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감각

(feat.무감각해진)

by Rachel

나는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웃기게도, 나는 그 사실을 어렴풋하게만 느꼈다.

왜 따돌림을 당하는지도 몰랐고,
왜 그걸 주도하는 아이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시절.

그때 나는 나의 바다를 만났고,
그 아이들 속에서 처음으로 ‘어울린다’는 감각을 배웠다.


무리 안에 섞여 있다는 것.
그 단순한 감각이 나에게는 생소했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왜 그 자연스러운 감각이, 나에게만 없었던 걸까.




우리 집에서 나는 분위기메이커이면서, 동시에 문제덩어리였다.
엄마의 자랑거리였고, 동시에 엄마의 수치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무리에서 어울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가 가정이라면—

나는 그 시작점에서부터 이미 어울림의 기술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집에서의 나는 늘 아양을 떨어야 했다.
애교를 부르고, 잘 보이기 위해 고운 말을 골라 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엄마의 수치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화살이.

나는 그 화살의 표적이 되었다.
그 표적의 이유는, 단지 살 때문이었다.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해 책만 읽던 나는 점점 살이 쪘고,
중학생이 되자 더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져 몸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동네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엄마의 수치심을 찔렀다.

“아니, 애를 어떻게 관리하길래 이렇게 뚱뚱해?”

그 말이 엄마에게 꽂힌 이후—
나는 삼십이 넘도록 그 화살을 맞으며 살았다.




엄마의 수치심은 늘 나를 향해 있었다.

“우리 집은 진짜 다 좋아.
딱 한 가지만 빼면. 우리 D, 살만 좀 빼면 소원이 없겠다.”

그 말은 늘,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한 바로 그 순간에 들렸다.
마치 행복을 허락받는 대신, 조건이 붙는 것처럼.

내 나이 열 살부터 붙은 그 조건은 아직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20대 후반, 캐나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나는 아버지와 새벽녘을 뛰며 살을 뺐다.

하지만 살을 빼자, 이번엔 또 다른 조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은 진짜 다 좋아. 딱 한 가지만 빼면.
우리 D, 엄마 호강시켜줄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돌을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살만 빼면, 그 조건들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알았다.

저건 끝이 없겠구나.
사람의 욕심도,
엄마의 조건도—
끝이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내가 왜 무리 속 감각을 잃어버렸는지 깨달았다.

기억 속의 엄마는 늘 나를 몰아세웠다.
엄마의 친구 아들과 비교하고,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며
“넌 그만큼 투자했는데 왜 이 정도밖에 못 하냐”며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그리고 결국, 나를 가족의 문제덩어리로 취급했다.

그렇게 나는 가족 안에서 ‘문제’로 지목되는 데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감각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가 스스로를 문제라고 여기게 된 만큼,
무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감각 자체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

그동안의 고통이,
힘듦이,
익숙하지 않았던 모든 감각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던 거였구나.



속상함에 눈물이 났다.
울음은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그 자연스러움조차 부끄러워
집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는 찰나,
엄마가 또다시

“살 때문에 자존심 세우고 도망간다.”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문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왜 우는지조차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모진 말에 상처받아서 울었지만,

너처럼 사느니 혀 깨물고 죽겠다. 나라면 이미 죽었어.

그 비대한 몸 이끌고 창피하지도 않냐, 동네 돌아다니기가?

나는 죽고 말겠다, 너같이 사느니.

부끄럽지도 않니? 그 몸을 해가지고 군것질을 감히 길에서 해?

엄마는 니가 부끄러워서 같이 다니기도 싫어. 그 몸을 해서 내 딸이라고 하기도 부끄럽다.


그런 말들을 들어서 울었던 것뿐이었는데.

지금 내가 울고 있는 이유는 달랐다.



내 인생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가졌어야 할 중요한 감각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그 감각에 무감각해진 나 자신이—
상처받는 소리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슬펐다.



나는 집 밖 정자에 앉아 30분을 내리 울었다.

따가운 겨울 바람이,
마침 눈물을 더 아리게 만들었다.

그 해 겨울,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그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여니,
엄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오니, 돼지야?”

“……”

“널 이제부터 돼지라고 부르기로 했어.”

“……”

“대답도 안 해?”

“…아니요. 그냥… 엄마 마음대로 부르세요.”



나는 그날,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마른 눈물 뒤의 잠이 억지로 나를 끌어당겼다.
울어버린 시간만큼, 내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잠들기 전,
과도가 들어 있는 서랍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원목 색상의 서랍을 힐끔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 집을 떠나야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야지.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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