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날들

(feat.없는 것처럼 살기에)

by Rachel

엄마는, 항상 남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D는 사춘기가 없다며,
단 한 번도 나한테 반항을 한 적이 없다며.


그 말이 입에 담길 때마다
나는 묘하게 몸이 굳었다.


반항이 없었던 게 아니라,
반항할 ‘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 감정을 느끼는 찰나마다

나는 늘 조용히 접혔으니까.

집 안 공기는 언제나 예민했고,
누구의 기분이 먼저 상할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날은 갑자기 화살이 나를 향하기도 했다.



사실, 원래부터 그렇게 조용한 아이는 아니었다.
숨을 죽이고, 기척을 줄이고, 표정을 접는 일은—
그 일 이후에 생긴 버릇이었다.



사춘기 즈음의 나는 늘 힘들었다.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기엔
사회성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아이였다.


책으로 부딪힌 지식과
몸으로 익히는 지식 중
아이들 세계에서 더 ‘유효한 쪽’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나는 결국 그 세계를 잘 견디지 못했다.
어떤 날은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야 알 만큼 둔했고,
머리채를 잡히는 순간에도
다른 아이들은 왜 그렇게 신나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수십 번 고민하다가
결국 엄마에게 물었다.

“나 지금 왕따 당하는데… 어떻게 해야 해?”

돌아온 건 조언이 아니라 비난이었다.
“그런 걸 왜 엄마한테 묻냐?
일일이 코치해줘야 하는 거면
넌 왜 그 나이 먹도록 그 모양이냐.”

그 말이 끝나기 전,
나는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화살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려 한다는 걸.

그래서,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기척을 줄이고,
표정을 접고,
욕망을 닫고,
슬픔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렇게 ‘없음’으로 견디는 버릇을,
과연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걸까.


그날도, 그런 엄마의 말을 듣고 난 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또다시 과도를 들여다보았다.

신문지에 돌돌 말려
겉보기엔 그냥 신문지 뭉치일 뿐인 그 과도는,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건드리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져서였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거기 있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걸까.

나는 그저,
그걸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숨이 조금은 가라앉곤 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나 보다.
그렇게 과도를 바라보다가
서랍을 탁 닫고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뭐에 화가 났는지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왜 그래요?”

“뭐? 너 뭐 하길래 엄마가 다섯 번을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니? 딴짓했어?”

“아… 아니에요. 그냥—”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력한 이명이 귀를 스치며
한쪽 머리가 불에 덴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순간, 세상이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어디선가 퍼뜩 불 꺼지는 소리 같은 게
내 머릿속에서 둔하게 울렸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시선이 한 차례 이지러졌다가
천천히,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나를 때린 건
엄마의 오른손에 들린 스테인리스 국자였다는 걸.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엄마… 이거 너무 아파요.”

“당장 나와. 엄마가 불렀잖아.”

“ㄴ…네.”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아
겨우 대답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의자에서 몸을 떼자마자
다리가 풀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맞은 머리가 너무 아파
다리까지 힘이 빠진 거였다.



“너 뭐 하니 지금? 엄마한테 시위해?”

“아니… 아니요. 그냥, 갑자기 다리가 풀려서…”

“빨리 나와.”

“…네.”


그날, 엄마가 나를 불렀던 이유는
국 간을 봐야 해서였다.

그래서 나를 부른 거였다.

그 사소한 이유 때문에
나는 머리를 얻어맞았고,
국자가 내 머리를 때린 자리엔 오래도록 열이 맴돌았다.



그날 저녁, 그 국이 다시 식탁에 올랐을 때
나는 건더기만 건져 먹었다.

국물은—
끝내 넘기지 못했다.
목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어떤 것들이
그 안에 떠 있는 것만 같아서.

매거진의 이전글몸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