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반비례그래프)
가까워지면 멀어지는, 그런 그래프가 있다.
아마도 y = 1/x였을 것이다.
x가 0에 다가설수록, y는 끝없이 멀어지는 그래프.
닿을 듯 닿지 못하는—
그 위의 점처럼, 나와 산적은 그런 사이였다.
학생회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름을 불렀다.
“산적!”
그러면 그는 언제나 놀란 얼굴로, 질색하며 도망쳤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어쩐지 조금 서운했다.
다른 여자 동기들에게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서
유독 나한테만 그러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그렇게 싫은 걸까.’
여니에게 물어도, 진진에게 물어도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혼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사람이라고.
한숨을 내쉬며 장비를 햇빛 아래 말려놓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땀에 절은 호구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라 그럭저럭 좋았다.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라미 언니가 다가왔다.
“가방만 있고 사람은 안 보여서,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어, 언… 아니, 선배.”
“둘만 있을 땐 그냥 언니라고 해도 돼.”
라미 언니는 잠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보여. 왜 그래?”
“별일은 아닌데요… 산적이요. 그 사람이 저를 너무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름만 불러도, 도망가요.”
“아— 그래서 아까 동아리방 들어올 때 그렇게 황급했구나.”
라미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마 쑥스러워서 그럴걸?”
“쑥스러워서요?”
“응. 그 애, 이름으로 불리는 거 싫어하는 편이야.
남자애들은 보통 성까지 붙여서 부르잖아.
근데 네가 이름만 부르니까— 그게 조금 낯설었던 거지.”
“아… 그래서 그런 걸까요? 정말, 제가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싫었으면 눈도 안 마주쳤을걸.”
라미 언니가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오늘은 한번, 성까지 붙여서 불러봐.”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운동장 위의 햇살이,
그날따라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럼, 그렇게 해 볼게요.”
“그래. 이제 곧 4시니까, 호구 걷는 거 도와줄게.”
“네. 얼른 하고 같이 쉬어요!”
라미 언니와 나는 함께 호구를 걷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게 된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개운했다.
우리 동아리의 하루는 늘 비슷했다.
아침 7시~ 9시, 실내 체육관엔 기합과 함께 죽도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1교시가 있는 사람은 샤워 후 강의실로 달려갔다.
대신 오후 3시나 4시에 다시 모여
학생회관 베란에 널어둔 호구를 장비실로 옮기는 게 그들의 몫이었다.
1교시가 없는 사람은 호구 정리를 도맡았다.
훈련이 끝난 호구를 그늘진 햇빛 아래에 말리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자리를 찾아 한 세트씩 갖다 두었다.
땀에 절은 호구 냄새는 솔직히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잘 말려두면, 그 특유의 뽀송한 냄새가 났다.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눅눅한 냄새가 배어
다음 훈련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으니까.
운동장이 한창 따뜻해질 무렵,
우리의 하루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호구를 장비실로 옮기고, 제습기를 확인하면
그날의 일과는 비로소 끝이었다.
2시간씩 훈련하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1학년에게는 일주일에 꼭 두 번, 1교시 수업이 있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2시간 훈련이 있는 날이면 이상하게 들떴다.
힘들어도, 동기들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떠드는 그 시간이
이상하리만큼 즐거웠다.
그 시간만큼은 땀 냄새보다 웃음이 더 진했다.
하지만 산적과는 분반이 달라서
1학기에는 그리 오래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멀리서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지만,
그건 늘 짧고 어색한 인사로 끝났다.
2학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같은 분반이 되었다.
그제야, 조금은 더 가까이서
내가 좋아하던 산적의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그 목소리를 콤플렉스로 여겼다.
내가 “좋다”고 말할 때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그게 콤플렉스인데, 네가 그걸 부럽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웃었다.
하이톤의 내 목소리가 싫을 때가 많았기에,
그의 낮은 목소리는 내겐 언제나 부드럽게 들렸다.
그는 몰랐다.
내가 그 목소리를 좋아한다는 게—
그저 음색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그 낮은 목소리와 함께, 친절한 행동이 그만의 매력임을,
그 때의 나도- 산적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