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동기들의 입대날)
2학기가 되자, 과 동기들이 하나둘씩 군대를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조별과제를 함께하던 조장이 입대를 해버리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그 조는 다시 조장을 뽑아야 했고,
나는 그 조의 일원이었기에 회의며 재편성에 시간을 쏟느라
자연스레 재활을 게을리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가끔은 발목이 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불에 덴 듯한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운동장으로 나가곤 했다.
그게 우울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피로에 젖은 몸으로 운동을 다녀와,
수업 시간마다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우리 신입생 동기들도 하나둘씩 입대 신청서를 내기 시작했다.
“동반입대를 할까, 아니면 각자 가고 싶은 부대로 갈까.”
동아리방은 그런 이야기로 늘 시끌벅적했다.
특히 군 복무를 마친 선배들과 이제 막 입대를 앞둔 동기들의 열변은
어디서나 이어졌다.
술자리에서도, 운동 중에도—
남자 선배들은 늘 남자 후배들의 어깨를 툭 치며
“가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그 시기, 우리 맞기수인 20기 남자 선배들은 모두 군대에 가서 없었고,
19기 선배들 중 몇 명만이 남아 있었다.
18기 선배들은 하나둘씩 제대를 하고 돌아오던 때였다.
나는 동기들이 군대를 가는 동안,
남아 있던 여자 선배들의 생활을 지켜보며
‘나도 저렇게 버텨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
잘 다녀오라며, 그동안 동아리를 잘 지키겠다고
내 스스로에게 약속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겨울이 얼마나 추운 계절이 될지를.
왜 19기 여자 선배들이 그렇게 적었는지,
왜 18기 여자 선배들이 각자 따로따로 수업을 들으며
조용히 동아리 생활을 했는지를—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첫 동기, 경영학과 김동규가 군대 가던 날,
우리는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그리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Ghost’를 불렀다.
박화요비와 고유진이 함께 부른 그 노래를,
산적과 듀엣으로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키 크고 눈치 없는 동기가
“그거 나도 아는데” 하며 마이크를 빼앗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아이와 듀엣을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르게, 헤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군대 가는 동기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Ghost’의 후렴구를 부르다,
흑— 하고 울고 말았다.
노래방 구석에 누워 있던 선배들이
“야, D가 군대 가냐?”며 웃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북받쳐서 그랬어요…”
하며 울먹였다.
동기들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군대 가는 것도 아닌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그때는 나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긴 기다림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길고 긴 기다림은,
정말 겨울처럼 길고, 추웠고,
그리고… 아팠다.
그리고 나는, 동기 한명 한명을 보낼 때마다
그 아이와 듀엣 노래를 골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흘릴수록 깊어져
내 안에 작은 바다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