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일상

(feat.2학기의 어느 날)

by Rachel

아침 6시가 되면,

동아리의 기숙사생과 비기숙사생 학생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6시의 마지막 알람이 울리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곤 했었는데, 나는 늘 늦곤 했다.

지금처럼 아침잠이 많아서.


6시 5분이면 정시에 도착, 10분이 넘어가면 지각이었다.

기숙사 밖 친구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일찍 내려가서 호구 준비를 해 둬야 했다.

호구 준비란 건, 개인별로 장비 준비를 해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보통 도복은 여자애들이, 호구는 남자애들이 내리고,

내린 뒤 조립을 해서 밑으로 내려보내는 건 남자애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우리는 아직 어두운 교정을 내려갔다.


항상 기다리는 사람은 제일 빨리 오는 용용이와 진진이었다.

그 다음엔 여학생들(나, 여니, 란란), 그리고 키큰 동기 하나와 일장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내려가다 보면 늦잠을 잔 동기들도 하나 둘 씩 합류해서

최종적으로 동아리방에 도착하면 머릿수가 꽤 늘어 있었다.

학생회관에 도착해 동아리실 문을 열면, 장비 냄새가 먼저 맞았다.
쿰쿰한 장비 냄새와 새벽 바람이 섞인 냄새는, 머리를 순식간에 깨웠다.


죽도, 호구, 도복—하나씩 꺼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바닥이 꽉 찼다.

윗기수의 활동인원이 많았기에, 옮길 호구도 그만큼 많았다.
한 사람당 두세 개씩 짊어지고 나르면 어느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죽도 두 자루, 호구 두 벌, 도복 두 벌.
한 번 옮길 때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기수별로 호구를 정리하다 보면 묘하게 질서가 보였다.
누구는 끈을 단정히 감고, 누구는 대충 묶은 채였다.
호완의 끈색도 기수별로 색색이었다.

보라색, 검정색, 파란색—마치 사람의 성격처럼 다 달랐다.



선배들의 호구는 오래된 빛을 내고 있었다.
소금기가 배어 하얗게 바랜 호면, 손때 묻은 갑상, 잘 길들여진 호완.
그 낡은 흔적들이 이상하게 멋있어 보였다.

반면 우리의 호구는 새것의 티가 나서, 파란 물이 손에 배기도 했다.
새 호구는 늘 그렇듯, 길이 안 들어서 아프고 불편했다.


나는 재활 중이라 도복만 옮기곤 했다.
그마저도 뭉치로 들면 무거워서 숨이 찼다.
동기들은 그런 나를 배려해 ‘도복 담당’을 맡겨 주었다.
그게 고마웠다.



탈의실로 내려가 도복을 갈아입을 때면, 여니와 늘 붙어 있었다.



처음 도복을 입는 법을 배우는 날, 놀랐던 건—
도복 안에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네? 아무것도 안 입어요?”
라미 언니에게 되묻자, 언니가 웃었다.
“여자는 입어도 돼. 근데 남자애들은 안 입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나는 궁금증을 못 참고, 진진이에게 물었다.

“야, 진짜 속옷 안 입고 운동해?”
“응.”
“진짜?!”
“근데 너, 왜 그런 걸 궁금해해. 이상하게.”

진진이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남자들한테 도복바지 들추는 장난은 하지 마. 진짜 엉덩이 보여.”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훅 하고 달아올랐다.
예전에 산적의 도복을 장난삼아 들춘 적이 있었는데—

정말 싫어하며 질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진짜 엉덩이가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야 미안해졌다.



그렇게 2학기는 흘러갔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처럼,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왔다.
9월이 10월로 넘어가는 것도, 그저 물 흐르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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