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2학년 중간고사 후)
한참을 울다 지친 나는, 결국 그날 시험을 망쳤다.
2학년 중간고사는 생각보다 훨씬 벅찼다.
1학년 때보다 전공은 깊어졌고, 개념 하나하나가 더 무거워졌다.
하물며 마음이 흐트러진 채로 책을 펼쳤으니,
그 어려운 전공지식이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갔을 리 없었다.
20문항 중 겨우 열몇 개만 적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나 진짜 공부 못하나 봐…’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에 또다시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래도 울음을 꾹 참고, 남은 힘을 그러모아 다시 책을 펼쳤다.
내일은 딱 하나, 교양 시험만 남아 있었다.
그 생각 하나로 버티고 버텨, 결국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나는 편한 마음으로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100일 휴가를 나온 산적과 마주쳤다.
"어? 네가 웬일이야?"
"지금쯤이면 다들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지."
같은 과 선배가 건넨 말에 나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산적의 이병 계급장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예전과 달리, 산적은 내 접촉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너… 좀 달라진 것 같아."
"아냐. 달라진 거 없어."
"음, 아닌데. 담배도 많이 피는 것 같고… 힘든 일 있어?"
"군대는 다 힘들지."
잠시 뜸이 들였다. 나는 너무 가벼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힘내라는 말은 너무 가벼운 것 같으니까— 다른 말 할게."
"?"
"나는 널 믿어. 잘 해낼 거야."
"다들 하는 말보단 낫네."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산적을 보자, 예전과 다른 무언가가 확실히 느껴졌다.
늘 곤두서 있던 그 애가 사라진 듯했고, 그 변화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딘가 위태해 보이는 그 애 손을, 나는 저도 모르게 잡았다.
"왜 이래?"
"아니. …힘내라구. 내가 줄 건 없고, 힘내라는 말 하나는 해 줄게."
그리고 산적은, 그날 술자리를 끝으로 다시 군대로 돌아갔다.
나는 그 후로 기말고사까지의 시간을 군대 간 동기들을 만나고,
통화하고, 서로 걱정하며 버텨냈다.
숨 막히던 동아리 공기는 조금 풀렸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너무 힘들었고—눈물이 났다.
아니, 사실은 울 시간도 없었다.
신물이 날 만큼 혹독한 훈련도 훈련이지만,
밑의 후배들을 챙기랴, 내 일정을 챙기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물? 그건 사치지.’
토할 것 같은 훈련을 견뎌도,
17기 선배 하나 없는 환경에서 버텨내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버거웠다.
17기 선배들은 이제 졸업반처럼 각자의 과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니까.
이제는 그늘도, 울타리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선배들 등에 업혔었는지.
그들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호수 위를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처럼,
물 아래에서는 얼마나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그걸,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집에서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중얼거리곤 했다.
“이건 업보야.”
아무것도 몰랐던 그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있을 때 잘할걸.
나는 대체 얼마나 부족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이, 술보다 먼저 목을 태웠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억지로 생활을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방학이 왔다.
기말고사가 끝날 때쯤은 내 생일이었다.
7월 중순, 그 때 온 산적의 생일 축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줄수 있는게, 이 노래에밖에 없다~"
그맘때쯤 유명했던 2AM의 노래를 하던 그 목소리-
그리고, 부르다 못해 목 메인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고마워. 내 생일선물 잘 들었어. 다들 잘 안 해 주는데- 잘 기억할게.
너도 힘내고, 잘 지내고 있어야 해? 휴가 때 보자."
그 담백한 한 마디가, 사람 하나를 살렸단 걸-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