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뒤의 호흡

(feat.먹먹한 삶)

by Rachel

그 일이 있은 이후의 일은, 이상하리만큼 잘 기억하고 있다.

퇴근을 하셨던 건지,
아빠가 엄마를 찾으러 급히 나갔던 장면이 남아 있다.


그날은,
엄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엄마 말을 듣지 않아 생긴 해프닝으로 덮였다.


그 즈음의 기억은 희미하다.

겨울의 일이었지만, 봄으로 넘어가는 그날까지
나는 꼭 물속에 잠수한 사람 같았다.

오랫동안 잠수한 사람처럼, 숨을 참은 사람.

호흡을 참으며,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을 바라보는 기분.
물속에서 들려오는 먹먹한 소리처럼—

나는 점점 더 많은 기억을 잊어갔다.



하지만 몇 가지는 또렷하게 남아 있다.

엄마가 나를 혼내던 일들 중, 가장 아팠던 일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때 느꼈던 창피함 몇 가지였다.


1학년, 받아쓰기 글씨를 제대로 예쁘게 쓰지 못하면
엄마는 30cm 자를 세워 내 손바닥을 때리곤 했다.

나는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아빠에게 달려갔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말리려다 꼭 부부싸움이 나곤 했다.


그 즈음의 나는, 부부싸움의 주된 원인이 나라고 믿었다.
그래서 늘 나를 탓했다.


받아쓰기를 너무 못하는 악몽을 꾸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던 적도 있었다.

그날 나는 팬티만 입고
옆집, 같은 학교 다른 반 남자아이네 집으로
소금을 얻으러 갔다.


옆집 아주머니는 키를 쓴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소금을 나눠 주시곤

오줌 싸지 말라며, 오늘 일은 비밀로 해주겠다 하셨다.

하지만, 그 비밀의 말은 참 슬프게도 비밀일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이 창가였던 그 아이의 방에서,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그 애가 봐 버렸기 때문에.

나는 내심 그 애를 좋아했었어서, 그 일은 내게 정말 큰 상처가 되었었다.

내 자신이 초라하고, 창피했다.

오줌 싸 버린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 부모님은 그럴 수 있던 시대였다.

존중을 모르는 시대,

하지만 지금은 존중을 아는 시대니

시대 변화가 참 많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창피했던 기억 하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즐거운 생활에서 30점을 맞았다.

그날 나는 팬티만 입고 저녁 여섯 시, 아빠가 집에 오실 때까지
현관 밖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다.


차가운 현관 바닥의 감촉,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서 웅크리고 있는 나를 지나가는 발소리,

흘끔흘끔 쳐다보던 옆집 아저씨, 옆집 아이들, 옆집 아줌마-

그리고 현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저녁 된장찌개 냄새.

아빠가 온다며 된장찌개를 끓이며 콧노래를 부르던 엄마의 소리까지.

동생은 누나가 걱정된다며 창문에 꼭 붙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수치스러운 기억.


그게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그리고 나는 —
요즘도 가끔, 하의를 입지 않은 채 거리를 걷다 창피를 당하는 꿈을 꾸곤 한다.

깨어나면, 그건 언제나 그때의 기억과 이어져 있다.



그 시절의 공기를 기억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그때의 나는 물속에 있었고,
지금의 나는 그 물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그 잠수하는 시간 내내-

나는, 나의 수치스러움을 그 물 속에 놓아 두고 있었나보다.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