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과도 (完)

(feat. 살고 싶지 않던 시절, 그럼에도 살아낸 시간들)

by Rachel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어릴 때처럼 울 수도, 숨을 곳도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중학생 때의 침묵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조금 다른 형태로 자리 잡았다.
말을 줄이는 대신,
감정을 줄였고
그 대신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방 한가운데서 울고 있었다.

“동생이 나를 때리려고 했다.”

엄마의 말이었다.
하지만 동생의 말은 달랐다.

“엄마가 자꾸 등을 때려서… 손목만 막았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아빠의 손이 동생에게 닿았다.
그날 동생의 팔뼈가 아빠의 고함과 함께 부러졌다.

나는 뼈가 부러져 덜렁거리는 동생의 팔을 보며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엄마는 호들갑 떨지 말라며 아빠가 데리고 가게 두라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우리 집은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누구에게도 안심을 주지 않았다.

폭력은 더 이상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그 자리를 더 큰 불안이 대신했다.


“이 집에서는 누구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이해한 것은 아마도 나였다.

다들 조용해졌지만, 그래서 더 위험했다.



동생은 고2 무렵 조금씩 침착해졌고
엄마는 그것을 ‘얌전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또래의 평범한 아이였다.

이전에도 얌전한 아이였을 뿐인데.

그저 평범한, 고2 남학생이었다.

단지, 이 집의 공기에 조금 더 빨리 적응했을 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 다른 이유로 조용해진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맞아서 조용해졌고,
누군가는 지쳐서 조용해졌고,
나는— 말해도 바뀔 것이 없다는 걸 알아서 조용해졌다.


‘조용한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만 통하는 규칙이었다.



고3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변한 건 성적이 아니라 몸이었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날들이 이어지자 살이 조금씩 붙었다.
내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였지만
엄마에게는 또 다른 실망의 이유가 되었다.


“돼지처럼 살지 마라.”
“너 때문에 내가 욕먹는다.”
“누가 너를 사람이라고 보겠니?”


살에 대한 말들은 점수가 했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스스로를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라고 믿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는 몸을 가진 아이가 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비춰지는 건 내 모습이 아니라
엄마의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엄마의 분노는 옆집 아주머니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너는 좋은데 딸이 저렇게 살찌면 네 체면만 떨어진다.”

그 말 이후로 엄마의 표적은
내 성적에서 내 몸으로 바뀌었다.


나는 먹는 것도, 걷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누군가의 감시 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즈음, 어떤 날은 집 앞 다리를 걸었다.

죽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사는 게 맞나’ , ‘나는 어디쯤 잘못 온 걸까’
그런 생각이 반복되었다.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소리가 잠잠해졌다.

어떻게 하면 덜 아플까,
떨어지면 바로 끝날까,
계산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떨어지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나는 ‘살아서 버티는 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날 다리 위에서 내가 했던 건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살고 싶지 않은 하루에서 잠시 벗어나려 했던 것뿐이었다.



대입 원서를 쓰던 시기,

나는 아주 조용하게 결심했다.

울산을 떠나지 않으면
나는 아마 조금씩, 아주 조용하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엄마의 말, 옆집 아주머니의 시선, 좁은 동네의 관계망,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나’로 남아 있지 못할 것 같았다.


어디든 좋았다.
단지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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