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초등학생이었던 나)
맞벌이를 하던 시절,
엄마는 동생의 생활 대부분을 내게 맡겼다.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나는 겨우 4학년이었다.
아침에 함께 학교에 가고,
옷차림을 점검하고,
학습지를 확인하는 일들.
어른이 보기엔 사소해 보였겠지만
그 나이의 나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가져가는 일이었다.
동생의 셔츠에 얼룩이 묻어 있어도,
숙제를 하지 않아도
잘못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누나가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그래.”
엄마는 내가 가스불을 켜는 법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밥 좀 챙겨줘”라고 말했다.
그 말의 무게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수업을 중단한 채 집으로 갔다.
작은 손을 잡고 다시 학교로 데려갔지만
그날 저녁, 돌아온 건 감사의 말이 아니었다.
“동생을 잘 못 챙겼다”며
엄마의 손바닥이 내 뺨을 스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엄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한테 엄하게 해야, 동생이 보고 배운다.”
그 말은 그날의 폭력을 ‘교육’으로 바꾸어 놓았다.
억울함은 방향을 잃었고 어린 나는 결국 동생에게 화를 냈다.
뺨이 부어 있는 나를 본 동생은 그저 사과의 말만 반복했다.
그때의 나는 그 사과를 받아야만 하루가 끝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엄마의 말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이기적이다.”,“멍청하다.”,“못돼 처먹었다.”,“내가 너 같으면 죽겠다.”
그 말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가는 척하던 아이에게 천천히 균열을 냈다.
그 시기의 나는
어떤 날은 갑자기 숨이 막히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울고 싶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엄마가 출근한 뒤
나는 주방 칼서랍에서 검은 손잡이의 과도를 꺼냈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내 책상 서랍 가장 안쪽에 숨겼다.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나만 아는 안쪽, 손이 잘 닿는 곳에.
그 칼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진정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떤 날의 나는 그 종이뭉치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그 안쪽을 만져봐야만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폭언을 들은 날이면 칼을 손에 쥐어보기도 했고
손목 위에 대보며 어떻게 하면 덜 아플지 계산하던 날도 있었다.
집 앞 다리 위를 걸으며 ‘여기서 떨어지면 아프지 않게 끝날까’
생각하던 날도 분명 있었다.
그 시기의 나는
살고 싶어서 버틴 게 아니라
그저,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었다.
칼을 서랍에 넣은 그날부터 내 어린 시절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이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