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정겨운 편두통)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친구가 있다.
두통.
편두통은 오래전부터 나의 벗이었다.
몸이 아픈 날이면, 안개처럼 다가와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전에는 그 존재가 너무 싫었다.
고3 무렵 찾아온 편두통은
3일 밤낮을 괴롭혀 공부도, 무엇도 하기 싫게 만들었다.
광과민성 때문에 방을 어둡게 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3일을 울었다.
세상이 깜깜해야 겨우 버틸 수 있었고,
고요해야만 통증이 조금씩 물러났다.
그때는 그것이 저주 같았지만,
지금은 안다.
내 몸이 나에게 보내던 신호였다는 것을.
그래서 두통이 찾아올 즈음에는
이제 모든 것을 놓고 쉬기로 했다.
약에는 내성이 생겼고, 알레르기까지 생겼다.
고3 시절 자주 먹던 타이레놀에는 알레르기가 생겨
이제는 먹을 수도 없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려야 하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수액이라도 맞고 나면
잠시 나아지는 두통의 힘이란—
오늘은 별 신경 쓸 일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하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참, 대단한 힘이다.
내 몸은 이렇게라도
‘멈추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몸에 관해 둔한 편이라
두통이 찾아와야만 내 상태를 알 때가 많다.
그래서 공황이 올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던 것 같다.
몸은 늘 먼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신호를
나는 너무 늦게 읽어왔을 뿐이다.
편두통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부족한 수면, 신경 쓰이는 일,
아이의 일로 마음이 쉴 틈 없는 날들,
혹은 바깥일에서 받은 스트레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흔한 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였다.
그래서 푹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가라앉곤 했다.
이번 두통도, 아마 수면 부족일 것이다.
아이를 간호하느라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를 옮겼고,
두 시간마다 아이를 살피러 오던
간호사 선생님들의 발소리에
자꾸만 깨어났으니까.
서로 '헉!'하고 놀라는 게 몇번이었는지.
나는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기도 했다.
문득, 첫 공황이 왔던 때가 생각났다.
그날은 희야네 학원에서 공부하던 날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너무 답답해지더니, 숨이 막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쳤다.
자꾸 가슴을 두드리는 나를,
희야와 써니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양곰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내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저 애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나에겐 엄청난 압력이었다.
수업을 땡땡이치거나,
나가서 맛있는 걸 먹고 오는 자유로움이라니.
나는 그런 걸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애들이 부러워, 가슴을 쳤다.
내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줄도 모르고.
갑갑해서 숨을 스무 번도 넘게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진정됐지만,
그날 단어시험은 꼴등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려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30개의 단어 중 다섯 개만 맞은 나를 보며,
나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정말로 땡땡이를 쳐봤다.
놀랍게도 그때는,
가슴이 처음으로 시원하게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단어시험은- 25개를 맞았다.
심장 두근거리는 게 없어지는 느낌이란.
나는 오랫동안 그게 공황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
오래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쉬기 힘든 순간들이 있었는데도,
그게 병의 증상이 아니라
그저 ‘갑갑한 기분이 몸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여겼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감정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황의 증상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천개의 눈물방울을 흘렸던 것 같다.
오로지 슬픔으로만 응축된, 천개의 눈물방울들을.
어린 시절, 처음으로 엄마 몰래 과도를 칼집에서 꺼내던 순간.
그 과도를 손목에 꽂아넣으려고 가늠해보던 그 순간.
차마 아플까봐 용기가 없어서, 그걸 신문지로 돌돌 말아 서랍에 넣으며 눈물흘리던 순간-
그리고- 마음에 비수가 꽂힐 때마다, 서랍을 열어 신문지로 말린 과도를 보던 순간들.
그 모든 순간은, 공황이 찾아오기 전 몸의 비명이었다.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나에게 비수를 꽂아넣던 그 말들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너 같으면 왜 사냐. 나 같으면 죽었다.”
“네 관리 네가 못 할 거면, 나가 죽어라.”
사춘기의 섬세한 결은
그 말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갈기갈기 찢긴 베일처럼,
그 말들이 창틀에 걸려 머리 위에서 머물렀다.
“너 같이 살 거면, 난 이미 죽고도 남았어.”
“내가 네 나이 땐, 내 갈 길 다 찾고도 남았는데—
넌 왜 그 모양이니?”
“왜 엄친아처럼 굴지를 못하니?
왜 그렇게 투자했는데, 그 정도밖에 안 돼?”
그 말들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숨이 막혔다.
그때는 그게 폭력인 줄 몰랐다.
그냥, 내가 약해서 버티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다.
말은 소리였지만,
내게는 칼날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이는,
열 살이 조금 넘은 무렵이었다.
나는 그날,
과도를 서랍에 넣었다.
그날 이후, 과도는 더 이상 물건이 아니라 마음의 모양이 되었다.
서랍 속의 과도는 날이 아니라, 나의 상처 모양을 닮아 있었다.
서랍 속에 날카로움을 숨긴 채 둘둘 말린, 나의 마음처럼.
너덜거림을 숨긴 채, 날카로움을 숨긴 채 숨죽인 칼처럼.
그때의 나는 아직, 숨을 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