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을 배우는 법

(feat.시대에 따라)

by Rachel

엄마가 가끔 나에게 푸념 섞인 말을 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럴 수 있는 시대였다.
존중을 모르는 시대였기에,

엄마는 푸념과 분노를 같은 말로 쏟아냈다.

“엄마가 딸한테 이런 말도 못 하냐.”
그 말 뒤에는, 자기 삶의 팍팍함과 외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즐거운 일들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객관적인 지표인 성적 외에는,

자랑하고 싶었던 일도, 누군가에게 칭찬받은 일도 말할 수 없었다.
입 안에서 벙긋거리던 말들은 언제나 삼켜졌다.



그래서 엄마는, 가끔 나에게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목석같이 가만히 있니?”

다른 집 아이들은 학교 얘기를 조잘조잘 잘 한다며
너는 왜 그러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왜 말을 못하는지, 입을 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어렸다.
가끔은 참지 못해 거슬러 대답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손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머리채를 잡힌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머리의 통증이 오기 전에, 나는 먼저 눈을 감았다.

엄마는 그 머리채를 잡고 나를 큰방으로 끌고 갔다.
끌려 들어가기 싫어서 문 옆의 벽을 붙들곤 했지만
엄마의 완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매트리스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다시 머리채가 잡혔다. 그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그리고 힘이 빠진 것 같으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밟혔다.

멍이 잘 드는 얼굴 쪽은 내버려 두고, 잘 보이지 않는 옆구리와 엉덩이 쪽을 밟았다.



그래.
그땐 그랬다.

잘못이라는 이유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폭력이 용서되던 시대였다.



그리고 나면, 엉망이 된 얼굴과 몰골을 정리해야 했다.

아빠가 알면 큰일 나니까. 라는 말을 시작으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빠가 오기 전에, 눈물 자국을 지우고 세수를 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헝클어진 머리도 다시 빗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엄마는 그렇게 한바탕하고 나면, 피곤하고 힘들다며 드러누웠다.

저녁 일곱 시쯤, 아빠가 퇴근하셨다.
엄마의 방문이 열리고, 그제야 2차전이 시작됐다.

아빠는 물었다.
“무슨 말을 했기에 엄마가 저러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잘못해서라고 말했다.


그래. 늘 내가 잘못이었다.

엄마가 딸한테 아빠 욕도 못 하냐며 화를 냈던 것도,

엄마가 딸한테 푸념도 못 하냐며 화를 냈던 것도,
남의 딸과 나를 비교하며 그것도 못 하냐며 화를 냈던 것도—
모두 다 내 탓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용히, 평온한 척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웃고,
아무 일도 없는 아이처럼 잠드는 법을.


엄마는 가끔 내가 징그럽다고 했다.
말투가, 표정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점점,
‘보기 좋은 표정’과 ‘듣기 좋은 말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을 피하면서도,
엄마가 불편해하지 않을 나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게, 내가 배운 첫 번째 평온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내가 배운 그 평온은, 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그것을 잃는 일은 곧 더 큰 위험을 뜻했다.

그래서 나는, 그 평온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
나 자신을 잃더라도.



그러나 지금은 그 평온이, 그 거짓말 같은 평온이 거짓임을 안다.

그 평온만큼은 지켜져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를 잃어서 생기는 평온이, 얼마나 오래 간다고.

나는 나를 잃었고, 그저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살았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주장할 의지도 잃어갔고,

그 때문에 나는- 엄마 = 나, 인 것을 아주 늦게서야 알았다.

어떻게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담한 일이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다른 것처럼, 엄마와 나는 다른 객체이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을 나처럼 생각하고 살았을까.


엄마의 기준에 맞춰, 엄마의 기대에 맞춰 살면, 그게 정말 사는 거였을까?


중간중간, 나도 기쁨을 느끼곤 했었다.

성취감에 기쁨을 느꼈다. 그 때마다 이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느낄 때가 분명 있었다.

그래, 엄마 말대로 살면 좋은 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을 잃어가며 얻는 평온에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늘, 내가 문제라고 여겼다.

엄마가 기분 나빠도, 아빠가 기분 나빠도,

엄마가 아파도, 아빠가 아파도.


늘 내가 말을 듣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아서, 내가 뚱뚱해서라는 말로 나를 대했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믿었다.

가족의 평온을 되찾으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뜻을 기꺼이 따랐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건 끝이 없을 거라는 걸.

내 자신이 나에게 자신감을 갖지 않는다면 이 자존감 깎아내리기는 계속될 거라는걸.


나는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날선 말로 반항도 해보고, 눈물도 흘려 보았으며, 어린 날 숨겨 놓았던 과도를 사용하려 손을 뻗기까지 해봤다.


그러나 평온에 젖어 있던 가족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내가 만든 평온에 젖어 있던 가족들에게, 자기 자신의 문제를 보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문제를 보기보다는,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 게 더 쉬웠으니까.

그들은 나를 더 몰아세우고, 더 깎아내리는 데 집착했다.

결국 내가 무너져서야 그 깎아내림은 끝이 났다.


집은 지옥 같았다.

나는,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시대였다.

존중을 모르는, 그저 부모의 뜻대로만 사는 시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나는 점점 쓸려 내려갔다.

언제인지 모를, 나의 자아를 찾지 못한 채로.

매거진의 이전글살고 나서도, 혹은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