽어! 죽으라고!”

그 말과 함께 엄마의 두 손이 내 목을 조였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숨이 막혀오자 켁켁거리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엄마, 살려주세요… 나, 살고 싶어요— 살고 싶…”

필사적으로 소리치려던 그 순간, 소리가 끊겼다.

그 뒤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곁에서 봤던 동생의 말로는 엄마가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은,

끝내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내 잘못으로 덮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의 숨을 막히게 한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분명히 말했다.


“살고 싶어요.”


그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여전히 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구원의 서가 흘러나올 때마다,
그때의 나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그날 네가 외쳤던 그 생명,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넌 이미, 살아 있는 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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